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말한다. “영남에 맛있는 요리가 있어?” 때론 이런 말도 덧붙인다. “거긴 한국에서 제일 먹을 게 없는 도시들이야.” 과연 그럴까? 호남에서 4년, 서울에서 18년, 나머지 시간을 영남에서 살고 있는 필자로선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뭔가 말하고 싶은 열망에 몸이 들썩거린다. <역사와 스토리가 있는 영남 음식>은 그런 이유에서 발원한 졸고다. [편집자 주]
스물다섯 살이던 때이니 벌써 30년 전이다. 여행을 가면 칫솔도 함께 쓰던 막역지우(莫逆之友) 하나가 뒤늦게 군대에 가게 됐다.
반쯤은 측은한 마음, 절반은 놀려먹으려는 심사를 가지고 그가 학교를 다니고 졸업한 도시인 대구로 갔다.
“어떡하냐? 내일모레면 막냇동생 나이의 조교들에게 조인트 까이게 생겼네.”
사람 좋은 친구는 그러거나 말거나 빙그레 웃으며 “입대하는 거 보려고 먼 곳까지 와줬으니 오늘은 맛있는 걸 사줘야겠네. 뭉티기 먹으러 가자”며 번화가를 휘적휘적 앞장서 걸었다.
나와 또 다른 친구 하나가 이구동성으로 물었다.
“뭉티기가 뭔데?”
처음 ‘뭉티기’라는 단어를 들었을 땐 망치나 모루를 떠올렸다. 투박하고 거친 느낌이 드는 말이었기에. 뭉. 티. 기.…
대구에서 꽤 오래 생활하며 뭉티기를 몇 번 먹어본 입대 앞둔 친구가 낄낄대며 짤막한 설명을 들려줬다.
“쇠고기 엉덩이 살을 뭉텅뭉텅 썰어 날것으로 먹는 거야. 이 촌놈들아.”
마찬가지로 날것인 광어회나 우럭회야 가끔씩 즐겼으나, 익히지 않은 쇠고기를 접한 건 그날이 처음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뭉티기가 ‘대구 10미(味)’에 포함되는 음식이란 건 십수 년이 지난 후에 누군가에게 들었다.
다진 물고추와 마늘, 참기름 등으로 만든 ‘시뻘건’ 양념장에 그 역시 ‘시뻘건’ 소의 생고기를 찍어 먹으며 곁들인 소주는 꿀처럼 달았다.
폭음을 한 우리는 연병장을 기어다니는 연습이라도 하듯 허름한 여인숙으로 기어들어가 꿈도 없이 잠들었다. 아니, 슬픈 눈망울을 가진 소가 등장하는 꿈을 꾸었던가?
포항은 대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도시다. 사는 곳을 서울에서 포항으로 옮기면서 대구를 오가는 일이 드물지 않아졌다.
이제 뭉티기는 요즘 친구들 말로 나의 ‘최애 안주’ 중 하나가 됐다. 맛깔스런 뭉티기를 내놓는 대구와 경산의 맛집도 두어 군데 알고 있다.
<대구역사문화대전>은 뭉티기를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걸 짧게 요약해 옮기면 아래와 같다.
‘엄지손가락 한 마디 크기로 썰어낸 생쇠고기를 의미하는 경상도 사투리. 소 뒷다리 안쪽 허벅지살을 잘라 참기름, 마늘, 굵게 빻은 고춧가루 등을 섞은 양념에 찍어 먹는다. 유일하게 대구에만 있다.’
누가, 언제, 어느 식당에서 가장 먼저 뭉티기를 만들어 손님에게 팔았는지에 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그 가운데 한국전쟁이 끝난 1950년대 중후반 대구 향촌동의 한 고깃집 주인장이 갓 도축된 신선한 쇠고기를 솜씨 좋게 썰어내 유명세를 얻었다는 설(說)이 비교적 믿을 만한 것이라고.
삶아 먹고, 구워 먹고, 날것으로 먹고…. 다양한 요리법이라면 어느 나라에도 빠지지 않는 중국. 그 나라 사람들은 우리보다 일찍 날것의 육고기를 먹은 것으로 추정된다.
<초한지(楚漢志)>엔 한나라의 우두머리 유방(劉邦)을 따르던 용맹한 장수 번쾌(樊噲)가 등장한다. 그는 쇠고기도 아닌 돼지고기를 자신의 칼로 큼직하게 썰어 날것으로 꿀꺽 삼켰다고. 번쾌의 ‘돼지고기 생식’은 자그마치 2200여 년 전 이야기다.
오늘날의 뭉티기 같은 형태는 아니겠지만, 우리 조상들도 오래전부터 소고기를 날것으로 먹었으리라 짐작된다.
<고려사> <삼국사기> <진찬의궤> 등의 고문헌에선 고기는 물론 소의 천엽과 콩팥 등 일부 내장까지 후춧가루와 깨소금 등에 버무려 육회로 먹었다는 기록이 발견된다.
수백 년 전 평범한 백성이었다면 일생 보지도 못할 귀한 음식이었으니, 왕족이나 고위 벼슬아치의 생일잔치나 열려야 소수의 사람만이 그 맛을 봤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그 옛날 조선시대나 21세기인 오늘이나 ‘남의 살’이 맛있긴 맛있는 모양이다. 그래서일까? 글을 쓰다가 ‘남의 생살’ 뭉티기를 떠올리니 갑작스레 입안에 침이 고인다.
[필자 소개] 홍성식
1971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중·고교 시절. 영어 단어와 수학 공식을 외우라는 교사의 권유를 거부하고, 김지하와 이성부의 시를 읽으며 ‘미성년자 관람 불가’ 영화를 보러 극장에 드나들었다. 그 기질이 지금도 여전해 아직도 스스로를 ‘보편에 저항하는 인간’으로 착각하며 산다. 노동일보와 오마이뉴스를 거쳐 현재는 경북매일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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