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 AI 도입에 '들끓는' 세계 언론사·기자들

언론계 AI, 고용 넘어 노동권·저널리즘으로 비화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 "노조 역할, 기자 발언권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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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의 도입을 두고 세계 다수 언론사들의 노동조합이 기자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여러 산업군에서 AI의 인간 일자리 대체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지만 이 같은 초기 논의를 지나 현재 세계 언론에선 AI가 노동권과 저널리즘의 근간을 뒤흔드는 핵심 쟁점으로 부상하는 상황이다.

최근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는 <“젤리를 벽에 못 박는 것과 같다”: AI 시대에 노조가 언론인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유>(“Like nailing jell-o to a wall”: Why unions are struggling to protect journalists’ rights in the age of AI) 기사를 통해 미국, 그리스, 필리핀 등 국가 언론사의 노조 관계자들이 AI로 인한 파장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를 전했다. 기사는 “AI가 내 일자리를 빼앗아 갈까”라는 질문이 여전히 유효한 상황에서 당분간 언론계의 일자리 감축은 미미한 수준일 것으로 보이지만 상황은 변할 수 있고, 그 변화는 인력감축을 넘어선 차원일 수 있다며 세계 각국 언론사의 사례를 소개했다.

AI의 도입을 두고 세계 각국 언론사와 노동조합, 기자들의 고민이 심화하고 있다. 이 같은 양상을 담은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 관련 기사.

기사에 따르면, AP통신의 기자 대표 노조는 4월 초 회사가 AI와 영상 콘텐츠로 사업방향 전환 의사를 밝힌 직후 120명 이상의 직원들이 퇴직 보상금 제안을 받았다고 밝혔다. 마이애미 헤럴드, 새크라멘토 비, 캔자스시티 스타 등 3개 신문사 노조에선 워크플로우에 AI 툴(tool)을 도입하는 회사의 시도와 관련해 모회사인 맥클래치(McClatch)를 상대로 문제제기가 나왔다. 해당 도구는 기사의 단·장문 버전 생성, 독자 맞춤 버전 제작, 단편 영상 전환을 위한 대본 생성 등 기능을 갖춘 콘텐츠 조정 시스템인데 회사 경영진은 이 도구를 ‘글쓰기 파트너’로 보는 반면, 기자들은 “사전 고지나 동의 없이 기자 명의로 기사를 생산하는 데 쓰이는” 도구로 받아들여진다는 설명이다.

기사에서 새크라멘토 비의 탐사보도 기자 아리안 랭(Ariane Lange)은 “대중이 우리가 이 일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길 원치 않는다”며 “우리는 이것이 대중의 신뢰를 배반하는 행위이며 우리의 신뢰도를 훼손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 외 다수 해외 언론에서 AI를 두고 노사 간 갈등이 불거지고 있다. 프로퍼블리카 기자들은 2년 넘게 협상을 진행했지만 AI 관련 조항과 해고금지 조항을 포함하는 노조 계약에 이르지 못하며 4월 초 24시간 파업을 진행했다. 이탈리아에선 회사가 AI 관련 기본 규칙을 수용하지 않자 주요 언론인 노조가 이틀 간 파업을 촉구했다. 뉴욕타임스의 편집국 노조 지도부는 신문사 경영진에게 AI 기준이 너무 모호하고 부적절해 편집상 문제와 신뢰문제를 야기하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회사가 AI를 경영 효율화 도구이자 파트너로 보고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면, 기자들은 허위정보 생성 같은 AI의 부정확성을 지적하고 대중의 신뢰를 저버린 행위로 간주하며 단체협약 위반을 주장하고, 고충 제기나 파업 등으로 대응하는 모습이다. 일례로 폴리티코에선 민주당 전당대회에 대한 AI 기사 작성, 캐피털 AI(Capital AI)와 체결한 자동 보고서 생성 계약을 두고 문제제기가 나왔다. 직원들의 업무에 실질적 영향을 미치는 방식으로 AI를 활용하기 전 노조에 사전 통보하고 협상을 진행했어야 하는데 회사가 조항을 무시한 채 AI 프로젝트를 진행했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공중보건 전문기자이자 폴리티코와 E&E 뉴스를 대표하는 펜 길드(PEN Guild)의 지부장인 아리엘 위튼버그(Ariel Wittenberg)는 “우리는 그들이 계약을 위반했다고 본다. 계약엔 모든 AI 사용이 폴리티코의 언론윤리 기준에 부합하고 인간 감독 하에 이뤄져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며 “결과물에 부정확한 내용이 포함되거나 우리 스타일북을 따르지 않았는데도 수정 정책이 적용되지 않는다면 이는 우리의 언론윤리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기사에서 지적했다.

