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장면을 보고 한숨이 새어 나왔다. 사장이 대국민 사과 방송을 하던 날이었고 정오 뉴스 직전이었다. “불공정·편파 보도로 국민의 신뢰를 잃어버렸다”며 사장은 3분 남짓 비통한 표정으로 대국민 사과문을 읽어 내려갔다. 까만색 자막에 시커먼 배경 화면은 YTN 보도에 죽음을 내리는 기괴한 의식의 보조 장치로 보였다.
“윤석열 후보의 부인 김건희 여사와 관련해서는 차마 입에 담기도 민망한 내용인 한쪽의 일방적 주장만 보도했습니다….” 2024년 4월3일 김백 YTN 사장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던 그날, 나연수 YTN 기자는 한국은행 기자실에 있었다. 점심 무렵이라 기자들이 대부분 자리를 뜬 기자실에서 노트북으로 방송을 지켜봤다.
속이 몹시 상한 그는 기자실에 있을 수 없었다. 기자실을 나와 한국은행 인근 소공동 거리를 무작정 걸었다. 누군가와 연락하고 싶었는데 전화할 곳이 마땅치 않았다. 그러다 엄마를 생각했다. 엄마는 꽃을 심다가 전화를 받았다. 꽃을 심는다는 엄마 얘기에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동년배의 두 사람이 같은 날, 같은 시간에 누구는 꽃을 심고, 누구는 YTN 보도를 짓밟고 있구나.’
“지금 생각해도 눈물이 나네요.” 3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YTN 사옥에서 만난 나 기자는 말했다. 그는 2년 전 그날을 떠올리며 “어떻게 살아야 하나,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하나, 그때 그런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사실 저는 YTN의 민영화 과정을 멀찍이 지켜보기만 했어요. 회사 게시판에 글 한 줄 올리지 않았죠. 제 삶에 집중하고 싶었고, 제 할 일만 잘하면 회사는 크게 달라지지 않을 거라고 믿고 싶었어요. 그런 날들 끝에 그 장면을 마주한 거예요. 속상했다는 말로 표현할 수 없어요. 제 자신이 부끄러워 견딜 수 없었습니다.”
노조 전임자 제안, 처음엔 고사
대국민 사과 방송 이후 단행된 대규모 인사에서 나 기자는 편집부로 옮겼다. 편집부에서 뉴스 PD를 처음 했는데 적성에 맞았고, 현장에 있을 때 미처 몰랐던 것들도 배울 수 있었다. 그렇게 적응하고 지낼 때 노조 전임자 제안을 받았다. 당시 전국언론노동조합 YTN지부는 고한석 지부장이 2년 임기를 넘기고 있었는데, 누구도 선뜻 지부장을 하겠다고 나서지 않았다. 3개월이 넘어갈 무렵, 전준형 기자가 나섰다.
“전준형 선배가 같이 하자고 하셨을 때 엄두가 나지 않았어요. 솔직히 회사 상황에 많이 지쳐 있어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을 꽤 진지하게 하고 있었거든요. 누군가 먼저 나서주기를 소망했습니다.” 나 기자는 며칠 고민 끝에 받아들였다. “제가 회사 다닐 때 누군가 노조 일을 하고 있었던 거잖아요. 저도 이제 그럴 연차가 됐고 그 역할을 할 차례구나 생각했습니다.” 지난해 3월1일 출범한 노조에서 그는 YTN 공정방송 이슈를 다루는 공정방송추진위원장을 맡았다.
노조 일은 끝이 없었다. 조합원들을 위해 커피나 간식을 채우고 화분에 물 주고 노조 도서관 관리하는 잔일부터 조합원 상담, 교섭 전략 마련, 공정방송위원회 운영에 이르기까지. 특히 시작하자마자 쟁의행위에 돌입하면서 성명 쓰고 피켓 만들고 집회 및 기자회견 기획하고 인쇄물 찾아오랴 피케팅하랴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르게 지나갔다. 그렇게 1년이 흘렀다. 자리가 사람 만든다고 노조 일이 손에 익어갔다.
유진그룹 들어오자 무너진 YTN 공적토대
YTN지부는 지난해 5월22일 쟁의행위에 돌입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임금·단체협약 교섭 결렬이었지만, 민영화 이후 YTN에서 벌어진 처참한 상황을 외면할 수 없다는 절실한 마음들이 모여들었다. YTN은 윤석열 정부 때 민간 자본에 넘어갔다. 한전KDN과 한국인삼공사, 한국마사회 등을 대주주로 둔 공적 소유였는데 민영화됐다. 유진그룹은 2023년 10월 한전KDN(21.43%)과 한국마사회(9.52%)가 보유한 YTN 지분(30.95%)을 3199억원에 사들였다. 이듬해인 2024년 2월 방송통신위원회(현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는 유진그룹 계열인 유진이엔티가 신청한 YTN 최대주주 변경을 승인했다. 당시 방통위는 김홍일 위원장과 이상인 부위원장 2인 체제였다.
