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공정성은 리더십의 다양성에서

[언론 다시보기] 한선 호남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나에게는 꿈이 있다. 연초 한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해 ‘여자 송해 선생이 되고 싶다’고 한 이금희 아나운서의 바람이 실현되는 꿈. 시사 프로그램에서 손석희나 정관용 앵커처럼 백발을 멋들어지게 쓸어 넘기는 여성 진행자가 자연스러워지는 꿈(가능성이 높았던 CBS 김현정 앵커의 하차 소식은 많이 아쉬웠다). 그리고 언론계에서 여성 주요 보직자의 수가 절반이 되는 꿈, 아니 최소한 언론계에서 활동하는 여성 언론인 숫자에 비례하는 만큼만이라도 여성 임원이 보장되는 꿈. 무엇보다 이 꿈이 이뤄지는 여정에 ‘역차별과 백래시의 반격’ 대신 응원의 마음이 가득 찬 꿈.

2023년 세계 여성의 날을 나흘 앞둔 3월4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전국여성노동조합 조합원들이 여성노동자 대회를 열고 유리천장을 찢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뉴시스

2010년대 이후 유엔개발계획(UNDP)이 발표하는 성불평등지수(GII: Gender Inequality Index)에서 우리나라는 지속적으로 세계 최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문제는 그 평균치의 미덕이 모든 영역에 똑같이 스며드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언론계만 해도 그렇다. 한국여성기자협회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2025 여성 기자 보직 현황’에 따르면 10월 기준으로 회원사 35곳의 여성 임원 수는 전체 임원 176명 중 7.4%에 불과한 13명이었다. 차기 임원 코스로 분류되는 여성 국·실·본부장 숫자도 전체 174명 중 16.7%인 29명이었다. 물론 조선일보에서 지난해 첫 여성 편집국장이 탄생했고, 한겨레와 코리아타임스 등에서도 최근까지 여성 편집국장이 임기를 이어오는 등 해마다 조금씩 나아지는 것 같기는 하다. 그러나 여전히 갈 길이 멀다. 누구 말마따나 나는 여전히 배가 고프다.


좀 더 엄밀한 의미에서 최종적인 뉴스 편집권자로 좁혀보면, 우리나라는 세계 기준에서 볼 때 아직 걸음마도 제대로 떼지 못한 수준이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가 2020년 이후 매년 발표하는 ‘뉴스미디어에서 여성과 리더십’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조사 대상 12개국(12 Market) 가운데 전체 평균에도 미치지 못하는 최하위권에 머물러 있다. 지난해 조사에서는 12개 조사 대상 가운데 꼴찌를 차지하기도 했다. 이 조사는 온라인/오프라인 뉴스미디어를 망라해 각국의 주요 언론사(인쇄, TV, 라디오)를 대상으로 뉴스 편집의 최후 의사결정권자를 확인한 결과인데 우리나라는 2020년 첫 조사에서 11%를 나타낸 뒤 조금씩 상승을 이어가다 지난해(2025년)는 7%로 급락해 남아프리카공화국과 더불어 가장 큰 폭의 하락세를 보인 국가로 분류됐다. 더욱 부끄러운 것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이 2020년 47%에서 2025년 35%로 떨어져 비록 낙폭이 크다고는 하지만 조사 대상 12개국의 평균을 웃도는 것에 비해 우리나라는 처음부터 단 한 번도 전체 평균을 넘어서지 못하다가 지난해 최하위를 기록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2020년 조사에서 11%를 기록한 뒤 10% 초반대를 유지하다 2024년 20%를 기록하며 평균치(24%)에 근접하는 듯했지만 지난해 조사에서는 전년 대비 13%p가 급락한 7%를 나타내며 조사 대상 국가 중 가장 낮은 수준을 보여줬다.


한 가지 더 짚고 싶은 것은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의 조사 대상에서 지역 언론은 아예 제외되었다는 사실이다. 가령 지상파방송의 경우 서울 본사만을 대상으로 삼았을 뿐 지역방송은 포함하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아는 한, 지역 언론계 현장은 우리나라 전체 평균치보다 더욱 열악한 여성 임원 수치를 보인다(부디 내가 틀렸기를 바란다). 광주전남지역만 하더라도 지역방송에서 여성보도국장이 임명된 기억이 없다.


가뭄에 단비 같은 소식도 들린다. 비공식적으로 확인한 바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KBS대전총국에서 여성 보도국장이 임명됐다. 또 KBS광주총국과 광주MBC 두 곳에서 보도국장과 협력해 뉴스 제작을 책임지는 취재부장이 모두 여성으로 채워졌다. KBS광주는 지난해 취재 2부장 자리가 여성으로 바뀌면서 모든 취재부장이 여성이고, 최근에는 광주MBC도 여성취재부장이 임명됐다.

한선 호남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여성 취재부장의 등장을 반기면서도 이들을 단순하게 ‘여성’ 취재부장으로만 평가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은 저널리스트로서 맡은 바 임무를 다해왔고, 그에 대한 평가에 따라 합당한 직분을 받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여성 취재부장을 환영하는 것은 다른 조직과 마찬가지로 뉴스 조직에서도 리더가 차지하는 실질적이고 상징적인 의미가 크기 때문이다. 뉴스룸에서 리더는 명시적이든 암묵적이든 뉴스 제작 관행에 영향을 미치며 조직문화를 형성한다.


그래서 어쩌면 뉴스의 공정성은 리더십의 다양성에서 출발할 수 있다. 부디 지금보다 더 많은 여성 임원이 붉은 말의 기운으로 유리천장을 뚫고 나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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