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여기가 국회라고 해도 면책특권이 있다고 해서 사실이 아닌 걸 사실 확인하시지 않고…… (중략) 그것도 없이 일부 정보를 가지고 말씀하시는 건 곤란하고요. (후략)”
3월11일 열린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회의에서 최민희 위원장이 ‘이재명 대통령-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 악수 영상’과 관련해 KTV에 연락한 것은 직권남용이라고 국민의힘 쪽에서 비판하자 KTV에 직접 연락한 적 없다며 최 위원장이 한 말이다. 최 위원장은 이날 회의를 끝내며 “사실에 기초해서 문제 제기해 주시기 바란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그런 최 위원장이 1일 고광헌 방송미디어통신심의위원회 위원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최근 논란이 된 ‘그것이 알고 싶다’(그알)와 관련해 검언유착의 실상이 공개됐다는, 사실이라면 엄청날 주장을 폈다. 단지 주장만 한 게 아니다. 철저한 독립성 보장이 요구되는 심의기구의 수장이 될 후보자에게 이미 2020년 당시 방심위로부터 행정지도를 받은 그알에 대해 법에 있지도 않은 재심이 가능한지를 물으며 “만일 누군가 재심을 넣는다면 꼼꼼하게 검토해 달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초대 방미심위 위원장이자 사상 초유의 심의기구 수장 후보자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그알 청문회’를 예고했던 최 위원장은 이날 작심한 듯 그알 문제를 파고들었다. 주질의 시간 7분의 절반이 넘는 4분30초 동안 후보자 검증 대신 “왜 그알이 문제 되는지”를 PPT를 띄워가며 설명했다. 해당 PPT 자료 등의 출처는 봉지욱 전 뉴스타파 기자다.
최 위원장은 봉 기자가 취재해 유튜브 등에서 공개했던 내용을 토대로 2018년 7월 방송된 그알 ‘권력과 조폭-파타야 살인사건 그 후 1년’과 관련해 “새로운 사실”이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날 최 위원장이 한 말에선 무엇이 ‘새로운 사실’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검사가 어떻게 알았을까”→ 검언유착 핵심?
일단 선후 관계도 꼬여 있고, 인과 관계도 분명치 않다. 최 위원장이 가장 먼저 띄운 PPT에 나온 내용은 이렇다. 성남국제마피아파 조직원 출신으로 파타야 살인사건의 범인 김형진이 2023년 9월11일 박철민 사건 재판에 나가서 자신이 수사받을 당시 검사가 이재명(현 대통령)과 엮으려고 하면서 “몇 달 있으면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2차적으로 또 보도가 될 거다”라고 했다고 증언한 내용이다. 박철민은 역시 국제마피아파 출신으로 ‘이재명 대통령이 조폭 자금 20억원을 받았다’고 허위 주장한 인물이다.
이를 두고 최 위원장은 “검사가 어떻게 그알이 2차 보도를 하는 걸 아느냐”면서 이를 검언유착 의혹의 핵심인 양 지적했다. 그는 “그알이 처음 보도한 이후로 박철민이 구상을 하게 되고 2차 보도 전에 검사로부터 2차 보도가 있으리라는 얘기를 듣게 된다”며 “이것이 그알 보도의 가장 큰 문제다. 검사가 어떻게 알게 됐을까”라고 거듭 의심을 표했다.
그러나 이는 사건의 선후가 바뀌고 기본적인 사실관계도 분명치 않은 주장이다. 김형진이 “정치 검찰”이 이재명 대통령과의 “커넥션”을 “허위로 인정하는 증언”을 하면 형량을 낮춰주겠다며 자신을 회유했다는 시점은 2018년 4월 이후, 베트남에서 검거된 김형진이 한국으로 송환돼 수사를 받던 때로 보는 게 정황상 맞다. 김형진에게 옥중 편지를 받았다는 봉지욱 기자도 TBS ‘봉지욱의 봉인해제’ 등에서 그 시점을 2018년 4~5월경으로 추정했다.
앞서 그알은 2017년 7월 ‘청춘의 덫-파타야 살인사건 미스터리’에서 2015년 태국에서 발생한 한국인 살인사건을 다루며 유력한 용의자 김형진의 행방 등을 추적했다. 그리고 이듬해인 2018년 4월 김형진이 한국으로 송환돼 본격적인 수사가 시작됐다. 이어 그해 7월, 같은 그알 PD가 후속편 격인 ‘권력과 조폭-파타야 살인사건 그 후 1년’을 내보냈다.
이후 같은 사건이 그알에서 다뤄진 적이 없으니 김형진 증언 속 등장하는 ‘2차 보도’는 2018년 7월 방송분으로 보는 게 합리적이다. 방송에서 쫓던 피의자가 검거된 만큼 후속 방송을 준비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고, 수사기관을 취재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미스터리 범죄 사건을 주로 다루는 그알은 방대한 수사자료나 증거 등을 토대로 사건을 추적·재조명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새로운 단서를 발견해 수사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이 사건만 보더라도 2021년 경향신문 기사 <‘파타야 살인사건’ 5년 만의 1심 판결…그동안의 이야기들>에 따르면 2017년 그알 방송 후 김형진의 행방을 안다는 제보가 이어지면서 경찰이 수사망을 좁힐 수 있었고, 결국 소재가 파악돼 체포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최 위원장은 그알이 방송을 준비 중인 걸 검사가 알더라는 것만으로 마치 어떤 커넥션이 있는 양 의심을 표했다.
