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일 중 사라진 '하루'
환경부 소속 낙동강유역환경청의 채용 계약은 이상한 점이 있었습니다. 모두가 쉬는 1월 1일을 제외한 1월 2일부터 계약을 체결한 건데, 단 하루의 공백으로 근로자는 1년 치 퇴직금을 받을 수 없는 '364일'의 굴레에 갇혔습니다. 타 기관에 문의했을 때 역시 "의아하다"는 반응이 돌아왔습니다. 예산 절감을 위해 노동자의 피땀을 가로채는 행태가 국가기관에서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취재를 결심했습니다.
‘노동 도둑질’ 대통령실 발언에도..
첫 보도 이후 사안은 '노동 도둑질'이라는 대통령실의 비판과 함께 국가적 의제로 부상했습니다. 대통령은 직접 수차례 공식 석상에서 보도를 근거로 정부부처에게 개선을 요구했습니다. 그럼에도 행정 최일선의 온도는 달랐습니다. 전국 500여 개 공공기관의 공고를 전수 조사한 결과, 고용노동부 산하 기관을 포함한 다수 기관은 '11개월 계약' 등 대통령이 근절을 지시한 계약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상부의 지시가 현장 가이드라인으로 연결되지 못한 채 공허한 메아리에 그치고 있는 실태를 보도했습니다.
‘관행’ 뒤에 숨겨진 눈물
전국에서 절박한 제보가 쏟아졌습니다. 경남 의령군청에서는 11개월 단위로 계약을 쪼개며 최대 6년 가까이 헌신한 노동자들이 퇴직금 한 푼 없이 일터에서 밀려났습니다. "그렇게 해왔다"는 군청 측의 답변은 무책임했습니다. 계약서를 정밀 분석해 서류상의 숫자와 달리 실질 근로가 유지된 것으로 보인다는 전문가 의견 등을 토대로 공직 사회에 뿌리 깊게 박힌 고용 윤리의 부재를 고발했습니다.
멈춰있던 관행을 움직인 기록의 힘
보도는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냈습니다. 낙동강청은 퇴직금을 지급하기로 했고, 고용노동부는 재발방지책 마련에 착수했습니다. 의령군은 군수가 직접 근절을 약속하며 책임있는 조사를 받게 되었습니다. 산불 등 재난 상황 속에서도 취재의 끈을 놓지 않았던 건 계약서상의 '하루'가 누군가에게는 삶을 지탱하는 자부심이자 땀의 대가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관행 뒤에 숨은 부당함을 찾아내는 일, 상식을 지키기 위한 추적을 멈추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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