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 단합 없이는 한국 영화의 미래는 없다

[이슈 인사이드 | 문화] 송석주 이투데이 생활문화부 기자

지난해 가을, 도서전 취재로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갔다. 한국 출판사들이 모인 부스에서 만난 프랑스의 한 편집자는 내게 <채식주의자>와 <흰>이 아주 좋았다며 ‘제2의 한강’이 누군지 알려달라고 했다. 잠시 고민하다가 김초엽과 정보라 작가의 이름을 적어주었다. 그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도 무척 좋아한다”고 말하며 떠났다. 다행히 ‘계엄’이나 ‘대통령 체포’, ‘탄핵’ 등의 이야기는 묻지 않았다.

팬데믹 이후 꺾인 한국 영화산업이 좀처럼 회복하지 못하면서 극장도 하나둘 사라지고 있다. 사진은 1월 대구 한 극장의 영업 종료 안내문. /뉴시스

출장 중 괴테 생가에도 갔다. 마침 생가 근처 상가에서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주제곡 ‘골든’이 울려 퍼졌다. 당대의 지성이었던 괴테도 이 노래를 들었다면, 곡 중간에 섞여 나오는 한국어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궁금해 인터넷으로 찾아보았을 것이다. 익숙하지 않은 동양의 언어가 음악 속에서 만들어내는 리듬과 정서를 흥미롭게 느끼며 한글에 호기심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괴테 생가에서 조금만 걸으면 영화박물관이 나온다. 영화의 탄생 과정을 비롯해 카메라 등 각종 영상 장치의 변천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도록 구성된 박물관이다. 3층 특별 전시관에는 롱테이크(long take)가 인상적인 영화들이 클립으로 전시돼 있었다. 박찬욱 감독이 연출한 <올드보이>의 유명한 장도리 장면도 있었다. 젊은 최민식이 장도리를 들고 펼치는 애잔한 활극을 먼 이국땅에서 마주하니 기분이 묘했다.


독일 출장에서 느꼈던 긍정적 감회와 별개로 국내 영화산업은 코로나19 이후 맥을 찾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영화시장 매출액은 1조 357억원으로 2022년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3년 연속 탄생한 ‘천만 영화’도 끊겼다. 극장에 사람이 없어지면서 투자가 위축되는 악순환이 반복하고 있다. CGV·롯데시네마·메가박스 등은 극장에서의 최소 상영 기간을 보장하는 홀드백(hold back) 도입을 주장하고 있지만, 업계 내 의견 차이로 제도화가 무산됐다.


홀드백뿐만이 아니다. 최근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극장 산업을 되살리기 위한 해법으로 ‘구독형 영화패스’를 제안했다. 정부와 극장이 일정 비용을 분담해 관객이 한 달에 네 편 안팎의 영화를 싼 가격으로 관람할 수 있게 하자는 취지다. 하지만 업계 관계자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투자 비용이 수익으로 환원될 가능성이 낮다는 이유에서다. 극장에서 볼 영화가 없는데 패스가 무슨 소용이냐는 목소리도 나왔다.


객단가 문제와 스크린쿼터제 역시 영화계의 해묵은 과제들이지만 여전히 해결이 요원하다. 극장과 OTT, 제작사와 투자·배급사들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각자의 주장만을 되풀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합의가 가능한 사안부터 차근차근 정리하며 실타래를 풀어가야 할 시점이지만, 영화계 내부는 소모적 대립에 빠져 있다. 국회에서 수시로 열리는 각종 영화 정책 토론회 또한 요식 행위로 전락한 지 오래다.

송석주 이투데이 생활문화부 기자.

생각해 보니 독일 출장 중에 만난 사람 그 누구도 현재의 한국 영화에 관해 묻지 않았다. 박찬욱 감독의 말처럼 한국 영화 산업이 큰 위기 상태에 있다는 것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넷플릭스 등 일부 글로벌 플랫폼의 성취를 K콘텐츠의 성공으로 도식화한다면 곤란하다. 위기 돌파를 위한 첫 번째 과제는 내부 단합이다. 그렇지 않다면 한국 영화는 ‘화양연화’로 기억된 홍콩영화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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