LA 적십자사로 날아온 전보 한 통… 46년전 5·18 불러내다

[김성후의 The Journalist]
(17) 5·18 46주년 다큐 '발신자를 찾습니다' 제작한 류성호 KBS 광주총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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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성호 KBS 광주방송총국 기자가 광주시 동구 5·18 민주광장 시계탑 앞에서 5·18 최후 항쟁지, 옛 전남도청 쪽을 쳐다보고 있다. /류성호 제공

지난겨울과 봄을 류성호 KBS 광주방송총국 기자는 46년 전 미국 LA에서 받았다는 전보(電報)의 발신자를 찾아다녔다. ‘Long live Korea. Long live Democracy(대한민국 만세. 민주주의 만세)’. 전보는 짤막한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광주가 외부 세계와 고립됐던 1980년 5월24일, 미국 한인 동포와 대학생 100여명은 LA 적십자사에서 집단 헌혈 시위를 벌였다. 전두환 신군부의 집단 발포로 광주에서 유혈 사태가 났다는 소식을 듣고 LA 적십자사 혈액원을 점거한 것이다. 이들은 자신의 몸에서 뽑은 피를 광주 시민에게 보내달라고 요구했다. 이 전례 없는 72시간 점거 농성은 언론 보도를 통해 미국 전역에 알려졌다.


1980년 5월27일 새벽 4시 시작된 계엄군의 진압 작전으로 광주는 짓밟혔다. 최후까지 남아 결사항전을 벌인 시민군 17명이 전남도청 일대에서 계엄군의 총탄에 맞아 사망했고, 300여명이 무장 해제된 채 5·18 광주 항쟁은 막을 내렸다. 광주가 진압되고 점거 농성을 해산할 무렵, 대학생 김률은 LA 적십자사 관계자에게 한국에서 온 전보를 받았다.


그때 전보를 받았던 대학생이 일흔이 넘은 나이가 되어 광주를 찾아왔다. 미국에서 변호사로 일하는 김률씨는 작년 11월 5·18기념재단을 방문해 전보를 보낸 사람이 누구인지 찾고 싶다고 했다. 12·3 비상계엄은 가슴 깊숙이 묻어둔 그의 기억을 끄집어냈다. 내용만 있을 뿐 전보를 받은 날짜와 발신처 등이 기억에 없으니 찾기가 쉬울까. 결국 김씨는 발신자 찾기를 중단하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5·18 당시 한국에서 받은 전보의 발신자를 찾아온 김씨의 극적인 사연을 이대로 묻을 수 없었다.

류성호 KBS 광주방송총국 기자가 지난해 11월 광주광역시 서구 쌍촌동 5·18기념재단에서 김률 변호사와 대화하고 있다. /류성호 제공

46년 전 전보의 발신자 추적

류 기자는 그 전보의 발신자를 추적했다. 누가, 왜 전보를 타전했는지, 그 과정에서 마주한 특별한 사연을 담은 5·18 46주년 다큐멘터리 <발신자를 찾습니다>가 19일 밤 KBS 1TV ‘시사기획 창’을 통해 전파를 탔다. 방송 일주일을 앞둔 지난 12일 서울 여의도 KBS에서 류성호 기자를 만났다. 류 기자는 광주에서 올라와 막바지 제작 작업에 불꽃을 태우고 있었다.


이 다큐를 만들겠다고 나선 이유부터 물었다.


“전보의 사연을 광주 시민들, 대한민국 국민들과 공유하고 싶었어요. 5·18의 의미와 민주주의 소중함을 다시 새기는 계기가 될 것 같았습니다. 와중에 발신자가 찾아지면 더욱 좋은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전보 발신자의 흔적을 찾으려면 46년 전으로 돌아가야 했다. 류 기자는 전보를 쳤을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을 몇 그룹으로 나눴다. 기본 전제는 영어를 잘하면서 LA 교포들이 피를 보내려고 적십자사를 점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었다. 시민군 대변인이었던 윤상원 열사, 광주를 취재했던 외신기자들, 종교인 그룹, 대한적십자사 관계자들이 꼽혔다. 류 기자는 항쟁지휘부 시민군들을 만나고 수소문했다. 5·18 당시 광주를 취재했던 외신기자들, 그들의 통역을 맡은 미국 평화봉사단원, 주한 미국 대사관이 탈출을 권고했지만 광주에 남아 시민들을 도왔던 목사, 선교사, 간호사를 찾아다녔다.


