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의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국내 언론의 비판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앞서 3300만명의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난 후 쿠팡의 후속 대응을 두고 언론에선 꾸준히 비판이 나왔다. 이 가운데 쿠팡의 미국 의회 로비를 통한 정부 압박 의혹이 제기됐고, 정부 차원 조사단이 운영 중인 상황에서 쿠팡이 ‘셀프 조사’ 결과를 발표하는 일이 벌어졌다. 김범석 쿠팡 의장의 잇따른 국회 청문회 불출석 등 행보에 대해 ‘우롱’, ‘몰염치’, ‘오만’, ‘국민·국내 사법체계에 대한 무시’란 지적까지 나오는 게 현재다.
29일 사설에서 종합일간지들은 쿠팡의 최고 의사결정권자인 김범석 쿠팡Inc 이사회 의장의 행태를 비판했다. 한겨레는 이날 사설 <‘셀프 조사, 국회 불출석’ 김범석, 말뿐인 ‘뒷북 사과’>를 통해 개인정보 유출 사태 한 달 만에 나온 사과문에 대해 “‘뒷북 사과’의 진정성을 믿는 이들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셀프 조사’ 결과의 일방적 발표, 청문회 불출석 반복 등 김 의장과 쿠팡이 보이는 오만무도한 행동은 사과를 무색하게 하고도 남는다”는 것이다.
쿠팡은 앞서 25일 개인정보를 유출한 전직 직원의 자백을 받고 기기를 회수했으며 그가 3300만명 고객 정보에 접근했지만 실제 저장된 정보는 약 3000개 계정에 불과했다는 자체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정부 차원 조사 TF가 운영되던 상황에서 협의 없는 자체 발표였다. 쿠팡은 조사 초기부터 정부와 전면 협력을 해왔다고 했지만 해당 TF는 “정부가 공식적으로 발표한 바 없는 사항을 쿠팡이 자체적으로 발표해 국민들에게 혼란을 끼치고 있다”며 일방적 주장을 반박했다.
한겨레는 “앞뒤가 맞지 않는다. (중략) 사건 당사자인 쿠팡이 경찰과 협의 없이 피의자를 접촉하고 증거물을 조사한 것은 수사 방해에 해당할 수 있다. 또 피해 규모를 1만분의 1로 축소한 조사 내용을 일방 발표한 것이야말로 ‘오정보 확산’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한겨레는 30, 31일 국회 상임위 연석 청문회에 출석하지 않겠다고 한 김 의장에 대해 “사과(는) 하면서 정작 직접 소통의 장인 청문회는 회피하고 있다. 국민과 국회 우롱이 도를 넘었다”고 비판했다.
경향신문도 이날 <늑장 사과하고 청문회 불참, ‘두 얼굴’ 김범석 한국 깔보나> 사설을 통해 쿠팡 대응의 부적절함을 언급했다. 이 신문은 “김 의장은 유출 사태 수습과 쇄신 의지를 담은 사과문이라고 했지만, 이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입장문에 불과했다”며 “이 와중에 쿠팡이 낸 영문판 해명자료는 한글판과는 다른 내용이 많아 충격적이다. 한글판의 ‘억울한 비판’을 ‘잘못된 혐의(falsely accused)’로 표현하고 ‘한국 정보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한 것”이라고 적었다.
경향신문은 “‘셀프 조사’가 빚은 논란을 차단하고, 미국 시장이나 글로벌 투자가를 향해 ‘한국 정부가 미국 기업을 공격한다’고 호도해 상황을 뒤집겠다는 의도가 아닌지 의심스럽다”며 “사태 해결에 앞장서야 할 당사자가 ‘미국 기업 탄압’으로 물타기하려는 파렴치한 행태는 끝까지 단호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국일보도 이날 <김범석 또 불출석에 셀프조사…도 넘는 쿠팡의 국민 무시>란 제목의 사설을 내놨다. 한국일보는 김 의장의 청문회 불출석에 대해 “결국 30, 31일 연석청문회에도 한국어를 거의 못하는 미국인 사장이 출석한다. 실질적 오너인 김 의장이 빠진다면 동문서답식 맹탕 청문회로 흐를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한국일보는 이어 “국민 대표인 국회의 소환에 응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진심을 믿으라는 것인가. 김 의장은 쿠팡이 미국에 상장된 회사라는 이유로 글로벌 CEO를 자처하지만, 미국에선 빅테크 기업에 문제가 발생하면 마크 저커버그(메타)나 제프 베이조스(아마존) 같은 실질적 오너들이 의회에 출석한다”며 “매출의 대부분은 한국에서 올리고 불리하면 글로벌 CEO라며 국회에 나오지 않는 김 의장에 대해 국회는 합당한 법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계일보도 이날 사설 <뒤늦은 사과·국회 또 불출석, 쿠팡의 도 넘은 몰염치>를 통해 혹평을 내놨다. 세계일보는 일련의 쿠팡 대응에 대해 “3370만명의 고객 정보 유출 사실을 공개한 지 29일만의 뒤늦은 사과로, 여론은 냉담하기만 하다”, “정부가 범부처 태스크포스(TF)를 과기부총리 산하로 확대하고 다각도의 압수수색과 조사가 진행되자 마지못해 사과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법적 문제를 넘어 글로벌 최고경영자의 도덕적·사회적 신뢰를 내팽개쳤다는 비판이 쏟아진다”고 적었다.
