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 이슈 답 구하던 기자, '여경 논란' 질문 재설계하다

[인터뷰] 류란 SBS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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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경찰은 현장에서 제 역할을 할 수 있는가?’ 류란 SBS 기자는 이 물음이 “실패를 반복하도록 설계된 질문”이라고 했다. 현장에서 경찰의 문제적 대응이 도마 위에 오를 때, 특히나 그 경찰이 여성일 때면 이른바 ‘여경 무용론’이 온라인에 도배되곤 한다. 이에 매뉴얼대로 대응했다는 해명, 경찰 치안의 한계를 성별 문제로만 특정해선 안 된다는 비판도 나온다. 그럼에도 갈등만 반복하는 ‘여경 논란’을 지켜보며 류 기자는 “늪에 빠져버린 느낌”이었다. 그래서 질문을 새롭게 던져보기로 했다.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경찰의 역할과 자질은 무엇인가.’

뉴스토리 <경찰의 자격> 보도로 언론노조 민주언론실천상을 수상한 류란 SBS 탐사보도부 기자를 19일 서울 목동 SBS 사옥에서 만났다.

2월7일 방송된 SBS ‘뉴스토리’ <경찰의 자격>은 ‘어떤 성별인가’가 아닌 ‘어떤 능력을 갖춘 경찰인가’라는 시각을 제시한 보도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지구대 여성 순경의 하루를 밀착 취재해 경찰 업무가 물리적 제압을 넘어 다층적인 영역임을 보여준다. 또 영국과 캐나다 등 해외 사례를 통해 역량 중심의 평가 체계를 구축해 온 국제적 흐름을 짚어냈다. “논란을 감수하고 어려운 주제를 정면으로 마주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이 보도는 2월 전국언론노동조합 민주언론실천상을 수상했다.


5주 동안 취재하는 내내 류 기자는 많은 고민과 부담을 안았다. 젠더 이슈를 다룰 땐 유독 더 그렇다. “이 이슈를 다룬다는 자체만으로 섭외가 정말 안 됐어요. 피의자를 완력으로 제압하는 것만이 경찰 일의 전부가 아니라는 걸 선명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지구대 여성 경찰의 하루가 구성상 굉장히 중요했거든요. 여성 경찰은 온라인 공간에서 혐오 대상이 되기 쉽잖아요. 되게 이상한 마음인데, 섭외 전화를 돌리면서도 섭외가 안 되기를 바랐어요. 결국 촬영에 응해 주셨는데 내가 저분을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다는 괴로움, 무슨 사명 의식으로 이 아이템을 발제했을까 싶은 생각도 내내 들었죠.”


“내가 방정이지, 이걸 왜 한다 했을까”란 소릴 반복했지만 사실 그는 누구보다 성평등에 진심인 기자다. ‘여경’에 주목했던 건 10여 년 전부터다. 6년차 사건기자 시절, 당시 유독 ‘20대’, ‘신참’을 강조하는 여경의 활약상에 대한 경찰 보도자료와 이를 ‘병아리 경찰’ 등으로 대상화하는 언론 보도 행태를 지적하는 취재수첩을 썼다. ‘사이다 글이다’, ‘기자님 감사하다’ 등 “우리나라 여성 경찰 모두에게 메일을 받았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예상 밖의 반응이 쏟아졌다. 그때부터 알게 된 여성 경찰들로부터 조직 내에서 겪는 어려움과 고민을 들었다. 같은 여성으로서, 미디어 젠더 연구자로서도 이 사안을 들여다보고 싶다는 생각이 이번 취재의 시작이었다.


류 기자는 서울대에서 여성학 석사를 거쳐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공부를 시작한 2020년 당시는 사내에 성평등이 의제화되는 분위기였다. 그에 앞서 교수의 파면까지 이끌어낸 <서울대 교수 성희롱 사건> 단독 보도를 하면서도 피해자 문제, 젠더 이슈 취재에 대한 고민이 들었고, 이후 서지현 검사의 ‘미투’ 사건, 검찰 내 성추행 진상조사단을 전담 취재한 법조 기자 시절을 거치며 본격적으로 공부하기로 마음먹었다. “답을 구하고 싶은 심정이었어요.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있는데 책도 읽고, 아무리 물어봐도 답이 없었거든요.”


이 시기 취재 현장에서 벗어나 언론노조 SBS본부 성평등위원장, 공정방송실천위원장을 맡으면서 직접 행동에 나서기도 했다. 언론사로서는 최초로 노조에 ‘성평등언론실천상’ 신설을 주도했다. 젠더 관련 콘텐츠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부딪치는 문제와 고민 등 수상자들의 구체적인 경험을 인터뷰를 통해 공유하는 방식으로도 안팎의 주목을 받았다. 사내 성폭력 사건 처리 과정에 있어서 피해자 보호를 돕도록 사규를 고치는 데도 힘을 썼다.


기자로서, 조직 내에서 성평등 이슈에 목소리를 낸다는 건 여전히 따가운 시선을 감내해야하는 일일 테다. 이 만만치 않은 작업을 계속 할 수 있는 힘은 어디서 나올까. “‘젠더 보도를 한다는 게 얼마나 가성비 떨어지는 일인가, 합리적이고 경제적인 인간이라면 절대 하지 않을 선택’이라고 자조하곤 해요. 그럼에도 굳이 이걸 하고 있다는 건 책임감 때문이겠죠. 무슨 일이 일어나도 감당할 용기도 필요하다고 봐요. 그래도 전보다는 나아지고 있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기에 버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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