류 기자는 “취재원을 찾는 데 어려움이 컸다”고 했다. “벌써 46년 전 일입니다. 항쟁지휘부야 오월단체들이 있어 접근이 가능했지만 외신기자들은 전혀 정리가 안 돼 있었습니다. 통역을 맡은 분들은 5·18 관련한 책도 쓰고 발언도 해서 접촉할 수 있었습니다. 종교인 그룹은 5·18 당시 수습대책위원으로 활동했던 김성룡 신부님 통해서 말씀을 들었지만 개신교 그룹은 접촉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5·18기념재단, 5·18민주화운동기록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광주기독병원 분들이 끈이 되어 줬습니다.”

4월15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10층 코시스센터에서 류성호 KBS 광주방송총국 기자가 1980년 5월 광주를 취재한 심재훈 당시 뉴욕타임스 한국특파원을 인터뷰하고 있다. /김성후 선임기자

추가 인터뷰 거절로 중대 고비

그 끈을 통해 누군가를 만나고, 그 사람의 소개로 또 다른 취재원을 발견하는 등 연결에 연결을 이어갔다. 류 기자는 그렇게 국내와 미국 LA에서 100여명을 만났다. 하지만 전보를 처음 공개한 김률씨의 추가 인터뷰 거절로 다큐 제작은 중대 고비를 맞았다. 류 기자는 “김률 변호사는 지난해 11월 저를 만났을 때부터 인터뷰를 한사코 거절했다”고 했다. “산 자의 부끄러움이 기저에 깔려 있었어요. ‘내가 이제 와서 이렇게 떠들 일인가’라는 생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몇 차례 설득했지만 김씨는 끝내 추가 인터뷰를 포기했다. 주인공이 없는 다큐, 다큐 제작은 아득하기만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LA 적십자사도 취재에 응하지 않았다. LA 적십자사 취재를 통해 1980년 5월 전보의 송수신 사실이 있었음을 확인하고, 발신 시간, 발신처 등을 통해 발신자를 좁혀가려는 계획이 틀어졌다. 결국 류 기자가 전보의 발신자를 찾아다니는 구성으로 전면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 과정에서 광주기독병원 간호사로 일하며 5·18을 목격한 고 메리언 포프의 증언 테이프를 입수했다.

류성호 KBS 광주방송총국 기자가 지난 3월 미국 UCLA 동아시아 도서관에서 조상훈 사서와 5·18 관련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류성호 제공

미국에서 국제우편이 도착한 건 4월17일. 보낸 사람은 미국 테네시주 내슈빌의 루이즈 모리스였다. 모리스는 류 기자가 전보의 흔적을 찾다가 만난 김매련 여사(메리언 킴)를 통해 접촉했다. 김 여사와 모리스는 1970년대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한국 민주화와 인권 실상을 해외에 알린 ‘월요모임(Monday Night Group)’ 소속의 선교사였다. 류 기자는 모리스와 몇 차례 이메일을 주고받다가 5·18 당시 육성 녹음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모리스는 녹음테이프가 담긴 우편물을 보냈고 류 기자는 그 우편물이 도착하길 기다렸다. 그것이 어느 만큼이었는가 하면, 국제우편 추적 시스템에 들어가서 어디쯤 왔는지 보기를 여러 차례였다.


