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미녀 서시와 복어는 무슨 관계?

[역사와 스토리가 있는 영남 음식] (22) 복어

사람들은 말한다. “영남에 맛있는 요리가 있어?” 때론 이런 말도 덧붙인다. “거긴 한국에서 제일 먹을 게 없는 도시들이야.” 과연 그럴까? 호남에서 4년, 서울에서 18년, 나머지 시간을 영남에서 살고 있는 필자로선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뭔가 말하고 싶은 열망에 몸이 들썩거린다. <역사와 스토리가 있는 영남 음식>은 그런 이유에서 발원한 졸고다. [편집자 주]


추운 겨울이면 더 끌리는 복어 요리. 신선한 복어에서만 맛볼 수 있는 정소는 별미이자 별식이다.

경상북도와 경상남도, 부산이 마찬가지다. 어디를 가더라도 영남 바닷가 마을에선 복어를 요리하는 식당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애주가의 쓰린 속을 달래주는 해장국으로 알려졌지만, 술을 마시지 않는 이들도 시원하고 담백한 맛에 매료되는 경우가 흔한 게 복어탕이다. 기호에 따라 매운 양념을 넣어 먹어도 좋고, 맑은탕을 훌훌 마셔도 혀에 착착 감긴다.


‘복어 좀 먹어봤다’고 자처하는 이들은 껍질과 정소를 귀하게 여긴다. 어금니를 매혹하는 쫄깃한 복어 껍질과 비교 대상이 드물게 부드러운 복어 정소는 바람 차가운 겨울에 어울리는 별미고 별식이다.


다소 뜬금없이 들릴 수 있는 이야기지만, 복어를 설명하기 위해선 먼저 중국 월나라의 국색(國色) ‘서시(西施)’를 알아야 한다.


지금으로부터 2500여 년 전. 남의 빨래를 대신 해주는 보잘것없는 신분이던 젊은 여성 서시는 월나라 왕의 ‘전략적 선택’에 의해 라이벌 국가인 오나라로 보내진다. 월나라의 계획대로 육체적 아름다움 하나로 오나라 왕의 혼을 빼놓는 서시.


길지 않은 시간이 흐르고 오나라는 멸망한다. 혼이 빠진 왕이 통치하는 국가가 오래 갈 까닭이 없는 법. 여기서 나온 사자성어가 경국지색(傾國之色)이다. 한 나라를 무너뜨릴 정도의 미색을 지닌 여성을 지칭한다.

정소를 살짝 익혀 먹으면 크림처럼 녹아내리며 진한 맛이 난다.

서시를 둘러싼 에피소드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위통을 앓던 서시는 늘 얼굴을 찡그리고 다녔다. 그런데, 이것도 흉내의 대상이 됐다. 서시가 살던 마을에선 일곱 살 여자아이부터 일흔 살 할머니까지 모조리 얼굴을 찡그리고 다녔던 것. 서시를 닮으려는 몸부림이었다. 이런 것도 ‘유행 선도’가 될 수 있을지.


뿐 아니다. 서시가 빨래를 하러 냇가에 가서 쪼그려 앉으면 얼굴을 올려다보던 붕어가 넋을 잃어 헤엄쳐야 한다는 사실을 잊고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물고기가 물에 빠져 죽는’ 해괴한 사건(?)을 만들어낸 게 서시의 미모였다. 이른바 ‘침어(沈魚)’의 고사다.


과장과 허풍이 섞여 있는 게 분명하지만, 이 정도면 서시의 외적 수려함이 탁월하고 출중했음은 누구나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이제 다시 ‘복어’ 이야기다. 미식가들은 복어의 정소를 ‘서시유(西施乳)’라 부르며 즐긴다. 한자를 풀어 쓰면 ‘서시의 젖’이란 뜻. 복어가 중국 최고의 미녀 가운데 한 명으로 손꼽히는 서시의 가슴에 비유되고 있는 것이다.


식탁에서 먹음직스럽게 끓고 있는 복어탕에서 정소를 터뜨리면 국물이 불투명한 흰색이 되면서 감칠맛을 한층 높인다. 사람에 따라서는 화롯불에 구워 먹기도 하는 게 복어 정소. 최고급 푸아그라(거위의 간) 못지않은 식감을 가졌다는 말이 떠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언제부터 복어를 요리하기 시작했을까? <동의보감(東醫寶鑑)>이 완성된 건 17세기 초반이다. 그 책엔 다음과 같은 언급이 실렸다.


‘복어는 성질이 따뜻하고 맛이 달며 독이 있다. 허약함을 보충하고 습함을 제거하며 허리와 다리에 좋고 치질과 벌레를 죽인다. 하지만, 간과 알의 독성이 강하니 조리법을 정해진 대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위의 인용을 감안하면 우리 선조들은 최소 400년 전부터 복어를 먹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역사가 만만찮은 식재료인 것. 조선의 학자 정약용(1762~1836)도 복어를 즐겼다고 한다.

추운 날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복어 맑은탕. 미나리를 잔뜩 넣은 복어탕은 해장용으로 그만이다.

복어는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지닌 물고기다. “복어 10마리의 독이면 코끼리도 죽인다”는 말처럼 잊을 만하면 복어 독 탓에 목숨을 잃은 사람의 안타까운 소식이 신문에 실리곤 하니까.


내장과 핏속에 치명적인 독을 숨겼음에도 오랜 세월 사랑받아 온 복어. 최고의 음식은 최고의 위험마저도 감수해야 맛볼 수 있는 걸까? 질문이 무겁지만 겁먹을 필요는 없다. 복어탕을 판매하는 식당엔 복어 독을 없애는 방법을 아는 자격증 가진 요리사들이 있으니.


다가오는 일요일 점심땐 푸릇푸릇한 미나리를 올린 복어맑은탕을 먹으러 청옥빛 파도 일렁이는 구룡포로 나가볼 생각이다.


[필자 소개] 홍성식
1971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중·고교 시절. 영어 단어와 수학 공식을 외우라는 교사의 권유를 거부하고, 김지하와 이성부의 시를 읽으며 ‘미성년자 관람 불가’ 영화를 보러 극장에 드나들었다. 그 기질이 지금도 여전해 아직도 스스로를 ‘보편에 저항하는 인간’으로 착각하며 산다. 노동일보와 오마이뉴스를 거쳐 현재는 경북매일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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