AI와 관련해 언론, 기자들이 겪는 어려움은 국가별 상황에 따라 양상에 차이가 있다. 필리핀 전국 기자협회 이사인 익명의 한 뉴스룸 관리자는 AI를 책임감 있고 윤리적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일반적 조항만 갖고 있고, AI가 기자를 대체하는 데 사용되지 않을 것이란 내용은 어디에도 명시돼있지 않다며 이를 “존재론적 위협”이라고 우려했다. 실질적인 교섭 주체는 개별 사업장의 노조인데 노조 조직률이 떨어지고 제도화 수준이 낮아 대응이 녹록지 않은 점도 지적됐다. 반면 그리스에선 AI 도입이 광범위 하지 않아 그리스언론인연합 산하 5개 노조가 윤리강령을 선제적으로 채택해 대응하기도 했다.

미국 탐사매체 프로퍼블리카 기자들은 4월 초 AI 관련 해고금지 조항 등을 쟁점으로 하루 파업에 돌입했다. 파업 찬반 투표 결과를 담은 프로퍼블리카 길드의 사이트 첫 화면.

다만 AI가 언론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고 대응이 쉽지 않다는 인식은 분명히 공통적이다. 특히 고용은 물론 기자의 업무 및 언론윤리에 미칠 영향까지, 복잡다단한 잠재적 파장이 숨가쁜 기술 변화 속도와 맞물려 대처를 더욱 어렵게 한다는 점이 거론된다. 뉴스 미디어 길드(News Media Guild)의 토니 윈튼(Tony Winton) 최고 행정책임자는 이 같은 상황에 대해 “끊임없이 움직이는 표적과 같다. 마치 젤리를 벽에 못으로 박는 것과 같다”고 표현했다.

AI가 혁신의 도구이자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지만 독자들이 뉴스를 찾는 이유, 즉 정확하고 사실에 입각한 뉴스를 원하기 때문이란 점을 뉴스룸이 간과해선 안 된다는 목소리를 기사는 담았다. AI를 도입하는 일부 뉴스룸에선 신속한 실험, 콘텐츠 확장 등 실리콘 밸리의 언어 같은 표현이 나오는데 뉴스룸의 역할과는 거리가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기사는 언론 본연의 가치인 정확성과 윤리적 책임 등 기자들의 실질적인 목소리를 담는 과정, 이 맥락에서 노조의 역할을 의미있게 주목했다.

위튼버그는 기사에서 “혁신을 서두르느라 뉴스 조직들은 자신들이 기술 기업들과 경쟁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현실에서 우리는 여전히 뉴스 조직이다. 이는 우리가 윤리적 의무를 지고, 독자들에게 정확하고 사실에 입각한 뉴스를 제공해야 하며, 실수를 저질렀을 때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AI는 이미 업계에 영향을 미치는 기술이고 노조 계약은 AI 도입 방식에 대해 회사에 전적으로 맡기는 대신 언론인들이 발언권을 행사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기사는 “권한이 제한적이긴 하지만 언론인과 노조는 자신들의 권리와 업계 전체를 보호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대중의 압력과 광범위한 여론으로 인해 많은 양보가 이뤄질 것이기 때문”이라며 필리핀 관계자의 발언을 인용, “뉴스 미디어를 소유한 자들과 뉴스 미디어 구성원들 사이엔 항상 그런 괴리가 존재해왔다. 언론인으로서 우리는 이 험난한 싸움에 대비해야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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