우편물을 뜯어보니 모리스의 포스트잇 메모가 있었다. ‘이 테이프들은 1980년 5월 광주 학살 당시 광주의 한 병원에서 근무했던 캐나다인 선교사 메리언 포프(Marion Pope)의 목격담을 담고 있습니다. 그녀는 현재 고인이 되었으나, 당시의 상황을 이곳에 기록해 두었습니다.’ 포프의 육성이 담긴 카세트테이프는 2개, 앞면 인덱스엔 ‘Marion Pope, Kwangju’라고 적혀 있었다.


오래된 테이프라 음질 상태가 좋지 않았지만 처음 들었을 때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정”이 밀려왔다. “굳이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전율’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고 류 기자는 말했다. 노이즈를 제거하고 녹취를 풀어 번역한 포프의 육성 증언은 이렇게 시작했다. “우리는 (1980년) 5월30일 서울에서 녹음하고 있습니다. 메리언 포프가 광주에서 돌아왔습니다….”

1980년 5·18 당시 광주기독병원 간호사로 일한 메리언 포프의 육성 녹음 테이프. 포프는 1980년 5월30일 녹음한 이 테이프에 5·18 목격담을 담았다. /류성호 제공

5년째 이어진 ‘영상채록 5·18’

류성호 기자의 이번 다큐는 KBS 광주방송총국 연중기획 ‘영상채록 5·18’에 바탕을 두고 있다. 전보 발신자 찾기에 나선 것도 작년 11월 광주를 방문한 김률씨를 인터뷰해 ‘영상채록 5·18’에 담으면서다. 이 기획은 5·18 당사자와 관련자들의 과거와 현재 이야기를 영상으로 기록하는 작업이다. 2022년 4월 정수만 전 5·18 유족회장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68명의 증언을 영상으로 담아냈다.


류 기자는 2013년 KBS 순천방송국에서 여순사건 65주년 다큐를 기획하다가 기록의 중요성을 절감했다. “취재가 너무 어려웠어요. 60년도 넘은 일이라 인터뷰이를 구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5·18도 40년을 넘었더라고요. ‘안 되겠다. 기록해야겠다’ 싶었어요.” 그는 기록의 수단으로 영상 채록에 주목했다. 구술을 기록한 책들과 달리 영상 채록의 의미를 강조하며 선후배들을 설득했다. 그리고 기획서 한 장을 들고 5·18기념재단을 찾아갔다. ‘KBS 광주가 서류 형태로 남아 있는 5·18 관련자의 증언을 영상으로 기록하려고 합니다. 제작비는 필요 없고, 인터뷰이를 찾아주면 좋겠습니다.’ 재단 쪽은 흔쾌히 동의했다.


‘영상채록 5·18’은 5년째 접어들었다. 장기 기획의 원동력은 무엇일까. 류 기자는 재작년 먼저 하늘나라로 떠난 김애린 기자가 2024년 7월 제14회 5·18 언론상 시상식에서 밝힌 수상 소감으로 대신했다. 당시 김애린 기자는 “5·18과 아무 상관 없는 사람처럼 1년을 보내다 매년 5월18일만 되면 관련 보도를 내놓는 게 기자로서 면목이 없었다”고 했다. 류 기자는 그걸 공영방송 KBS 기자의 책무감이라고 했다.


그러나 시청률을 의식하는 현실에서 수년을 이어가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류 기자는 “바통을 이어받아 이어달리기하듯 하고 있다”고 했다. 지금까지 ‘영상채록 5·18’을 거쳐 간 기자만 8명이다. 류 기자를 포함해 유승용·손준수·김정대·손민주·고 김애린 기자, 조민웅·신한비 촬영기자가 참여했다. 그는 “어려운 여건에서도 취재와 보도를 보장한 총국장, 국·부장, 기획 취재로 생기는 빈틈을 기꺼이 채워주는 보도국 모든 동료기자의 역할도 크다”고 했다.