특히 쿠팡의 자체 조사결과 발표에 대해 세계일보는 “이 직원이 3370만명의 고객정보 가운데 약 3000개 개인정보만 저장했을 뿐 외부 유출은 없었다는데 믿기 힘들다. 사법당국 조사가 진행 중인데 범행에 사용된 노트북을 회수해 포렌식한 것은 국내 사법체계를 우롱하는 처사”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김 의장은 종이 한 장짜리 사과문이 아니라 국회와 국민 앞에 나와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정부와 국회도 불출석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묻고 위법 여부를 꼼꼼히 따져 징벌적 과징금 및 손해배상 적용은 물론 영업정지 등 후속조치를 서둘러야 한다”고 부연했다.
이 같은 비판은 매체의 정치 성향 등과 상관없이 일관되게 나타난다. 27일 중앙일보와 동아일보가 각각 <쿠팡 부적절한 ‘셀프 조사’…진실 규명은 수사의 몫>, <수사 대상이 ‘셀프 면죄부’…韓 법체계 안중에 없는 쿠팡>이란 사설을 내며 쿠팡의 ‘셀프 조사’ 결과 발표를 비판한 것은 대표적이다. 국민일보는 “이번 사안은 개인정보 유출 사건을 넘어선다. 한국의 수사 주권과 법집행을 어떻게 대하는가의 문제”라며 “글로벌 기업이라는 이유로, 시장지배력이 크다는 이유로, 수사 이전에 스스로 결론을 내리고 이를 기정사실화하려는 태도는 결코 용납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특히 쿠팡이 미국 로비를 통해 이 사태를 넘기려 한다는 정황이 나오며 다수 신문사가 일제히 목소리를 높였다. 조선일보는 27일 <쿠팡, 美 정부에 로비 해 韓 고객정보 유출 사태 넘기려 하나> 사설에서 “김 의장이 이 사건을 한미 간 통상 이슈로 끌고 가려는 정황도 나타나고 있다. 트럼프 정부 1기 국가안보보좌관이었던 로버트 오브라이언은 쿠팡 사태와 관련해 최근 ‘한국이 미국 기술 기업들을 겨냥하며 트럼프의 노력을 훼손한다면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 될 것’이라고 했다”고 적었다.
조선일보는 “쿠팡을 ‘미국 기업’으로 보고, 쿠팡 고객 정보 유출에 대한 한국 정부의 조사를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부당한 규제’로 보는 것이다. 쿠팡은 이번 사건 내내 미국에 본사가 있음을 내세워 책임을 회피해 왔다”며 “쿠팡 매출의 90%는 한국 소비자에게서 나온다. 돈은 한국에서 벌면서 한국 소비자와 정부를 무시하는 행태는 용납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26일 한국일보의 <“한국 정부가 미국 기업 공격”…도 넘은 쿠팡 로비>, 서울신문의 <몰염치 쿠팡 하다 하다 한미 무역 갈등까지 부추기나> 사설 등도 같은 궤에 놓을 수 있다. 서울신문은 미국 공화당 중진 하원의원의 보수 매체 기고, 로버트 오브라이언의 발언 등을 언급, “쿠팡이 미국 정부를 통해 한국 정보를 압박하는 구명 운동을 벌인 것 아닌가 의구심이 든다”고 했다.
서울신문은 “미국 증권거래소에 상장한 ‘미국 법인’ 쿠팡이 미국 내 정치적 영향력을 확보하려고 최근 5년 간 로비 자금을 154억원이나 쏟아부었다는 관측도 있다. 국회 청문회에는 외국인 임시대표를 보내 동문서답하고 김범석 쿠팡 Inc 의장은 미국에 숨어 한미 무역 마찰까지 일으키며 본질을 호도하려는 것 아닌지 합리적 의심이 든다. 사실이라면 이런 적반하장이 또 없다”고 꼬집었다. 서울신문은 그러면서 “정부는 쿠팡의 불법행위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묻는 데 추호의 소홀함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라며 “실질적 손해배상제 등 관련법 정비에도 속도를 내야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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