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태양의 환상, 지워지는 농촌의 비명

[언론 다시보기] 박누리 농촌 기록 활동가(전 월간옥이네 편집장)

박누리 농촌 기록 활동가(전 월간옥이네 편집장)

오늘날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지방소멸’ 담론은 농촌 수탈을 정당화하는 편리한 알리바이다. 인구학적 통계를 근거로 농촌을 ‘자연스럽게 도태되어야 할 구시대의 잔재’로 취급하는 사이, 자본은 이 공간을 재생에너지 생산 기지이자 인공지능(AI) 산업의 배후지로 재편하고 있다. ‘녹색 성장’과 ‘에너지 전환’이라는 세련된 이름의 수탈이 농촌을 파고드는 중이다.


그 최전선에서 요란하게 등장하고 있는 것이 이른바 ‘햇빛연금’ 성공 신화다. 이번 정부의 신재생에너지 정책과 맞물려, 주류 언론은 특정 마을 사례를 농촌 재생 모델로 반복 보도한다. 유휴지 태양광 시설로 연간 억대 수익을 올리고 주민 복지를 실현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는 농촌 마을의 보편적 모델로 삼기엔 무리가 많다. 해당 사례는 인근 가스발전소 건립에 따른 특별지원금과 군유지 활용, 그리고 공공성을 강조하는 마을 리더의 존재라는 극히 예외적인 조건이 결합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이 ‘기적’의 이면에 숨겨진 금융 리스크도 직시해야 한다. 정부가 권장하는 대다수 ‘주민 주도형’ 태양광 사업은 총사업비의 90%가량을 외부 대출에 의존한다. 극단적인 레버리지 투자 방식이다. 전력 판매가가 하락하거나 원리금 상환이 본격화되면 마을 공동체는 채무 압박을 마주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결국 현재의 ‘주민 주도형 태양광 사업’은 마을 공동체로 하여금 빚을 내어 에너지 시장의 투기 주체로 만드는 과정이다. 언론은 장밋빛 수익률만 받아쓸 뿐, 향후 마을이 지게 될 금융 리스크는 제대로 보지 않는다.


전체 농업인의 절반 이상이 임차농인 현실에서, 농촌 지역의 태양광 사업은 소작농을 축출하는 강력한 동인이라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수십년 농사를 지어온 이들이 하루아침에 농지에서 쫓겨나거나, ‘에너지 협동조합’이 찬성 여론을 조작하는 도구로 전락해 마을 공동체가 산산조각 나는 일도 있다. 멀쩡한 우량 농지를 ‘염해 간척지’로 둔갑시켜 태양광 시설을 설치하려는 움직임도 거세다. 행정 편의와 자본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결과, 식량 주권의 보루인 농지가 에너지 공장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쌀 대신 전기를 먹고 살 수 없음에도 말이다.


수탈의 흐름은 이제 AI 산업과 데이터센터 유치 담론으로 확장 중이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등에 필요한 전력 공급을 위해 농촌은 국가 첨단 산업을 뒷받침하는 배터리 기지로 재편되고 있다. 인구 감소와 재정 압박에 몰린 지자체들은 ‘대규모 투자 유치’라는 명분으로 충분한 정보 공개나 숙의 없이 주민 주권을 박탈한다. 농촌의 삶터가 자본의 실험장이 되는 과정이다. 여기에 막대한 전력을 집어삼키는 AI 산업의 확장은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시대적 과제와도 정면으로 충돌한다. ‘녹색’ 탈을 쓴 채 기후를 망치는 산업을 위해 농촌을 제물로 삼는 이 모순, 과연 누구를 위한 전환일까.


그럼에도 주류 언론은 여전히 산업 발전의 당위성만을 전제한다. 정책 방향을 점검하고 숙의의 장을 열기는커녕 ‘부작용이 우려되나 대책을 마련하며 추진해야 할 과제’라는 ‘중립 기어’ 보도에 머문다. 이는 결과적으로 자본의 농촌 수탈을 정당화하고, 농민을 주권자가 아닌 ‘보상금을 주고 달래야 할 민원인’으로 객체화하는 데 공모하는 행위다. 언론은 자본의 확성기가 아닌 짓밟힌 대지와 그 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증언자여야 한다. 누군가의 삶터가 ‘미래’라는 이름으로 난도질당할 때 그 아픔을 기록하고 본질을 꿰뚫는 것이 언론의 마지막 염치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세련된 첨단 산업 보도가 아니라, 농촌 현장의 맥락이다. 농촌은 도시의 소모품이 아니며, 농민이 수탈의 대상이 되어서도 안 된다. 기후위기 시대의 진정한 전환은 농토를 발전소 부지로 만드는 데 있지 않다. 농업의 생태적 가치를 회복하고 농민이 자신의 삶터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주권’을 복원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농촌의 자기결정권이 지워진 자리에 세워진 발전소는 결코 우리 공동체의 미래를 비추는 태양이 될 수 없다. 개발 속도전의 공범이 될 것인가. 언론은 지금 제 자리를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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