나 기자는 “유진그룹이 YTN 최대주주가 되면서 YTN의 공적 토대가 무너졌다”고 했다. “사장추천위원회라는 공개적 선발 절차 없이 선임된 김백 전 사장은 대선 후보 배우자의 허위경력 보도를 편파방송으로 낙인찍었습니다. 단체협약에 규정된 보도국장 임명동의제를 무력화하고 보도책임자 등 대규모 인사를 냈습니다. 한창 현장을 뛰어다녀야 할 기자들을 편집부, 문화부, 국제부로 몰아서 배치했어요. 보직자를 잔뜩 늘려놓고는 경영 악화를 이유로 직원 임금 동결을 주장했고요. 2024년도 임금협상이 12차례 교섭 끝에 결렬되자 조합원들의 압도적 찬성으로 쟁의에 돌입하게 됐습니다.” 어느덧 쟁의 활동은 320일 넘게 이어지고 있다.
2025년 11월28일. 노조 집행부에서 일하면서 가장 행복한 날이었다. 언론노조 YTN지부와 YTN우리사주조합이 방통위를 상대로 낸 최다액 출자자 변경 승인 처분 취소 소송 판결이 있는 날이었다. 그는 그날 오후 서울행정법원 지하 2층 B202호 법정 방청석에 앉아 재판장의 주문을 받아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손이 떨려 타이핑을 할 수 없었다. 판결의 향방을 어느 대목에서 확신하고 있었지만, 주문이 나온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피고가 2024년 2월 피고 보조참가인에 대하여 한 최다액 출자자 변경 승인 처분을 취소한다.”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재판장 최수진)는 합의제 기구인 방통위가 2인 체제로 의결한 것은 위법하다며 유진그룹의 YTN 인수 승인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방미통위, 유진 최대주주 자격 취소해야
“내가 제대로 이해한 거 맞지? 이긴 거지? 정말 맞지?” 판결을 제대로 알아들었는지 되물을 정도로 승소를 믿기 어려웠다. 집행정지 신청이 법원에서 각하·기각됐던 경험이 있어 그는 승소 가능성을 반반으로 봤다. “그날 진짜 너무 부담이 컸어요. 회사는 승소한다는 정보 보고를 받았대요. 얼마나 긴장했던지 머리도 아프고 먹은 것이 얹혀서 토할 것 같고 그랬거든요.” 그는 YTN 우리사주조합장 자격으로 소송 실무를 전담했다. 직접 검토하고 제출한 증거와 서면이 수천 장이었고, 변론 기일에 매번 출석하고 직접 변론에 참여하기도 했다.
법정을 빠져나오자 기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와 전준형 지부장, 정유신 기자는 법원 출입문 앞에 나란히 섰다. 전 지부장이 인터뷰를 마쳤을 때 옆에서 사주조합장도 한마디 하라고 했다.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저희가 그동안 줄곧 주장해왔던 부분을 재판부를 통해서 확인을 받게 돼서 기쁘게 생각하고…빨리 유진그룹의 최대 주주 자격을 박탈하고 YTN에 건강한 공적 소유 구조를 되돌려 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소송 보조참가인으로 참여한 유진이엔티는 1심 판결에 불복해 즉각 항소했고, 방미통위는 항소를 포기했다. 그는 “방미통위가 법원 판결을 받아들이고 항소를 포기한 이상 행정처분으로 취소명령을 내리면 된다”고 했다. “방송법에 따라 최다액 출자자가 아닌 자가 방송사의 최대주주일 때는 지분을 매각하게 할 권한이 방미통위에 있습니다. 이재명 정부는 ‘보도전문채널의 거버넌스 개편을 통한 공공성 강화’를 대선공약에 포함했어요. 이 공약대로라면 시장에 나온 지분이 다시 민간 기업에 주어져서는 안 되겠지요. 단일 기관(기업)이든, 컨소시엄의 형태든, 공적 자본이 지분을 인수한 다음에 재단 출연 등의 방식으로 더욱 단단한 공적 토대를 다지는 것이 저희의 지향점입니다.”
“양상우 이사 후보 연설 너무나 기이해”
3월 말부터 4월 초, YTN 사내 게시판에 기수·개인별 성명이 줄을 이었다. 유진그룹이 보낸 YTN 새 이사진에 대한 반대 성명이었다. 나 기자는 “이렇게 많은 기수 성명이, 이렇게 짧은 시간에 줄줄이 올라온 것은 입사하고 처음”이라고 했다. YTN은 3월27일 주주총회에서 사내이사(저널리즘 책무 이사)에 양상우 전 한겨레 사장을, 기타 비상무이사에 이상규 비즈마켓 이사회 의장을, 사외이사에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이유정 법무법인 원 대표변호사, 박광일 공영기업 대표이사를 선임했다. 이어 열린 YTN 이사회는 양 이사를 이사회 의장으로 선출했다. 언론계에서는 최대주주 자격 취소 판결에 위협을 느낀 유진그룹이 소위 ‘진보’ 인사들로 이사회를 구성해 현 정권과 코드를 맞추려는 것이라고 분석한다.
