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노동에 대한 언론 보도가 놓치고 있는 것들

[언론 다시보기] 김미선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 학술연구교수·<여사장의 탄생> 저자

김미선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 학술연구교수·<여사장의 탄생> 저자.

여성운동과 여성학이 급부상하던 1980년대만 하더라도, 여성노동은 가장 핵심적인 의제였다. 당시 여성문제에 관심을 가진 여자 대학원생의 논문 소재가 상당 부분 여성노동일 정도였다. 여성의 노동 해방이야말로 여성문제를 해결하는 최우선 과제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본주의 모순이 한층 더 악화된 지금, 오히려 여성노동은 이전과 같은 위치에 있지 않다.


언론 역시 관심을 가져야 하는 소재로 여성노동을 충분히 다루고 있지 않다. 기업과 자본가가 한국 사회는 물론 언론사에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을 뿐 아니라, 지난 윤석열 정부의 반노동정책과 ‘노조 혐오’ 기조는 이러한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기 때문이다. ‘공정’과 ‘능력주의’, ‘남성 역차별’ 등이 청년 남성을 중심으로 팽배해지면서, 여성노동 이슈는 언론 보도에서 더욱 주변화되거나 소외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여성노동이 가시적으로 사회적 주목을 받는 경우는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한 공개 고발, 목숨을 내건 단식 농성 등 여성노동자와 관련한 심각한 이슈가 발생했을 때다. 지난해 한국옵티칼하이테크의 해고 여성노동자인 박정혜씨가 장기간인 600일 고공농성을 전개하고, 정부와 대통령실 관계자들이 현장을 방문할 때 여러 차례 언론 보도가 이어졌다. 하지만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이처럼 여성노동을 둘러싼 사건·사고 등 심각한 피해나 이슈를 중심으로 사후적으로 보도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언론이 다루는 여성노동은 임금을 받으며 종속적 계약관계에 위치한 ‘을’, 즉 임금노동자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노동의 남성중심성을 문제시하고 가사노동과 돌봄노동 등 여성의 무임금노동을 새롭게 다뤄왔지만, 여성의 다양한 노동과 경제활동은 여전히 비가시화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여성의 자영업을 꼽을 수 있다. 자기 고용에 기반한 자영업은 한국 여성의 노동과 경제활동에서 결코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해 왔다. 하지만 ‘비임금근로자’로 경제활동을 하는 여성을 어떻게 이해하고 보도할 것인가에 대한 언론의 비판적 논의는 많지 않다.


여성의 자기 고용은 한국적 맥락에서 상당히 중요하다. 남성중심적이고 가부장적인 노동시장은 사적영역에 대한 여성의 책임을 줄곧 강조해 왔으며, ‘경력보유여성’의 진입을 제한해 왔다. 그 결과 여성의 자영업 진출이 구조적으로 촉구되어왔다. 지역 불균형 성장으로, 여성 자영업의 비중과 역할은 일자리가 부족한 지역사회에서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한편 디지털 플랫폼 시대의 도래와 함께 창업을 비롯한 SNS 기반의 소규모 사업 진출 역시 확대되고 있다. 이로 인해 고용원 및 점포 유무와 관계없이, 여성 개인 사업가나 1인 여사장이 증가하고 있다.


그러므로 언론 보도는 기존의 여성노동 개념에 대한 이해와 접근을 확장할 필요가 있다. 여성의 임금노동·무임금노동은 물론 자기 사업, 금융, 소비 등 여성과 경제를 둘러싼 다양하고 포괄적인 접근이 요청된다. 즉 노동 범주를 넘어서 경제에 대한 젠더 관점에서의 접근과 경제적 주체로서 여성의 권리에 대한 다양한 의제 발굴이 진행되어야 한다. ‘경제판’ 자체의 남성 중심 보도 개선을 위해 여성 취재원의 확대가 무엇보다 시급하다.


몇 년 전 한 매체가 다룬 <우리가 명함이 없지 일을 안 했냐>라는 6070 여성노동에 대한 집중 보도는 이후 도서 출판을 위한 펀딩 ‘대박’으로 이어졌다. 언론이 여성노동에 대한 새로운 공론장을 마련했을 때, 독자의 관심과 지지가 함께 한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우리 언론이 여성의 자기 고용을 비롯한 다양한 형태의 노동과 경제적 실천, 남성중심적·가부장적 경제 구조와 지배 규범 등에 대한 비판적 논의의 장을 마련할 때, 현재진행형 과제인 여성의 경제적 주체 되기는 물론 성평등한 노동시장, 나아가 대안경제에 대한 모색도 가능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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