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장범 KBS 사장 '사면초가'… 물러날 곳이 없다
법원, 박 사장 임명 주도 이사들 임명취소 판결… "사장 임명 무효" 분석
내정자 신분으로 12·3 계엄때 대통령실 소통하며 편성 개입했단 의혹도
박장범 KBS 사장의 입지가 연일 위태로워지고 있다. 법원이 박 사장 임명을 주도했던 KBS 이사들의 임명이 취소되어야 한다고 판결하면서, 법률상 자격이 없는 이사들이 제청한 박 사장의 임명 역시 무효라는 분석이 나온다.
여기에 취임 전부터 ‘용산발 낙하산’ 의혹이 일었던 박 사장이 12·3 비상계엄 당시 대통령실과 소통하며 방송 편성에 개입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당시 사장 내정자 신분으로, 방송 준비와 편성에 권한이 없던 박 사장이 보도책임자에게 연락해 방송에 개입했다면 직권남용에 해당할 수 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2부(부장판사 강재원)는 22일 여권 측으로 분류되는 김찬태·류일형·이상요·정재권 KBS 이사와 조숙현 전 KBS 이사가 방송통신위원회(현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와 대통령을 상대로 제기한 KBS 이사 임명 취소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KBS 이사는 방통위가 추천하고, 대통령이 임명한다. 앞서 이진숙 방통위원장은 취임 당일인 2024년 7월31일 김태규 부위원장과 둘이서만 전체회의를 열고, KBS 이사 정원 11명 중 7명만을 후임자로 선정해 대통령에게 추천하기로 의결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같은 날 이들 후임 이사를 임명했다.
법원은 ‘2인 체제’ 방통위의 신임 이사 추천 의결에 절차적 하자가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방통위가) 합의제 행정기관으로서 실질적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3인 이상의 위원이 재적하는 상태에서 재적위원 과반수의 찬성이 필요한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면서 “5인 중 2인의 위원만으로 KBS 이사 추천 의결을 한 것은 정족수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으므로 효력이 없다”고 했다. 결국 “추천 의결이 위법하여 효력이 없는 이상 이를 전제로 한 대통령의 임명 처분도 취소 사유가 있다”고 판결했다.
이번 판결은 대통령이 항소하지 않으면 그대로 확정된다. 이재명 정부는 출범 이후 나온 공영방송 이사(장) 해임 등 윤석열 정부 방통위에서 이뤄진 불법적 의사 결정을 취소하는 법원 판결에 대해 항소 포기 방침을 유지하고 있다.
판결이 확정될 경우 박장범 사장 임명 역시 취소될 가능성이 있다. KBS 사장은 이사회가 임명을 제청하면 대통령이 임명한다. 이사회의 임명 제청을 위해서는 이사회 재적의원 과반수의 찬성이 필요한데, 박 사장의 임명 제청안 의결은 11명 이사 중 임명 취소 판결을 받은 현 야권(당시 여권) 이사 7명의 찬성으로 이뤄졌다. 현 여권(당시 야권) 측 이사 4명은 사장 선임 절차 중단을 요구하며 퇴장해 표결에 참여하지 않았다.
임재성 법무법인 해마루 변호사는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야권 이사들의 임명 취소가 확정될 경우 그 효력은 임명 시로 소급해서 적용된다”면서 “박장범 사장의 임명제청안을 의결했던 이사 7인이 법률상 이사의 자격이 없는 상태이므로, 사장 임명에 동의한 이사가 없다. 즉, 의결정족수에 미달했으므로 무효”라고 설명했다.
박장범 사장, ‘계엄 담화’ 준비 지시했나
사장 선임 과정에서의 위법성 논란과 더불어 박 사장이 12·3 비상계엄 당시 KBS에 대통령의 계엄 선포 담화 준비를 지시했다는 의혹까지 확산하고 있다. KBS는 지상파 방송사 중 유일하게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긴급 담화를 적시 방송했는데, 이것이 대통령실과의 소통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경찰 수사 결과 박 사장은 계엄 당일 최재혁 당시 대통령실 홍보기획비서관과 연락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KBS에서는 12·3 비상계엄 직후 최재현 당시 보도국장이 대통령실 지시로 ‘계엄 방송’을 준비해 왔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계엄 선포 당일, 최 국장이 퇴근했다가 ‘뉴스9’ 방송 전인 오후 8시경 급하게 회사로 들어와 대통령실 담화가 예정됐다며 준비를 지시했다는 것이다. 최 국장이 담화의 성격을 묻는 질문에 ‘안보 관련’이라고 답했다는 내부 전언도 나왔다. 이후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과 한덕수 전 국무총리에 대한 수사 과정에서 계엄 선포 직전 대통령이 “22시에 KBS 생방송이 확정됐다”고 말했던 정황이 드러나면서 논란이 커졌다.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는 26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의혹의 핵심은 누가, 어떤 내용으로 전화했기에 퇴근한 보도국장이 다시 회사로 돌아왔느냐”였다면서 “최재현 당시 보도국장에게 전화한 주인공이 박장범 현 KBS 사장”이라고 밝혔다. 이어 “박장범 사장은 누구에게서 어떤 내용의 전화를 받았는지 스스로 밝히라”고 요구했다.
이날 저녁 MBC 보도에 따르면, 경찰은 박 사장이 계엄 당일 최재혁 전 비서관과 사전에 연락한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임명 전부터 ‘용산발 낙하산’ 의혹이 일었던 박장범 사장이 대통령실과 소통해왔다는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계엄 선포 담화를 차질 없이 준비해야 한다는 용산의 의중이 최재혁 당시 비서관과 박장범 내정자를 거쳐 최재현 보도국장에게 전달됐을 것이란 의심이 나온다.
KBS본부는 27일 성명을 내고 “박장범이 ‘대통령 담화’라는 중요한 사안과 관련해 취임 이전부터 김건희 라인과 연락할 만큼 밀접한 관계였다는 것이 드러난 것”이라며 “여러 의혹을 눙치고 넘어갈 것이 아니라, 무엇이 사실이 아니고, 무엇이 밝혀지지 않은 것이지 분명하게 말하라”고 강조했다.
KBS는 26일 KBS본부 기자회견과 관련해 “내란 특검과 경찰에서 이미 해당 의혹에 대해 조사했지만 사실로 밝혀진 바가 전혀 없다”면서 “사실과 다르다”는 입장을 냈다. 다만 박 사장이 계엄 당일 최 전 비서관과 연락했다는 내용이 담긴 MBC 보도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입장이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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