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현업단체들이 표현의 자유 침해 입장을 표해온 정보통신망법(망법) 개정안이 결국 통과돼 7월 시행을 앞둔 가운데 미국 국무부가 자국 온라인 플랫폼 사업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공개적으로 우려하며 한미 통상 갈등까지 거론되고 있다. 법안을 주도한 정부여당은 앞서 양국 의견 교환이 있었고 대화로 풀어간다는 설명이지만 국익과 직결된 사안의 해법을 리스크를 안은 채 찾아야 하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사전에 우려를 인지하고도 강행된 법안이 사태를 낳은 만큼 ‘졸속 입법’ 논란이 재론될 수밖에 없다.
미 국무부는 개정 망법이 국무회의를 통과한 다음 날인 12월31일 대변인 명의 성명을 통해 “미국은 한국 정부가 망법을 승인한 것에 심각한 우려를 갖고 있다”며 “법안은 미국에 본사를 둔 온라인 플랫폼 사업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 한국은 디지털 서비스에 ‘불필요한 장벽’을 부과해선 안 된다”고 밝혔다. 하루 전 사라 로저스 국무부 공공외교 담당 차관이 자신의 X(엑스) 계정에 망법에 대해 “(한미 간) 기술 협력을 위협한다”는 우려를 밝힌 데 이어 국무부까지 입장을 내며 한미 통상 갈등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게 현재다.
더불어민주당이 ‘허위조작정보 근절’ 등을 명분으로 구현한 법안이 현실에서 얼마나 정교한 입법 과정을 거쳤는지 다시 의문이 나온다. 위성락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2일 “한미 간에 의견이 오간 것이 있고, 제가 알기로 반영된 점도 있다”며 “미국 입장에선 반영된 부분이 충분하지 못하다고 볼 수도 있겠다”고 했다. 이어 “우리 입장을 잘 설명하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법 통과 전부터 미국 측 우려를 알았지만 해소 없이 강행했다고 볼 수 있다. 민주당 주도 법안은 내용과 의견수렴 절차를 두고 ‘졸속 입법’ 지적을 계속 받아왔다. 특히 국회 본회의 상정을 앞두고 뒤늦게 위헌성이 확인된 핵심 조항을 수정하는 등 2주간 3차례나 법안을 바꿔 ‘개악’, ‘조변석개’란 비판이 나왔다.
망법에서 미국 기업들에 영향을 미칠 지점은 허위조작정보에 대한 플랫폼 대응 부분이다. 법안은 정보통신망에서 유통을 금지하는 정보 범위를 허위조작정보까지 확대하고 누구든 서비스 제공자에게 신고할 수 있게 했다. 특히 ‘대규모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는 이런 정보의 유통방지를 위한 자율규제 정책을 수립해 삭제나 접근 차단, 계정 정지, 수익화 차단 등 조치를 취해야 한다. 구글, 메타, 엑스 등 빅테크로선 더 많은 관리 책임을 지게 됐는데 국무부는 이를 자국 기업에 대한 규제와 검열로 본 모양새다.
‘플랫폼 규제=검열’이란 미국 정부의 시선이 현 글로벌 트렌드에 부합한다고 보긴 어렵다. 국내 망법 논의에서 언론시민단체들은 빅테크에 더 큰 책임을 부여하는 방향에 동의해 왔다. 표현의 자유 침해 소지도 거론됐지만 이는 법원조차 판단이 어려운 허위조작정보를 플랫폼이 판단해 조치할 때 과잉 삭제·차단이 이뤄질 수 있다는 지적이었다. 당초 유럽연합(EU)의 디지털서비스법(DSA)을 벤치마킹 하겠다고 했지만 취지가 온전히 구현되지 못했고, 방송미디어통신심의위원회 같은 국가 주도 행정심의 기관이 존재하는 상황과 맞물려 정치심의, 광범위한 표현 위축이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요지였다.
오병일 디지털정의네트워크 대표는 5일 “국내 망법의 문제 소지는 다분하지만 미국 기업에 대한 차별이란 문제제기가 합당하다고 보지 않는다. 현재 플랫폼은 단순히 네트워크가 아니라 이용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데 망법은 합당한 책임을 묻기 위한 측면이 있다. 미국의 관점은 플랫폼에 대한 무규제 방향”이라고 했다.
수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법안이 지녔던 이 같은 일부 의의는 현실 속 ‘힘의 논리’에 따라 의미가 퇴색한 상황이다. 다만 이는 국정운영의 키를 잡은 정부여당의 안이한 인식과 미흡한 대비를 원인으로 지목할 수밖에 없다. 앞서 EU의 DSA에 대해 보복성 조치를 취했던 트럼프 행정부의 행보에 비춰볼 때 이를 모델 삼은 법안에 대한 반응은 예견된 측면이 크기 때문이다.
특히 언론계에선 논의할 부분이 상당히 많은 법안이라며 지속 재논의와 숙의를 요구했지만 민주당은 수용하지 않았다. 언론이나 유튜버 등에 대해 허위조작정보 유통 시 최대 5배 징벌적 손해배상을 물릴 수 있게 한 조항 등의 ‘권력 감시 기능 위축’ 가능성을 우려하고 ‘권력자의 징벌적 손배 청구 배제’를 요구했지만, 이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은 채 연내 통과가 강행됐다. 향후 국제사회에서 한국 언론자유 지수 하락 소지도 여전하다. 자칫 망법이 실리와 명분 모두 잃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위원장은 “미국 정부가 구체적으로 어떤 조항을 문제 삼는지는 알 수 없지만 표현의 자유든, 통상의 문제든 정부여당에서 고려, 관리를 했어야 하는 부분이다. 검토될 게 정말 많은 법인데 국내 다수 이해관계자들, 시민단체의 문제제기가 거의 무시된 채 입법이 추진됐다. 실제 통상 갈등도 말이 나왔었는데 검토가 됐는지, 해외 사업자 의견수렴은 제대로 거쳤는지 같은 절차적 결함의 후폭풍이란 생각도 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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