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동 기록한 죄… 예술과 언론을 가른 선명한 경계

'서부지법 폭동 기록' 정윤석 감독 유죄 확정
정 감독 "차별적 법집행… 재판소원 청구 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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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5월3일)는 ‘세계 언론자유의 날’이었다. 세계인권선언 제19조에 명시된 ‘표현의 자유’가 모든 인권을 향유하기 위한 전제조건임을 강조하기 위해 유엔(UN)이 지정한 기념일이다.

국경없는기자회(RSF)는 2002년부터 매년 이 기념일에 즈음해 ‘세계 언론자유 지수’를 발표하고 있다. 세계 180개국을 대상으로 저널리즘에 영향을 미치는 정치·경제·법·사회·안전 등 5가지 지표를 평가해 언론자유 수준을 측정하고 그 순위를 매긴다.

4월30일 발표된 ‘2026 세계 언론자유 지수’에서 한국은 47위를 기록했다. 불법계엄이 선포된 2024년, 그리고 윤석열 대통령 체포와 탄핵을 두고 분열과 혼란이 극단으로 치닫던 2025년 연속으로 60위권에 머물렀던 순위가 새 정부 출범 후 40위권으로 훌쩍 상승한 것이다.

다큐멘터리스트 정윤석 감독이 4월30일 대법원에서 건조물침입죄 유죄 확정 판결을 받은 뒤 법정을 나와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시스

그런데 같은 날, 대법원에선 언론자유에 관해 의문을 품게 하는 판결이 나왔다. 윤석열 당시 대통령 구속영장 발부에 분개한 지지자들이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폭력 사태를 일으킨 지난해 1월19일 새벽, 당시 카메라를 들고 법원 점거 현장을 기록했다는 이유로 폭도들과 함께 기소되어 건조물침입죄로 1·2심서 벌금형(200만원)을 선고받은 정윤석 다큐멘터리 감독에 대해 대법원이 유죄를 확정한 것이다.

최종 판결을 앞두고 4월27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공익인권변론센터는 시민 3297명이 무죄를 촉구하며 연서한 탄원서와 정윤석 감독의 최후진술문을 대법원에 제출했다. 민변 공익인권변론센터에 따르면 수사단계부터 탄원에 연명한 인원은 3만여명에 달한다. 해외에서도 국제다큐멘터리협회(IDA), 유럽감독조합 등 수십 개 단체가 참여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날 “상고를 기각한다”는 짧은 문장으로 사건을 종결했다.

앞서 1심 재판부는 ‘피고인 정윤석’의 “다큐멘터리 감독으로서 작품 활동을 위한 목적”을 인정하면서도 “(경찰의) 출입 통제에도 불구하고 법원 안으로 진입한 이상 침입성과 침입의 고의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당시 법원 건물 안까지 들어가 폭동을 기록한 JTBC 취재진은 불기소 처분은 물론 한국기자협회가 주는 ‘이달의 기자상’을 받았으며, 이가혁 JTBC 기자는 “맥락에 대한 고려 없이 사건 현장에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처벌한다면 예술계를 넘어 언론계에도 위축 효과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며 직접 탄원서도 제출했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한 언론기관”과 “개인적 작품 활동”은 구분해야 한다며 상고를 기각했다.

정 감독은 재판을 받으면서도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그리고 뉴스타파 목격자들 펀드 제작 지원으로 12·3 내란 사태를 기록한 다큐멘터리 <세상은 그렇게 끝난다>를 만들어 4월 말 개막한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공개했다. 이 다큐의 도입부는 이런 자막과 함께 시작한다. “‘언론과 달리 예술은 공익성을 신중히 판단해야 한다’는 이유로 사법부는 나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본 영화는 유죄의 기록이다.”

12·3 내란 사태를 기록한 다큐멘터리 <세상은 그렇게 끝난다> 트레일러의 한 장면. /전주국제영화제

정 감독은 대법원에 제출한 최후진술서에서 “국가기관이 저널리즘과 예술을 기계적으로 분류하고 상반된 법적 기준을 적용한 것은 헌법의 평등원칙에 반하는 차별적 법 집행”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예술창작과 표현의 자유 보호’ 등을 명시한 예술인권리보장법을 들며 “예술가의 용기가 유죄가 된다면, 앞으로 닥칠 위기 앞에서 그 어떤 창작자도 용기 내어 진실을 마주하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정 감독은 유죄 판결 확정 직후 “관료적 행정주의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촌평하며 헌법재판소 재판소원 청구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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