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주변 모든 20대, 30대는 사실 더 이상 TV를 보지 않습니다. 중계라든지 보편적 서비스를 단순히 무료로 제공하는 것에 의미를 두기보다는 앞으로 얼마나 편하게 국민들이 접근할 수 있고, 쉽게 볼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JTBC에서 경기를 독점 중계한다는 것, 가능하다고 봅니다. 그런데 사전에 그것들이 국민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던 게 문제였습니다. 왜 한 채널에서 독점을 하게 됐는가에 대한 알 권리도 시청자에겐 있습니다.”
유료방송이 단독 중계한 2026 밀라노 코르티나 동계 올림픽을 경험한 시청자들의 요구는 단순하고 명료했다. 어떤 TV 채널, 기기를 통해서든 어디서나 편하게 경기를 접할 수 있기만 하면 된다는 거다.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가 20일 보편적 시청권 보장에 대한 사회적 의견 수렴을 위해 마련한 공개 간담회에서 나온 시민들의 발언이다.
이 간단해 보이는 요구가 이번 동계 올림픽에선 실현되지 않았다는 것, 또 얼마 남지 않은 북중미 월드컵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질 거란 우려가 나오는 이유에 대해 조영신 동국대 영화영상제작학과 대우교수는 “미디어 환경 변화를 담아내지 못한 현 보편적 시청권 제도의 구조적 결함”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법상 기술적 수치인 TV 가구 도달률을 충족하는 데 그치고 중계권 협상 공정성만을 강조한 사이, 정작 국민이 체감하는 시청권의 질과 사회적 화제성은 확보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이날 방미통위 주최 ‘2026년도 북중미 월드컵 관련 보편적 시청권 보장을 위한 대국민 의견 수렴 공개 간담회’에선 학계와 방송미디어통신 전문가를 비롯해 체육계, 청년, 소비자 시민단체 등에서 13명이 참석해 다양한 방안을 제시했다. 전문가들은 OTT의 자본 공세, 치솟는 중계권료 대비 방송사 경영 악화 등의 현상은 국내만이 아닌 해외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라 짚으며 중계권 재판매 협상 난항을 겪는 방송사들의 책임만 따질 게 아니라 정부 차원의 대응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류신환 방미통위 위원이 토론 진행을 맡은 이날 간담회에선 방미통위 실무 책임자도 직접 토론에 참여해 제도 개선 방침을 알렸다. 법제 개선 작업과 더불어 방미통위는 월드컵 중계권 재판매 협상 중재를 위해 JTBC와 지상파 3사 간의 실무자급 회의, 책임자급 회의를 10여 차례 진행하고, 김종철 방미통위 위원장이 직접 방송사 사장과 최고위급 면담을 진행했지만 협상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곽진희 방미통위 방송기반국장 직무대리는 제도 개선 추진 방향으로 △올림픽, 월드컵 등 지상파TV 채널 1개 또는 2개 이상을 통한 의무 중계 △디지털 환경에서의 무료 보편적 시청권 보장을 위한 지상파·유료방송·OTT 등 사업자가 연대하고 공생하는 협의체 마련 △중계 방송 전 단계에서의 사전 승인제 도입 등을 제시했다.
그는 “지상파, 유료방송, OTT 등 모든 영역에서 보편적 시청권이 충분히 보장되고 있는지를 사전에 승인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된다면 특정 사업자가 중계권을 높은 가격으로 확보하는 사안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며 “또 전 세계적으로 굉장히 높은 중계권료를 살 수 있는 구매자는 굉장히 제한적인데, 모든 사업자들을 참여시켜 합리적으로 배분하는 역할을 하는 법적 장치, 행정 집행력을 담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정부와 국회에 보편적 시청권 제도의 정교한 설계를 주문했다. 발제를 맡은 조영신 교수는 우선 보편적 시청권 보장 지정 행사에 대한 경직성부터 타개해야 한다고 했다. 현재 국민관심행사가 올림픽, 월드컵 등 전통적인 스포츠 종목에 고착돼 있어 시대 변화를 반영하지 못할 뿐 아니라, 단순히 대회 명칭만 규정돼 있어 보장 수준에 따른 체계적 분류와 실시간이나 녹화 방송 등 중계 범위에 대해 지정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는 영국 등 방송 사업자간 협상 가인드라인 사례도 소개하며 “예측 가능한 가이드라인은 전체 시장의 가격 안정성 확보에도 기여한다”면서 “유료방송 사업자가 중계권을 확보하더라도 과도하게 금액을 올릴 수 없도록 하는 안전장치가 협상 가이드라인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 또한 중요한 포인트”라고 설명했다.
“보편적 시청권 제도, 규제보다 지원의 틀로 전환해야”
보편적 시청권 제도를 규제보다는 지원의 틀로 전환해야 한다는 의견도 다수였다. 이종성 한양대 스포츠산업과학부 교수는 “정부 차원의 공적 자금 지원이 없다면 월드컵 전 경기 중계는 절대로 불가능하다”며 치솟은 중계권료로 인해 일본의 경우 북중미 월드컵 전 경기 중계는 다진(DAZN) 스포츠 OTT가 맡고 NHK, 후지TV 등 TV 채널이 일부 경기만을 중계한다는 점을 들었다. 그는 “특히 월드컵 전 경기 중계를 무료 지상파가 해야 되는지는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 될 문제”리며 “더 많은 방송사들이 참여하게 해서 풀을 확대하고 뉴미디어에 전 경기 중계 모델을 현실적으로 주는 게 맞지 않나 보여진다”고 말했다.
곽규태 순천향대 글로벌문화산업학과 교수도 “문제는 월드컵 중계권이 매우 비싸다는 거다. 지난 대회에서 다음 대회로 넘어갈 때마다 중계권료가 평균 15% 정도 인상되고 있다고 파악하고 있다”며 “국내 방송 환경상 앞으로 우리나라 미디어 기업 중에 단독으로 큰 행사를 독점으로 중계할 수 있는 회사는 없다고 생각한다. 공적 재원으로 지원할 수 있도록 하고, 이 재원을 공급하기 위해 방송 사업자 외에도 부가통신 사업자나 OTT 사업자들이 컨소시엄에 들어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편적 시청권 제도가 사회 포용의 가치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는 제안도 주목할 지점이다. 박권일 강원특별자치도 장애인 체육회 컬링 대표팀 감독은 “이번 동계올림픽 단독 중계 체제에선 광고 수익이 나는 인기 종목에만 편중이 심화됐다. 중계 범위의 불확실성 문제로 인해 컬링과 같은 비인지·비인기 종목은 설 자리를 잃었다”며 “영국의 사례처럼 중요한 이벤트를 지정해 주요 경기의 실시간 중계를 법적으로 강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패럴림픽 중계는 시청권을 넘어선 인권의 문제”라며 “소수자 포용 정책 종목을 리스트에 명시해 사회적 자산으로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민 누구나 차별 없이 국가적 행사를 즐겨야 한다는 보편적 시청권의 본질적 목표는 여기서 완성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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