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 역대 최고의 선수를 논할 때 한동안 등장했던 표현은 ‘손차박’이다. 현역인 손흥민과 은퇴한 차범근, 박지성의 성을 붙여서 부른 표현이다. 1970~1980년대 독일 분데스리가를 호령했던 차범근은 유럽 진출 선구자로서, 박지성은 2002 국제축구연맹(FIFA)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이자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명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활약했던 전설로서, 손흥민은 EPL 아시아인 최초 득점왕이라는 범접할 수 없는 업적을 달성한 공격수로서 한국 축구 역사에 큰 획을 그었다.
토트넘 홋스퍼 소속이던 2021-2022시즌 EPL 공동 득점왕(23골)은 손흥민에게도, 한국 축구에도 커다란 사건이었다. 그전까지만 해도 차범근, 박지성과 엇비슷한 수준으로 평가받던 손흥민은 EPL 득점왕을 계기로 차범근과 1대1로 비교되기 시작했고 2022 FIFA 카타르 월드컵 16강 진출, 2024-2025시즌 토트넘의 유럽축구연맹(UEFA) 유로파리그(UEL) 우승 경력까지 더해지면서 상당수의 축구 전문가들로부터 한국 축구 역대 최고 선수로 어느 정도 인정받게 됐다.
2026 FIFA 북중미 월드컵(6월12일~7월20일)은 한국 축구 역대 최고 선수 논쟁에 종지부가 찍히는 대회가 될 수 있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주장 손흥민은 이번 대회가 사실상 월드컵 라스트 댄스일 가능성이 높다. 1992년생으로 이미 30대 중반인 손흥민이 다음 2030 월드컵을 기약하기엔 다소 버거워 보인다. 그때쯤이면 한국 나이로 마흔 줄을 앞두게 되기 때문이다.
홍명보호는 한국 시각 6월12일 오전 11시 체코전을 시작으로, 6월19일 오전 10시 개최국 멕시코, 6월25일 오전 10시 남아프리카공화국과 A조 조별리그를 벌인다. 한국 남자 선수 역대 최다인 A매치 142경기 출전 기록을 보유 중인 손흥민은 통산 득점에선 54골로 역대 2위에 올라 있다. 차범근의 최다 득점 기록(58골)까지는 사정권이다. 게다가 월드컵 통산 3골(2014년 1골·2018년 2골)을 기록 중인 손흥민은 이번 대회에서 1골을 추가하면 안정환, 박지성을 넘어 한국 선수 월드컵 통산 득점 단독 1위에 오른다.
한국 축구 과거와 현재를 대표하는 공격수 차범근과 손흥민을 비교해 보자. 우선 차범근이 독일 무대에 진출했던 1978년은 이른바 파독 광부 시절의 끝 무렵이었다. 한국인이 아시아인으로서 상당한 차별을 겪던, 한국이 그야말로 변방이었던 시절 당시 세계 축구 제1의 리그 분데스리가에 진출해 1989년까지 11년간 308경기 98골(전체 공식전 121골)을 기록한 차범근의 업적은 가히 혀를 내두르게 한다.
득점력은 두말할 것도 없고 두꺼운 허벅지(둘레 31인치) 등 탄탄한 하체를 바탕으로 100m를 11초대에 주파하는 스피드, 게다가 어시스트 능력도 보유했다. 남다른 위치 선정과 공중볼 경합을 통해 헤더로 득점하는 능력도 뛰어났다. 당대 독일에선 차범근을 두고 ‘Wirbelten’이라는 표현을 많이 썼는데, 이는 ‘소용돌이치다’라는 의미로 차범근이 그만큼 강력한 피지컬을 앞세워 전방위를 뛰어다닌 선수였다는 걸 방증한다.
손흥민은 양발을 자유자재로 활용하며 차범근과 마찬가지로 뛰어난 스피드와 득점력, 어시스트 능력을 모두 갖춘 전천후 공격수다. 남다른 주력과 순간 스피드를 통해 상대 수비 뒷공간을 파고드는 능력이 일품이며 세트피스 상황에서도 정확한 킥력과 볼 임팩트 능력을 바탕으로 직접 득점하곤 한다. 손흥민은 토트넘에서 뛴 10년 동안 EPL 333경기에 출전해 127골 71도움을 올렸다.
지난해 여름 합류한 미국프로축구 메이저리그사커(MLS)에서도 LAFC 소속으로 종횡무진 활약을 펼치고 있다. 지난해 9월18일 레알 솔트레이크전(4-1 승)에서 킥오프 3분만에 상대 골망을 흔들더니 전반 16분과 후반 37분 추가 골을 넣으며 MLS 진출 후 첫 해트트릭을 달성했다. 지난달 5일 올랜도 시티전(5-0 승)에선 무려 4도움을 기록하며 발군의 패스 능력을 뽐냈다.
EPL 토트넘에서 뛰던 손흥민이 당초 천문학적 액수의 연봉을 제안한 사우디아라비아리그 대신 미국 무대로 향한 결정적 이유는 다가올 북중미 월드컵 대비였다. 월드컵 준비 올인을 위해 그는 꾸준히 인연을 이어오던 스포츠음료 브랜드 게토레이의 광고 촬영 일정도 포기했다. 손흥민은 “올여름이 선수로서 얼마나 중요한 무대가 될지 이미 몸과 마음으로 느끼고 있다. 그만큼 피지컬뿐 아니라 멘탈적으로도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참가국이 기존 32개국에서 48개국으로 확대된 이번 대회에서 대한축구협회(KFA)와 홍명보호는 사상 첫 원정 월드컵 8강 진출이라는 원대한 목표를 내세웠다. 그러나 앞서 3월 치른 유럽 원정 2연전에서 코트디부아르(0-4), 오스트리아(0-1)에 완패한 탓에 대표팀 조직력과 홍명보 감독의 지도력을 향해선 비판이 끊이질 않고 있는 상황이다.
다만 여태까지 K-축구의 위상을 크게 끌어 올렸던 슈퍼스타 손흥민의 존재는 분명 반전을 기대하게 한다. 월드컵 라스트 댄스를 앞두고 배수의 진을 친 캡틴의 발끝에 시선을 모아본다. 한국 축구 역대 최고 선수의 라스트 댄스 에필로그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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