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3년 12월 미국의 제5대 대통령인 제임스 먼로가 의회에 보내는 연두교서에서 밝힌 대외정책 기조와 방향성은 분명했다. 미국이 유럽에 관여하지 않을 테니, 유럽도 미국을 포함한 북중미와 남미 대륙까지, ‘아메리카의 일’에 일절 관여하지 말라는 메시지였다.
‘먼로주의’ 또는 ‘먼로 독트린’으로 불리는 이 대외정책 기조는 상당 기간 미국의 고립주의를 상징하는 말로 인식됐다. 당시 미국의 군사력이라야 유럽의 강대국들에 비하면 보잘것없었기에, 유럽의 특정 강대국이 이를 무시하고 개입했다면 먼로주의도 소용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유럽은 나폴레옹이 몰락하고 성립된 ‘빈 체제’가 혁명의 시대에 분출된 공화주의와 자유에 대한 염원을 외면하고 과거로 회귀하려는 경향을 보이면서 내부적으로 심한 갈등과 대결의 조짐을 보이고 있었기에 유럽 밖으로 눈을 돌리기 어려웠다.
미국은 이후 아메리카 대륙 전체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해 나갈 수 있었다. 미국이 멕시코 전쟁(1846~1848)을 통해 현재 미국 땅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광활한 영토를 얻을 수 있었던 것도 유럽이 이 시기에 대혼란에 빠져 아메리카의 일에 개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먼로주의는 고립주의라기보다는 지역 패권주의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지난해 12월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발간된 국가안보전략(NSS)에는 “아메리카 대륙이 외부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먼로 독트린이 핵심 원칙임을 다시 천명한다”라는 문구가 명시됐다. 200년 세월을 뛰어넘어 먼로주의가 미국의 대외정책 기조로 대내외에 공식 천명되는 순간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새해 벽두, 미국의 특수부대가 영화와 같은 장면을 연출하며 베네수엘라의 수도를 전격 기습, 마두로 대통령 부부를 체포해 미국으로 압송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기 때부터 베네수엘라, 니카라과, 쿠바를 ‘폭정의 트로이카’로 불러왔다. 그중 한 나라의 대통령을 압송한 마당에 다른 나라의 지도자들을 대상으로 군사작전을 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는 후속 메시지들이 나오고 있는 이유다. 다음 목표는 쿠바나 콜롬비아가 될 것인가 아니면 파나마가 될 것인가 등 향후 트럼프가 가리킬 곳이 어디인지를 예측하는 분석들도 쏟아진다.
트럼프 2기가 시작된 지난해 1월 일부 미국 매체들이 ‘그린란드를 갖고 싶다’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의도를 분석하면서 ‘돈로주의’(The Donroe Doctrine)라는 용어를 사용할 때 이 말이 향후 광범위하게 사용될 것이라고 본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돈로주의란 도널드 트럼프와 먼로주의를 합성한 말이다. 트럼프 대통령 스스로도 이 표현이 마음에 들었던지 공식 석상에서 언급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과 이웃하고 있는 나라들은 공격적으로 영토를 확장했던 200년 전 미국의 지역 패권주의가 오늘날 재현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의도는 어느 정도 읽힌다. 서반구에서 영향력을 극대화해 힘을 비축하고 이를 기반으로 패권을 유지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미국이 먼로주의를 표방할 당시와 지금의 세계 정세는 확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 작금의 세계가 혼돈 속에서 새로운 질서를 찾아가는 과정이라 하더라도 미국의 돈로주의가 난폭한 모습으로 전 세계 국가들에 각인된다면 미국은 지역에서의 패권은 유지할 수 있을지라도 국제사회에서 리더십에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
미국이 국제사회에 우뚝 서게 된 배경이 먼로주의 덕분인지, 아니면 100년 뒤 천명된 ‘민족자결주의’인지, 아니면 그 어느 것도 아닌 다른 미국의 정신 때문이었는지 한 번쯤 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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