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전남 신문, 저마다 방식으로 '끝나지 않은 비행' 기록
'12·29 제주항공 참사 1주기' 다양한 각도로 참사 되짚어
무등일보, 소방관 트라우마 조명… 광남일보, 항공안전 점검
12·29 제주항공 참사가 발생한 지 1년이 지났다. 광주·전남 지역 언론사들은 이날 1주기를 맞아 추모대회 현장부터 정책 분석, 진상 규명 과정까지 다양한 각도로 참사를 되짚었다. 유가족들의 절규를 전하는 한편, 참사 현장에 투입됐던 소방관들의 고통을 조명하는 등 언론사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끝나지 않은 비행’을 기록했다.
“남겨진 가족에게 지난 1년은 애도와 싸움이 겹쳐진 시간"
광주매일신문과 전남일보는 이날 참사 1주기를 맞아 조사 진행 상황과 유가족들의 일상을 다뤘다. 광주매일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는 12단계로 나뉘는 항공사고 조사의 6·7단계인 검사·분석·시험 및 사실조사 보고서를 작성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며 “블랙박스에 기록이 남지 않은 사고 직전 4분7초간의 상황도 재구성됐고, 조류 충돌 경위와 콘크리트 로컬라이저 둔덕이 사고에 미친 영향도 연구용역을 통해 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 같은 내용은 공표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유가족들은 사고 직전 약 4분7초간 블랙박스 기록이 남지 않은 점을 문제 삼고 있다. 사고기가 한 차례 복행을 시도했을 만큼 엔진이 작동 중이었지만, 블랙박스만 멈췄다는 설명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전남일보는 유가족의 목소리를 빌려 “핵심 자료 공개 없는 조사는 책임 회피”라며 “블랙박스 원본과 관제 교신 기록을 전면 공개하라”는 요구를 전했다.
또 무안공항 로비에 설치된 179개 캐리어 추모 작품을 소개하며 “사는 게 아니라, 숨만 쉰다”는 유가족들의 멈춘 일상을 조명하기도 했다. 전남일보는 “한 유가족은 사고 현장에서 수습된 어머니의 휴대전화를 정리하지 못한 채 아직도 보관하고 있다”며 “남겨진 가족에게 지난 1년은 애도와 싸움이 겹쳐진 시간이었다”고 보도했다.
남도일보와 전남매일은 27일 광주 5·18민주광장에서 열린 추모대회 현장을 상세히 전했다. 남도일보는 제주항공 참사로 아내와 두 아들을 잃은 김영헌씨의 편지 낭독을 상세히 보도하며 “김 씨는 사고 소식을 처음 들었던 순간부터 무안공항에서의 신원 확인, 장례 이후 반복되는 꿈 이야기까지 담담히 풀어냈다. 편지가 끝나자 광장 곳곳에서 훔치는 울음이 이어졌고, 일부 시민은 고개를 들지 못한 채 눈물을 닦았다”고 전했다.
전남매일은 “이날 단상에 오른 김유진 유가족협의회 대표는 지난 1년간 ‘책임자 처벌 0건, 정보 공개 0건, 사과 0건’이라는 정부의 참담한 성적표에 피를 토하듯 절규했다”며 “추모대회에 참석한 국회의원들은 여야를 떠나 지금까지 진상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점에 대해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서 깊이 송구스럽다며 유족들 앞에 고개를 숙였다”고 보도했다.
참사가 남긴 상처… 수습되지 않는 고통
무등일보는 참사 현장에 투입된 소방관들의 트라우마를 집중 조명했다. 당시 참사에 동원된 전남소방본부 소방공무원은 모두 1002명. 무등일보는 이 중 243명이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고 있고, 52명은 즉각적인 치료가 필요한 ‘치료군’으로 분류됐다고 보도했다. 또 “이는 숫자일 뿐, 이들의 고통은 제대로 설명하지 못 한다”며 “현장에 투입됐던 소방관들은 악몽에 시달리다 새벽마다 잠에서 깨고, 현장에 다시 투입될까 두려워 출근길이 무거워진 이들도 많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들의 고통은 공무상 재해(공상)로 인정받기 어렵다. 최근 4년간 광주·전남 지역 공상 신청 5522건 중 정신질환은 98건(1.8%)에 불과했고, 이 중 24건(24.4%)은 반려 또는 보류됐다. 무등일보는 “지난 2023년 개인의 공상 입증 부담을 완화하고 소방관의 공무상 재해 인정 범위를 넓힌 ‘공상 추정제’가 도입됐지만, 현실은 달라진 게 없다는 게 전문가의 지적”이라며 “지역 정치권에선 정부와 지방정부가 제도적 개선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고 보도했다.
광남일보는 참사 이후 정부가 발표한 항공안전 혁신방안의 이행 현황을 점검했다. 국토교통부는 참사 이후 무안공항을 포함, 전국 7개 공항에서 방위각 시설 개선이 필요한 9개 지점을 선정했고 이 중 4곳은 개선을 마쳤다. 광남일보는 “하지만 항공안전감독관 인력 부족 문제는 여전하다”며 “항공안전청 독립 설립 역시 무산됐다. 국제민간항공기구 이사국 36개국 중 32개국은 이미 별도의 항공안전 전담조직을 두고 있지만, 국토부의 항공안전 혁신방안에는 항공안전청 설립이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한편 무안공항 폐쇄로 인한 지역경제 피해도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광남일보는 지역 여행업계 손실을 1000억원으로 추산하며, 일부 업체는 이미 문을 닫았고 상당수는 존폐 기로에 놓여 있다고 전했다. 또 “미래 항공 인력을 양성하는 교육 현장도 직격탄을 맞았다”며 “초당대 항공운항학과 학생들은 졸업 요건을 채우기 위해 충북 청주공항까지 오가며 비행 교육을 받고 있다. 하루 이동 시간만 8시간에 달헤 체력적·경제적 부담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강아영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Copyright @2004 한국기자협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