최 위원장의 설명은 순서도 뒤죽박죽이다. 그는 “그알이 처음 보도한 이후로 박철민이 (이 대통령과 조폭을 엮을) 구상을 하게 되고 2차 보도 전에 검사로부터 2차 보도가 있으리라는 얘기를 듣게 된다”고 했는데, 박철민이 그알 ‘권력과 조폭’편을 본 것으로 추정되는 시점은 본인 사건 판결문에 나와 있듯이 2021년 3월이다. 최 위원장이 언급한 ‘처음 보도’와 ‘2차 보도’는 무엇을 가리키는지 불분명할뿐더러 시간도 뒤섞여 있어 의미를 파악하는 것조차 어렵다. 중요한 건 이 정도를 근거로 “검언유착의 실상이 공개됐다”는, 사실이면 엄청날 주장을 했다는 것이다.
최 위원장 “단순 오보 아냐… 조사할 길 찾아야”
다음 날 최 위원장은 봉 기자 등과 함께 유튜브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에 출연해 다시 이 검언유착 주장을 이어갔다. 그런데 여기서도 그 이상 어떤 증거도 제시된 게 없었다. 대신 ‘의심’은 계속됐다. 대통령 후보와 조폭을 엮을 정도의 방송엔 ‘의도’가 있고, 그 배후 혹은 출처엔 검찰이나 국민의힘이 있었을 거라는 추측이다. 진행자 김어준씨는 “그거를 PD가 자의적으로 했을 리는 없고 PD가 그렇게 방송에 내보낼 만큼 누군가가 확신을 줬을 거 아니냐”고 말했다.
최 위원장은 “단순히 그알에 오보? 내지는 이게 예를 들면 누구 대통령 만들기 보도 이 정도로 생각했는데 그 차원을 넘는 거라 저희가 국회로까지 끌고 들어가게 된 것”이라면서 “조사를 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를 찾아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봉 기자는 “대통령이 쓰다 만 소설이라고 그랬는데, 그 소설로 인해서 0.73% 대선 결과가 뒤집혔을 수 있다”고 말했다.
말인즉슨 2018년 그알 방송에서 2021년 박철민과 장영하 변호사의 허위 폭로, 그리고 2022년 이재명 대통령 후보의 대선 패배까지 “누군가”의 큰 “그림” 안에 있었다는 것이다. 실제 박철민의 ‘20억 돈다발’ 등 허위 주장을 유죄라고 본 법원은 이재명 후보 낙선에 기여해 반대 후보, 즉 윤석열 당시 대통령 후보 측의 비호를 받고자 했다는 걸 범행 동기로 인정했다.
하지만 여기에 그알이 연결될만한 근거는 여전히 알 수 없다. 최 위원장은 그알이 비약을 통해 이재명 대통령을 걸고 들어갔다고 비판했는데, 최 위원장의 주장 역시 비약이다. 그알이 방송된 2018년 7월 당시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차기 대권 주자의 한 명이긴 했으나, 유력 후보까진 아니었다. 직전 해 대선에선 당내 경선에서 3위로 탈락했고, 2018년 6월 경기도지사에 당선된 직후 천지일보가 리서치뷰에 의뢰해 진행한 여론조사에선 민주당 대권 주자 선호도 5위를 차지했다. 당시는 3선에 성공한 고 박원순 서울시장이 가장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로 떠오른 때였다. 그런데 이제 막 경기도지사에 당선됐고 대선까진 4년 가까이 남은 시점에서 대선 후보가 될지도 알 수 없는 특정 정치인의 낙선을 기도해 허위 방송으로 흠집내기를 한다? 그것도 검찰과 유착해서?
그알이 영화 등을 이용한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편집·연출로 이재명 대통령이 조폭과 연결돼 있다는 인상을 각인시켰다는 비판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방송을 3년 뒤에 본 누군가가 이를 이용해 이재명 당시 대선 후보의 지지율을 떨어뜨리려고 작당 모의를 했고, 이 과정에서 검찰이 어떤 역할을 했을 거라고 추정된다고 해서 이를 검언유착으로 보는 것이야말로 심각한 비약이다.
채널A 기자 검언유착 논란 때도 최소한 ‘녹취록’은 있었는데…
과거 검언유착 논란으로 가장 떠들썩했던 이동재 채널A 기자 사건만 해도 해당 기자의 음성 파일과 녹취록 등 ‘물증’이 있었다. 그런데 최 위원장이 제기한 의혹의 핵심 근거는 살인과 허위사실 유포 등의 범죄를 저질러 수감 중인 이들의 법정 증언과 옥중 편지 등뿐이다. 검언유착의 ‘실상’이 드러났다고 볼만한 법적·구조적 증거는 현재까지 없다.
“사실에 근거해서 문제제기 해달라.” KTV에 대한 직권남용과 딸 결혼식 화환 요청설 등 의혹을 부인하며 최 위원장이 한 이 말은 타당하다. 다만 이 주문은 스스로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돼야 한다. 더욱이 최 위원장은 7월 시행을 앞둔, 이른바 ‘허위조작정보 근절법’ 입법을 주도한 장본인이다. 개정된 정보통신망법 제44조의10 제1항은 “고의 또는 과실로 불법정보, 허위정보, 조작정보 또는 허위조작정보를 정보통신망에 유통하여 타인에게 손해를 끼친 자는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과방위에서 한 발언은 면책특권의 보호를 받겠지만, 뉴스공장에 나가서 한 말은 다르다. 민주당은 앞서 뉴스공장에 나가 정부와 검찰이 이재명 대통령의 공소 취소를 두고 거래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장인수 기자를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고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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