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이 시작되고 약 두 달이 지났다. ‘중동 전쟁’, ‘미국·이스라엘-이란 전쟁’ 등의 이름으로 이 전쟁은 장기화하고 있다. 세계를 경악시켰던, 그리고 장기전으로 번진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명분 없는 강대국의 침공이 일상이 된 시대. 금철영 KBS 기자의 말처럼 “전쟁이 남의 나라 일이 아닌 ‘내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건’”이 됐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전후 질서를 구축한 유엔(UN) 헌장, 이 체계를 만드는 데 가장 큰 힘을 발휘했던 미국이 정작 이를 가장 세게 흔들며”(문재연 한국일보 기자) 국제 정세는 근본적으로 달라졌다. 전쟁에 대한 강대국의 논리, 전황 중계를 넘어서서 우리만의 시각과 분석이 중요해졌다는 기자들의 목소리가 나온다. 국제 보도의 다각화, 전문성 역량을 키우지 못한 국내 뉴스룸의 한계 속에서도 무감각해진 전쟁의 참상을 일깨우고 사안을 최대한 입체적으로 전하기 위한 기자들의 분투도 이어지고 있다.
◇“강대국 중심 시각, 가치 판단 힘들어져”
국제부 등 일선에서 중동 전쟁 관련 소식을 전하고 있는 기자들이 느끼는 가장 큰 한계는 현장성과 전문성의 부재다. 배시은 경향신문 기자는 “이번 전쟁은 특히나 트럼프, 네타냐후 등 유력 정치인들의 발언 위주 스트레이트를 많이 쓰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멘트 하나하나가 전황을 좌우하는 게 맞고, 전달을 안 할 수 없는 필요한 보도지만, 큰 방향에서 단편적 소식을 보도하는 게 독자들 입장에선 가치 판단까지 이어지기 힘들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해외 언론과 달리 중동 지역 특파원이 현저히 적은 우리 언론의 취재 접근성 문제도 거론된다. 우크라이나 전쟁만 해도 현지에 국내 기자들이 특파된 바 있다. 반면 이번 중동 위기에선 일부 언론이 오만 등 인근 지역에서 보도를 하고 있지만, 이란 현지 진입은 불가능한 상황이다. 문재연 기자는 “현장에서 확인할 수 없다는 사실 자체가 큰 한계”라며 “AP통신이나 뉴욕타임스를 가장 많이 인용하는 이유는 체계적인 검증 시스템을 갖췄기 때문인데, 그럼에도 신뢰성을 담보하기 위해 정보가 나온 홈페이지, 현지 매체 보도, 영상 원본이 나온 유튜브 등 워딩을 일일이 확인을 한다. 교차 검증을 할 수밖에 없고, 그럼에도 직접 취재한 것이 아니기에 정확하다고 담보하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배시은 기자도 “전쟁 당사자 발언의 해석도 중요한데 월스트리트저널, 뉴욕타임스 등 강대국들의 언론을 보며 그 논리를 어느 정도 따를 수밖에 없다”면서 “이란도 분명한 당사자인데 내부 보도 통제, 인터넷 통제 등으로 그쪽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창구가 제한돼 있다는 걸 많이 느낀다. 보도의 균형이 맞지 않다는 것도 어려운 점”이라고 했다.
◇“국제보도 역량 강화 위한 변화 절실”
기자들은 국제 정세의 영향과 그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다고 했다. 분야 또한 금융, 정치 등 사안별, 지역별로 세밀해지고 있어 국제 뉴스 역량 강화를 위한 뉴스룸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다. 금철영 기자는 “전쟁 지역 직접 취재가 필요한 건 반드시 현장에 가봐야만 이해할 수 있는 일들이 꼭 벌어지기 때문”이라며 “레거시 미디어들이 과거와 같은 영향력을 절대 유지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생존 전략과 틈새는 국제 보도처럼 언론사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에서 나온다”고 했다. 그러면서 “각 언론사마다 동아시아 전문기자나 아프리카 전문기자가 없는 것은 물론이고, 중동 전문기자조차 없는 게 현실이다. 국제부는 기자로서 한 번 거쳐 가는 부서로만 인식하고, 전문기자로 일할 수 있는 유인책과 시스템이 마련되지 않고 있다”며 “국제 보도를 뉴스의 중심에 놓고 보려는 내부 시각 변화도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분석 기사를 쓰거나 방송에 출연해 장시간 해설할 전문기자의 부재, 전쟁이나 분쟁이 벌어진 곳에서 지금 당장 현장 분위기를 전달해줄 취재원 네트워크의 부재 등 혼란이 벌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민희 한겨레신문 기자도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우리는 똑같고, 오히려 언론사 상황이 어렵다는 이유로 특파원은 더 줄고 있다”며 “여권법 등 제도적 제약까지 겹쳐 있다”고 꼬집었다.
◇“민주주의 성숙한 한국 언론 역할 중요”
척박한 환경에서도 기자들은 차별화된 전쟁 보도를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고 있다. 문재연 기자는 번역, 화상 인터뷰 등 기술을 잘 활용한다면 “길은 열려 있다”고 했다. 그는 히브리어와 페르시아어 매체를 직접 모니터링하고 오바마 행정부 시절 인사, 이스라엘 내부 사람들 등을 ‘왓츠앱’ 등으로 소통하며 취재 경로를 개척하고 있다. 문 기자는 “전쟁에서 모든 당사자가 자기 해석과 서사를 강요하기 마련”이라면서 “그렇기에 언론은 그 서사의 구조를 검증하고 해체해 독자에게 전달해야 한다. 그 어느 곳의 당사국 소속도 아니면서 민주사회의 성숙을 거친 한국 언론만이 할 수 있다”며 국내 언론의 역할을 강조했다.
어린이, 여성 등 전쟁 약자 문제에 주목한 기사를 써온 배시은 기자는 국내에 있는 이란인을 취재하며 현지의 목소리에 닿으려는 시도도 하고 있다. 배 기자는 “진짜 사람이 죽고 있다는 데 집중을 안 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다”며 “어떤 미사일을 쐈다는 등의 전술 위주의 보도도 많아졌다. 중요한 정보이긴 하지만, 전쟁의 참상을 찾아 보도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전쟁을 탐사보도의 영역으로 이끈 시도도 나온다. 국민일보 이슈탐사팀 김판·김지훈·이강민 기자가 연재한 <전쟁, 문턱이 낮아졌다> 기획이 한 예다. 13일부터 닷새간 보도된 이 시리즈는 우크라이나 현지 NGO 활동가를 통해 드론이 민간인을 추적하는 잔혹한 현실을 담아내고, 일본 전후 단체, 전쟁 피해자, 국제 정치학자 30여명 등을 인터뷰해 전쟁의 비극을 기록, 국제 정세를 진단했다. 김판 팀장은 “전쟁이 너무 쉬워진 것 같고, 분명 쉬운 선택지는 아닌데도 우리가 무감각해진 것 같다는 판단이 들었다. 강대국의 논리에서 벗어나 직접 질문한 내용으로 우리가 이 시대의 전쟁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인문학, 사회학적 관점으로 들여다 본 기획”이라며 “전쟁의 양적 증가뿐만 아니라 금기시 됐던 민간인 공격을 이제는 개의치 않는 질적 악화를 꼭 짚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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