나 기자는 그날 주주총회장에서 양상우 이사의 말을 듣고 눈앞이 깜깜해졌다. 그는 “아직 이사도 아닌 이사 후보 신분으로 마이크를 놓지 않고 교장 선생님이 훈화하듯 일장 연설을 이어가는 모습이 상당히 기이했다”고 말했다. 당시 주주총회장 밖에서는 YTN 구성원들이 이사 선임 철회를 촉구하는 결의대회를 열고 있었다. 양 이사는 밖에 있는 구성원들이 함께했으면 좋겠다며 주총장 문을 열라고 했다. 그날 양 이사는 많은 말을 쏟아냈는데, 나 기자는 이 말에 모욕감을 느꼈다. “비즈니스 시대에 소유구조는 상관없이 좋은 대우를 받으면 보람을 느낄 텐데, YTN 구성원들은 꿈이 없는 것 같다.”
“공정하고 독립적인 방송을 해보겠다고, 정치와 자본 권력의 입김에서 벗어나 보겠다고 1년 사이 7번째 파업 중이던 조합원들에게 꿈이 없는 것 같다니요. 독립 언론을 열망하는 시민들의 참여로 만든 한겨레에서 사장을 두 번이나 지낸 인물이 할 수 있는 말인가요. 스스로를 돌아봐야 합니다.” 나 기자는 주총 이후 조합원 결의대회에 합류해 후배들의 이야기를 듣다가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한번 터진 눈물은 속절없이 흘러내렸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집회 때 울고 그러지 않는데 후배들 보니까 속상하고 미안하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양 의장은 ‘이사회 중심의 책임경영’ 명분을 내세웠고, YTN 이사회는 산하에 저널리즘 책무 위원회와 거버넌스 위원회 등을 신설했다. 김백 전 사장의 ‘김건희 보도 등 대국민 사과 방송’과 ‘현대차 장남 기사 삭제’ 사건에 대한 진상 조사에 들어가고, 거버넌스 위원회를 통해 사장후보추천위원회 구성을 위한 노사 협상에 직접 나선다고 밝혔다. 나 기자는 “불길한 예고편 같았던 주주총회 발언이 이사회 출범 직후 노골적인 YTN 장악 움직임으로 가시화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사회가 산하 직속 위원회를 구성해 YTN 보도와 사추위 구성에 관여하겠다고 나섰습니다. 이사회정책기획실을 만들어 기존 YTN 정책실 인력을 데려갔고요. 노조는 이사회가 YTN의 경영·보도·인사 전반에 직접 개입하려는 것으로 판단합니다.” 그는 “양 의장은 저희가 생각했던 것으로 이상으로 위험한 것 같다”고 했다.
정직한 목소리 가진 좋은 인터뷰어 목표
2010년 YTN에 입사한 나 기자는 세월이 물처럼 흐르며 중참 기자가 됐다. 어떻게 하다 보니 첫 직장으로 YTN에 들어왔고, 사회부, 앵커팀, 정치부, 경제부, 편집부 등 다양한 직군과 취재 영역을 누볐다. 그 과정에서 YTN 사람들은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해 가장 마지막에 철수하는 사람들이라는 걸 알게 됐다. 보도 유관부서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주5일제도 거의 해본 적이 없다는 것도. 그리고 지금은 자신의 삶에 한자리를 차지할 줄 몰랐던 노조 전임자로 일하고 있다. 노조 일을 마치고 보도국으로 돌아가면 18년차 기자가 된다.
“이제는 조금 더 깊은 시각과 긴 호흡으로 취재해 보고 싶습니다. 11년 전 사건팀에서 했던 기획 리포트 ‘사람 속으로’라고 있었어요. 노동과 인권 같은 가치의 문제를 한 사람을 조명해 짧은 다큐멘터리로 전하는 리포트였습니다. 그때 제가 취재했던 분들은 유명인이나 활동가가 아니었어요. 접경지역 주민들이나 고물상 사장님 소개로 만난 홀몸 어르신이기도 했어요. 적당한 거리에서 카메라 렌즈를 대고 기다리면 그분들의 삶 곳곳에서 질문들이, 우리가 같이 나눠볼 이야기들이 튀어나왔어요. 쏟아지는 이야기들을 다 주워 담아 5분짜리 리포트에 꿰어낼 능력이 안 돼 ‘내가 지면기자면 좋겠다’는 생각을 참 많이 했습니다. 다시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때보다 조금은 더 성숙한 기사를 쓸 수 있지 않을까요.”
그는 맑은 눈과 정직한 목소리를 가진 좋은 인터뷰어가 되고 싶다고 했다. 보도국으로 복귀했을 내년 이 무렵, 그의 노조 활동이 씨앗을 뿌린 YTN 뉴스룸은 더 좋은 뉴스에 대한 열망들이 봄꽃처럼 피어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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