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방송의 지배구조 개선을 골자로 한 개정 방송법이 시행된 지 만 4개월이 넘었다. 방송통신위원회를 폐지하고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를 신설하는 법이 시행된 지도 만 3개월이 지났다. 이들 법은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할 당시만 해도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을 이룬 ‘역사적 순간’이자 ‘방송 정상화’의 첫걸음으로 평가되며 언론계 환영을 받았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입법 이후의 시간은 사실상 멈춰버렸다. 후속 조치가 지연되면서 법은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고, 여전히 ‘작동 불능’ 상태인 채로 새로운 해를 맞았다.
“폭풍처럼 몰아쳐서 전광석화처럼 끝내겠습니다.”
신임 당 대표에 취임한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지난해 8월4일 첫 최고위원회의에서 검찰·언론·사법 3대 개혁의 “추석 전 완수”를 약속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 중 언론개혁에 해당한 방송법(방송3법) 개정과 방통위 개혁 입법은 실제로 추석 전에 완료됐고, 이른바 ‘허위조작정보 근절법’ 처리는 정보통신망법 우선 개정으로 성탄 직전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입법 과정도 말 그대로 ‘전광석화’와 같았다. 방송법은 민주당의 통합 대안이 공개(7월1일)된 지 엿새 만에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를 통과했고(7월7일) 바로 다음 달 본회의 의결을 거쳐(8월5일) 8월26일부터 시행됐다. 민주당 통합 대안이 공영방송 3사와 보도채널에 한해 보도책임자 임명동의제 의무화를 명시한 사실이 ‘깜짝’ 공개되며 지역·민영방송 구성원들이 크게 항의하는 등 파문이 일었지만, 입법 속도는 늦춰지지 않았다. 윤석열 정부 방송장악의 피해가 컸던 공영방송과 YTN 등을 정상화하는 게 시급하다는 판단에서였다.
이 명분은 방미통위법 쾌속 입법의 근거가 되기도 했다. 방송법 시행을 위해선 기존 방통위를 정상화하는 게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방송3법 처리를 마친 민주당은 방통위 정상화 작업에 속도를 냈다. 방통위법을 개정하는 최민희 의원안과 시청각미디어통신위원회를 설치하는 김현 의원안을 통합·조정하는 논의가 과방위 법안심사소위에서 처음 논의된 게 8월27일. 그런데 법안이 성안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9월5일 공청회가 열렸고, 나흘 뒤 소위에서 대안을 제안한 지 이틀 만에 과방위 전체회의(9월11일)까지 통과했다. 이후 9월27일 본회의에서 의결된 방미통위법은 10월1일 공포 즉시 시행됐다.
과방위원장이자 민주당 언론개혁특위 위원장인 최민희 의원은 방송3법 개정안이 모두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자 페이스북에 “대한민국 공영방송의 새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적었고, 방미통위법이 통과됐을 땐 “방송통신의 새 역사가 시작되는 순간”이라고 했다.
하지만 ‘새 역사’의 시작은 3~4개월이 넘도록 지연되고 있다. 주무 부처로 기능해야 할 방미통위가 여전히 정상화되지 않은 탓이다. 개정 방송3법 부칙엔 KBS,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EBS의 이사회는 ‘법 시행 이후 3개월 이내에 이 법의 개정 규정에 따라 구성되어야 한다’는 의무 조항이 있다. 당시에도 ‘왜 3개월인가’ 하는 의문은 있었지만, 아주 불가능한 시간표처럼 보이지만은 않았다.
그러나 부칙에서 정한 시한인 11월26일이 지나고 다시 40여일이 더 지나도록,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KBS는 물론 방문진과 EBS 이사회는 여전히 그대로이고, 언제 새로 구성할 수 있을지 기약조차 없다.
공영방송 이사를 추천할 방송 관련 미디어학회와 변호사 단체의 기준을 규칙으로 정해야 하는 방통위는 그 사이 조직이 폐지돼 방미통위로 재탄생한 뒤에도 두 달 가까이 ‘0인 체제’로 방치됐다. 7인 정원인 방미통위의 위원장 후보와 비상임위원이 지명된 건 개정 방송법이 시행된 지 3개월 하고도 이틀이 지나서였다. 3개월 안에 공영방송 이사회를 새로 구성하도록 의무 조항을 둬놓고, 정작 그 시간 동안 방미통위 구성도 끝내지 못한 것이다.
결국 방미통위 ‘완전체’의 2025년 내 출범도, 방미통위가 제반 조건을 마련해야 가능한 새 공영방송 이사회의 3개월 내 출범도 실패했다. 애초에 의무 기한을 3개월로 정한 근거가 무엇인지 설명되지 않았는데, 법 위반 상태가 지속되는 것에 대해서도 누구 하나 책임 있는 설명이 없다. 전광석화와 같은 언론개혁 속도전의 현주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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