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단거리경주를 밤새워 하는 일이었다.”
축구를 좋아해 체력에 자신 있던 92년생 기자는 쿠팡의 새벽 배송을 이렇게 정의했다. 물건이 가득 담긴 트럭을 타고 이동하는 1분 남짓의 짧은 휴식을 제외하면, 발바닥이 지면에 닿는 순간부터 전속력으로 달려야 했다. ‘오전 7시’ 배송 마감 시간을 맞추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하루 평균 3만 보를 걸으며, 300층의 계단을 오르내렸다. 무릎과 발목, 심지어 등에서도 느껴보지 못한 통증이 일었다. 그러나 기자가 경험한 업무량은 ‘실제 배송 물량의 절반’에 불과했다. 쿠팡 배송기사들의 하루 배송 물량은 약 350~400건. 그 중 기자가 배달한 건 150건 정도다. 쿠팡의 야간 배송과 주간 배송을 1주일씩, 총 2주간 경험하고 <쿠팡 지옥도 체험기>를 쓴 류석우 한겨레21 기자는 그 노동 강도가 “상상 이상”이었다고 전했다.
‘새벽 배송 찬반 논쟁’이 한창이던 지난해 11월, 팀 회의 중 ‘심야 배송을 하는 노동자의 건강에 업무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확인해 보자는 제안이 나왔다. 가장 먼저 심야 시스템을 도입했고, 가장 많은 노동자가 사망한 쿠팡이 대상이 됐다. 류 기자가 자원해 취재에 나섰다. 그는 쿠팡의 직고용 인력이 아닌, 외부 위탁 배송 기사인 ‘퀵플렉서’의 조수로 2주간 일했다.
◇야간노동 ‘심혈관 질환’에 영향 미치나… 기자가 직접 확인
기사가 단순한 ‘체험기’에 그치지 않도록 전문의의 도움을 받았다. 김현주 이대목동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의 자문에 따라 24시간 활동 혈압계와 수면 측정 장비인 액티그래프를 몸에 부착했다. 밤샘 노동이 신체 리듬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수치로 증명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측정 결과, 심야 배송 후 혈압이 떨어지지 않는 등 신체 리듬의 교란이 뚜렷하게 관찰됐다.
신체 측정 장비를 차고 몸을 쓰는 배송 일을 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특히 24시간 활동 혈압계는 류 기자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활동 혈압계는 크로스백 형태로 된 본체를 메고, 한쪽 팔에는 밴드를 착용해 혈압을 측정한다. 30분마다 혈압계에서 ‘삑’ 소리가 나면 그 자리에서 1분간 안정을 취해야 했다. 측정하는 동안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오류가 발생해 여러 번 재측정하기도 했다. 계단을 뛰어 올라가다가도 혈압계가 울리면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서서 측정이 끝나기를 기다린 것이 하루에도 수십 번이다.
고혈압을 앓고 있어 혈압 측정이 필요한 환자들도 하루 이상은 사용하기 어려운 기구인데, 류 기자는 8일을 착용했다. 처음 이틀은 기록된 데이터가 모두 날아가고, 하루는 데이터가 제대로 기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류 기자는 “잘 때도 혈압계를 착용해야 했는데, 자다가 팔을 옥죄는 느낌에 놀라서 깬 적도 여러 번이다. 엿새쯤 지나니까 매번 조임 당하는 팔이 아프기 시작했다”면서도 “그래도 정확한 데이터를 얻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고 말했다.
◇‘아픈데 병원도 못 가’ 기사들의 설움
안 하던 육체노동을 하니 온몸이 쑤셨다. 그러나 신체적 고통보다 더 큰 것은 심리적인 불안이었다. 일을 시작한 지 사흘째, 원인 모를 등 통증이 시작됐다. 그즈음 류 기자의 아버지는 췌장에 문제가 생겨 병원에 다니고 있었다. 류 기자 역시 겁이 났지만 쉴 수 없었다. 쿠팡 위탁 배송 시스템인 퀵플렉서의 구조적 문제 때문이다.
기사가 배송을 쉬려면 본인이 직접 대행 차량(용차)을 구해야 하는데, 이때 지급해야 하는 수수료는 본인이 받는 배달 수수료의 두 배에 달한다. 아프면 돈을 벌지 못하는 수준을 넘어 돈을 ‘물어내야’ 하는 구조다. 동일한 근무 환경을 경험하겠다는 일념으로, 류 기자는 진통제를 먹으며 고통을 참았다.
체험이 끝나고 병원을 찾아가 들었던 원인은 단순 ‘근육통’이었다. 침을 맞고 약을 먹으니 통증은 사라졌지만, 아파도 병원 갈 시간조차 내지 못하는 배송 기사들의 처지는 가슴에 남았다. “아직도 가끔 등 통증이 있을 때가 있는데, 사실 아프다고 말하기도 부끄러워요. 저는 기사님들이 일하는 것의 반밖에 일을 안 한 건데도 아프거든요. 기사님들은 이 정도 통증은 일상적으로 달고 다니시더라고요.”
◇“새벽배송, 기사들이 원하는 일 맞나”
2주차, 주간 배송을 체험할 땐 최대 17시간에 달한 긴 노동 시간만 힘든 게 아니었다.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잡아두고 대여섯 층 정도 배송을 하고 내려오면, 1층에서 주민들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서 있었다. 주민들은 아무 말 없이 류 기자를 쳐다봤다. 그때면 괜히 잘못한 기분이 들어 고개를 숙이고 자리를 피했다. “누구나 택배를 시키지만, 정작 택배 기사는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이런 시선이 심야 배송을 선택하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류 기자는 새벽배송이 ‘기사들의 선택’이라는 주장은 쟁점을 흐린다고 강조했다. 낮은 배송 단가와 열악한 환경이 그들을 심야로 ‘내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주 6일 밤샘 근무를 제한하는 안전장치와 그렇게 해도 생계가 유지될 수 있는 시스템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기사가 나온 직후, 개인 정보 유출 문제로 쿠팡이 도마 위에 오르며 류 기자의 기사도 커뮤니티에 퍼지기 시작했다. 쿠팡의 노동 환경을 몰랐던 소비자들이 이 기사를 읽으며 ‘탈팡(쿠팡 탈퇴)’에 동참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2주간 ‘택배 기사’로 살았던 그는 기자의 역할을 다시금 되새겼다. “인공지능 시대라지만, 현장을 직접 체험하고, 데이터를 만들어 전달하는 것은 인간 기자만 할 수 있는 일이라 믿어요. 우리 사회의 문제가 사실 모두의 문제라는 걸 느낄 수 있도록, 사람들을 설득하는 기사를 계속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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