KBS광주는 영상으로 기록한 5·18 관련자 촬영 원본을 아카이브로 축적하고, 전체 인터뷰 내용을 텍스트화해서 차곡차곡 쌓고 있다. 류 기자는 시간이 갈수록 영상 채록의 가치는 높아질 거라고 했다. “인터뷰이 중에 김양래 전 5·18기념재단 상임이사, 5·18 시민군 민원부장을 했던 정해직 선생이 돌아가셨습니다. 그분들의 기억과 증언은 이제 어디서도 들을 수 없죠.” 하나둘 세상을 떠나는 5·18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계속 기록해야 하는 이유일 것이다.

5·18 46주년 다큐멘터리 <발신자를 찾습니다> 스틸 컷.

‘류성호한테 가면 하더라’

류 기자는 남들보다 조금 늦게 언론계에 들어왔다. 대학원까지 졸업한 마당에 취업이 급했는데 KBS가 구원해 줬다고 했다. 2005년 KBS에 입사해 전주총국에서 4년을 보내고 2008년 광주총국으로 전입해 왔다. 광주총국 순천방송국 방송부장을 거쳐 광주총국 9시 뉴스 앵커, 취재2부장으로 일했고 지금은 기획탐사팀 소속이다. 그 사이사이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광주전남지부장, KBS전국기자협회장, 광주전남기자협회장으로도 일했다.


지역사회는 카르텔이 강한 편이다. 학연·지연으로 얽힌 ‘그들만의 세상’에서 더러 언론도 기득권 카르텔 편에 서기도 한다. 법관생활 21년 중 19년을 광주·전남지역에서 근무한 향판(鄕判)을 취재할 때가 그랬다. 2011년 초였다. 당시 광주지법 수석부장판사이자 파산부 재판장을 맡고 있던 그 법관은 자신의 친형과 친구를 법정관리 업체의 감사 등으로 선임하거나 자신의 전 운전기사를 법정관리인으로 추천해 파문을 빚었다. 하지만 지역 언론계는 그 이슈를 초기에만 반짝 보도하고 끝냈다. 광주 지역 법원의 차세대 지도자로 성장 가능성이 점쳐지는 그를 감싸고도는 분위기가 퍼져 있었다.


류 기자는 몇 달간 연속 보도를 끌고 갔다. 지역 언론계는 침묵하고, ‘왜 지역에서 잘나가는 판사를 죽이려고 하느냐’는 시선이 따라다녔다. “정말로 어떤 매체도 보도를 안 했어요. 너무 외롭게 보도했죠.” 그는 ‘류성호한테 가면 하더라’는 인상을 지역사회에 남겼다고 했다. “기사를 엿 바꿔먹거나 막히지 않고 류성호한테 가면 끝까지 보도하더라는 인상을 심어줬죠.” 그는 ‘고위법관 비리 연속 보도’로 2012년 2월 방송기자연합회가 주는 제3회 한국방송기자대상을 받았다. 그는 인터뷰 때 향판 이야기를 주저했다. 기자의 역할을 했지만, 누구에겐 상처라 훈장처럼 꺼내고 싶지 않더라면서….


5·18 46주년 기획 <발신자를 찾습니다>는 류 기자가 제작한 두 번째 다큐다. 2014년 연륙교, 연도교 건설이 가져온 섬 사회의 변화상을 조명한 <섬의 선택, 다리의 두 얼굴> 이후 12년 만이다. 그동안 취재 경험이 쌓였고, 연차도 20년이 넘은 터라 이번엔 다를 줄 알았는데 웬걸, 여러 부침이 있었다. “시작부터 생각했죠. ‘취재새옹지마’. 그리고 어려움에 처하면 오월영령이 도와주실 거다. 하나님의 공의를 드러내는 일이다. 결국 잘 될거다.”


이번 다큐를 통해 시청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궁금해졌다. “저는 누구나 자기가 주인공인 5·18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오늘, 민주주의를 위해 어떤 ‘발신자’가 될 것인가 한 번쯤 고민해 봤으면 합니다. 거창하지 않아도 됩니다. 일상에도 ‘민주’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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