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갈비'와 '간고등어' 사이에서

[역사와 스토리가 있는 영남 음식] (24) 고등어

사람들은 말한다. “영남에 맛있는 요리가 있어?” 때론 이런 말도 덧붙인다. “거긴 한국에서 제일 먹을 게 없는 도시들이야.” 과연 그럴까? 호남에서 4년, 서울에서 18년, 나머지 시간을 영남에서 살고 있는 필자로선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뭔가 말하고 싶은 열망에 몸이 들썩거린다. <역사와 스토리가 있는 영남 음식>은 그런 이유에서 발원한 졸고다. [편집자 주]


간고등어로 유명한 경북 안동 시내에선 고등어를 그린 벽화를 보는 일이 흔하다.

시계를 돌려보자. 1980~1990년대 부산과 경상남도 마산. 싸구려 안주에 소주와 막걸리를 팔던 술집 메뉴판엔 ‘고갈비’라는 빨간 글씨가 선명했다.


‘저게 뭘까?’ 교사들의 눈을 피해 술을 배우기 시작한 고등학생과 ‘공식 음주권’을 갓 얻어낸 대학 신입생은 궁금할 만했다.


누군가는 “고씨 성(姓)을 가진 아저씨가 구워주는 갈비야”라는 농담을 하며 헤헤거렸고, 어떤 이는 “높은(高) 사람들만 먹는 갈비”라는 시시껄렁한 거짓말도 했다.


기억을 소환하면 안주로 그저 그만이던 고갈비의 가격은 1000~2000원. 계란말이와 함께 주점에서 가장 싼 안주에 속했던 듯하다. 대부분의 서민들이 소갈비는 물론, 돼지갈비도 특별한 날에나 먹던 때다.


이젠 국어사전에도 등재돼 있는 ‘고갈비’는 고등어에 양념을 해서 석쇠나 프라이팬에 구운 음식을 지칭한다. 여기서 ‘갈비’란 바삭하게 익힌 고등어의 뼈에 붙은 살을 말하는 것이겠고.


어업이 성했던 바닷가 도시인 부산과 마산. 짭짤하고 매콤한 양념을 잔뜩 끼얹은 고갈비를 시시때때로 맛볼 수 있었던 건 생물 고등어가 어시장 바닥에 널려 있을 만큼 흔했기 때문.


고갈비의 맛은 생선의 선도에 의해 좌우된다. 새벽 경매장에 도착한 고등어를 구입한 술집 주인이 그걸 연탄불에 구워 손님상으로 가져오면 두툼하고 촉촉한 살맛이 기가 막혔다.

고등어에 매콤짭짤한 양념을 발라 구운 고갈비.

고갈비의 재료는 얼마 전까지 펄떡펄떡 살아 뛰던 싱싱한 생선. 보관을 위해 소금을 뿌릴 필요가 없었다. 대신 고춧가루와 간장, 마늘과 파 등을 넣어 만든 가게마다의 ‘비법 양념장’을 노릇하게 구운 고등어에 올렸다.


휘황한 네온사인이 없던 30년 전 광안리 해수욕장과 아케이드가 만들어지기 이전의 마산 어시장. 20대 초중반이던 나는 그곳을 오가며 족히 ‘갈비 500대’는 뜯었던 것 같다. 모두가 짐작하다시피 소나 돼지의 갈비가 아닌 고등어의 갈비를.


고등어 등처럼 빛나게 푸른 청춘시절은 누구에게나 짧다. 그리고 기억만이 남았다. 한 병에 600원을 받던 대선소주와 무학소주, 그리고 고갈비가 50대 중반이 된 지금도 눈앞에 어른거린다.


양념장을 더한 생물 고등어가 아닌 소금에 절인 숙성 고등어의 맛을 알게 된 건 마흔을 넘겨서다.
10여 년 전쯤 유명 간잽이가 소금 뿌려 간을 했다는 ‘안동 간고등어’ 한 손을 선물 받았다. 고갈비와는 또 다른 미묘한 맛이 입맛을 사로잡았다.


고등어는 등 푸른 생선이다. 쉽게 상한다. ‘냉장 유통 시스템’이 시원찮던 과거엔 싱싱한 생물 고등어를 바다 인근에 사는 사람들만 먹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내륙에 살면서 고등어가 먹고 싶은 이들은 어떻게 했을까?


궁여지책으로 나온 게 소금을 이용해 이동 중인 고등어의 부패를 늦추는 것이었다. 경상북도 안동은 동해에서 멀리 떨어진 내륙 마을이다. 생물이 아닌 간고등어가 보편화될 수밖에 없는 지리적 환경.


생선에 소금을 뿌리는 ‘간잽이’라는 직업이 생길 수 있었던 건 안동에서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고등어를 먹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실제로 안동 시내엔 간고등어를 구워 파는 식당이 흔하고, 심지어 고등어를 그린 커다란 벽화까지 볼 수 있었다. 이는 고등어구이가 내세울 만한 지역의 명물 취급을 받는 것일 터.

간잽이라는 직업까지 만들어질 만큼 적절한 간이 생명인 간고등어.

지금으로부터 400~500여 년 전인 조선시대 문헌에서도 고등어는 발견된다. 당시 백성들은 고도어(古島魚), 고망어(古亡魚), 벽문어(碧紋魚), 등필이어(登必伊魚) 등으로 고등어를 불렀다. 내륙 사람들은 소금에 절인 고등어만을 먹을 수 있던 시절이다.


간고등어엔 고갈비에선 느낄 수 없는 ‘발효와 시간의 맛’이 담겼다. 그러니 “둘 중 어떤 게 더 맛있냐”는 질문은 무의미하고 무용하다. 각자의 입맛과 취향에 따라 선택하면 될 일.


그나저나 오늘 저녁엔 고갈비건 간고등어건 한 마리 구워 먹으면 좋겠는데, 어디 적당한 식당이 있으려나?


[필자 소개] 홍성식
1971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중·고교 시절. 영어 단어와 수학 공식을 외우라는 교사의 권유를 거부하고, 김지하와 이성부의 시를 읽으며 ‘미성년자 관람 불가’ 영화를 보러 극장에 드나들었다. 그 기질이 지금도 여전해 아직도 스스로를 ‘보편에 저항하는 인간’으로 착각하며 산다. 노동일보와 오마이뉴스를 거쳐 현재는 경북매일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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