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도 '기사수정' 파문… "현대차 민원, 편집권보다 중한가"

9월 기사 제목에서 '정의선' '장남' 표현 삭제
한겨레 노조 "사건 경위 명명백백 소명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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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아들의 음주운전 사고를 보도한 기사들이 4년 만에 삭제되거나 수정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파문이 일고 있는 가운데, 한겨레신문도 올해 9월 기사 제목에서 ‘정의선’과 ‘장남’이라는 표현을 삭제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겨레신문지부는 29일 성명을 내고 “현대차 민원이 편집권보다 중한가”라며 회사가 사건 경위를 명명백백히 소명하라고 촉구했다.

앞서 한겨레는 2021년 8월과 10월, 정 회장 아들의 음주운전 사고와 관련한 기사 2건을 보도했다. <정의선 현대차 회장 장남 ‘면허취소 수준 음주운전’ 뒤늦게 드러나>와 <정의선 현대차 회장 장남 ‘음주운전 사고’ 벌금 900만원> 기사였다. 그런데 보도 약 4년 뒤인 올해 9월 이 기사들 제목이 돌연 수정됐다. ‘정의선 현대차 회장 장남’이 ‘현대차 회장 자녀’로 수정된 것이다. 한겨레신문지부에 따르면 집배신 시스템에서 확인된 수정자는 디지털부국장, 수정일자는 9월29일로 다른 언론사들이 현대차 민원을 받아 기사를 내린 시기와 비슷했다.

2021년 10월5일 등록됐으나 9월29일 수정된 관련 기사. 현재는 28일자로 기사 제목이 원상복구됐다.

논란이 일자 이주현 한겨레 뉴스룸국장은 28일 오전 편집회의에서 사과의 뜻을 전했다. 이 국장은 “9월 편집인과 면담 과정에서 광고국 임원이 현대차의 기사 삭제 요청을 거절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그러자 현대차에서 제목 수정이라도 검토해달라고 부탁을 했다고 하더라”며 “기사 본문은 수정하지 않았지만 제목은 수정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과정에서 국장단이나 기사를 봤던 데스크와 상의 안 하고 제가 결정”했는데 “죄송하다. 먼저 편집위원께 사과한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이 국장의 말에 따르면 현대차 요구는 ‘현대차’ 대신 ‘대기업’으로 바꾸고, ‘정의선’ 이름과 ‘아들’이란 단어는 빼 달라는 것이었다. 이 국장은 “정의선 이름을 빼고 장남을 자녀로 수정했다”며 “현대차 회장은 정의선이란 거 사람들이 다 알고 있고, 정의선은 자식이 아들 한 명이어서 자녀라고 해도 특정이 가능할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4년이 지나 다 알려진 얘기라고 생각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해당 기사를 직접 취재한 기자는 물론 데스크와의 소통 없이 일방적으로 기사 제목이 수정되면서 편집권 독립이 훼손됐다는 비판이 일었다. 한겨레신문지부는 이날 성명을 내고 “한겨레는 8년 전에도 LG그룹 임원이 다녀간 뒤 한겨레 경영진이 앞장서서 한겨레21 표지 기사 교체를 강요하는 편집권 침해 파동을 겪은 바 있다”며 “한겨레 구성원들도 납득할 수 없는 편집권 침해 논란이 언제까지고 반복된다면 자본권력으로부터의 독립 언론 한겨레는 요원할 수밖에 없다. 한겨레를 애정하는 주주와 후원자, 독자들께도 할 말이 없다”고 지적했다.

또 “노동조합은 진상을 파악하고자 회사에 공식 해명을 요청했다”며 “대표이사와 편집인, 광고사업본부장, 뉴스룸국장 등 이번 결정에 연루된 관계자들은 사건의 경위를 명명백백하게 소명하고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한편 한겨레와 같은 시기 SBS와 YTN, 연합뉴스 등 주요 언론사들도 관련 기사를 삭제하거나 수정해 논란이 커지고 있다. SBS와 YTN은 각각 3건과 2건의 관련 기사를 기자와 아무런 논의 없이 9월 삭제했고, 연합뉴스도 제목과 본문에서 ‘현대차’와 정 회장 이름을 뺐다가 원상 복구한 바 있다. 언론노조는 이번 사태가 일부 언론사에 국한되지 않았을 것으로 보고 산하 본부·지부 언론사를 상대로 조사를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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