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말의 해인 병오년(丙午年) 새해는 K-스포츠가 한 단계 더 도약하는 원년이 될 것으로 보인다. 2월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을 시작으로 3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6~7월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9~10월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까지 그야말로 ‘스포츠의 해’다. 메이저 수준의 국제대회 4개가 한 해에 모두 열리는 건 2006년 이후 무려 20년 만이다.
유승민 대한체육회장이 최근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기관 업무보고에서 한 “K의 원조는 스포츠다”란 말이 가장 와닿는다. 대중문화 K-팝의 뿌리라 할 수 있는 그룹 ‘서태지와 아이들’의 데뷔가 1992년이었던데 비해 K-스포츠의 출발점은 그보다 앞선 1988년 서울올림픽이었다. 1982년 프로야구가 출범하고 이듬해 프로축구가 시작을 알렸던 한국 스포츠는 불과 5~6년 만에 메이저 스포츠 이벤트인 하계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하면서 스포츠 강국의 첫발을 내디뎠다.
어렸을 때 TV로 봤던 서울올림픽 ‘굴렁쇠 소년’은 시간이 많이 흘러 희미한 추억이 됐지만, K-스포츠 역사에선 시작을 알리는 명장면으로 남아 있다. 한국은 개최국으로서 종합 4위(금12·은10·동11)라는 빛나는 성과를 냈다. 한 체육계 관계자는 “개최국으로서 홈 이점이 있었더라도 당시 열악했던 국내 스포츠 인프라를 고려하면 기적에 가까운 성적이었다”고 귀띔했다. 이듬해인 1989년 설립된 국민체육진흥공단은 서울올림픽 레거시 포럼을 개최하고 명칭도 ‘서울올림픽기념국민체육진흥공단’으로 하고 있을 만큼 대회 개최와 성과를 꾸준히 기념하고 있다.
서울올림픽으로 성공적인 첫발을 뗀 K-스포츠의 위상은 2002년 한일 월드컵으로 정점을 찍었다. 직전 대회까지만 해도 본선 1승이 꿈이었던 한국 축구는 안방에서 개최한 월드컵에서 단번에 4강 신화를 작성했다. 전국 도심을 붉게 만들었던 ‘붉은악마’의 응원 모습은 세계적으로 화제가 됐다. 훗날 정부가 발간한 2002년 경제백서에 따르면 한일 월드컵으로 한국이 누린 경제 효과는 무려 26조원이 넘었다. 서울올림픽 개최 30주년이었던 2018년 한국은 평창 동계올림픽까지 열어 종합 7위(금5·은8·동4)로 선전하며 세계 스포츠 강국으로 입지를 굳혔다.
과거 한국 스포츠의 목표는 올림픽 금메달 획득과 그로 인한 국위선양이었다. 그러나 이젠 시야를 넓혀 부가가치 창출이 핵심 과제가 됐다. 세계 스포츠 시장은 부가가치 규모만 약 1000조원에 달하는데, 국내의 경우 스포츠 산업 규모 자체가 100조원도 채 되지 않는다고 한다. 오죽하면 문체부가 국내 스포츠 산업 규모를 2028년까지 100조원대로 키우겠다고 선언했을 정도다.
빠른 길 중 하나는 K-스포츠 스타의 남다른 스토리텔링과 그로 인한 후광 효과 창출이다. 야구의 박찬호와 류현진, 축구의 박지성과 손흥민, 골프의 박세리와 박인비 같이 상징적인 K-스포츠 스타가 등장해 자신만의 스토리를 써 내려가야 한다. 성큼 다가온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에서 그런 의미로 기대가 되는 선수 중 한 명은 쇼트트랙 간판 최민정이다.
김기훈을 시작으로 전이경, 김동성 등이 중흥기를 이끌었던 K-쇼트트랙의 명맥은 지금은 최민정이 잇고 있다. K-쇼트트랙이 역대 동계올림픽에서 따낸 금메달 수는 26개에 달한다. 이는 한국의 역대 동계올림픽 총 금메달 수(33개)의 78.8%에 이른다. 2018년 평창(금2)과 2022년 베이징 대회(금1·은2)에 이어 3번째 올림픽 무대에 나서는 최민정은 한국 동계올림픽 역대 최다 메달과 쇼트트랙 1500m 최초 3연패에 도전한다.
8년 전 평창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500m 결선 직후 믹스트존에서 본 최민정의 눈물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2위로 통과했지만 임페딩(밀기반칙)으로 실격 처리돼 눈물을 흘리던 최민정은 “제가 더 잘했으면 부딪히지 않았을 것이다. 준비를 잘해왔고 어떤 결과가 나와도 잘 받아들이겠다고 했으니 결과엔 불만이 없다”며 담담히 받아들이는 자세도 보였다. 최민정의 성숙함이자, K-쇼트트랙과 K-스포츠가 보여준 진정한 올림픽 정신이기도 했다.
K-스포츠가 또 한 번 위대한 도약을 앞두고 있다. 새해 K-쇼트트랙과 K-야구, K-축구 등이 차례로 스포츠팬들에게 희망과 감동을 선사하려 한다. 국가대표 선수들의 구슬땀, 극적인 승부와 성장 스토리, 그리고 이후 스포츠 산업 발전까지 하나하나가 귀중한 K-스포츠 콘텐츠다. 병오년 새해 K-스포츠의 비상과 선순환을 기대해 본다.
박종민 한스경제 스포츠레저부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Copyright @2004 한국기자협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