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29일 전라남도 무안, 겨울 아침 하늘을 가르던 비행기가 돌아오지 못했다. 12·3 불법 계엄의 후폭풍이 가시지 않은 어수선한 상황에서, 179명의 목숨을 빼앗아 간 참사는 그 어느 때보다 조용히, 그리고 빠르게 잊혀갔다.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이후 1년이 흘렀지만, 유가족의 시간은 그날에 멈춰있는 이유다.
유족들은 1년째 ‘밥을 먹을 수도, 잠을 잘 수도 없는’ 고통 속에 있다. 추석 이후 유족들을 주기적으로 만나왔다는 한아름 광주CBS 기자는 “진상 규명이 안 되고 있다는 점이 유족을 가장 힘들게 하고 있다”고 전했다. 마음이 불편해서 잠을 잘 자지 못하니 없던 병도 생기고, 지병도 심해진다는 것이다.
유족의 고통을 덜기 위해 언론에서도 진실 규명에 끈질기게 매달렸다. 참사 직후 무작정 무안으로 향했던 우한울 KBS 기자는 현장 기록이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해 ‘한 달 동안 CCTV만 찾겠다’고 다짐했다. 이후 항공기 블랙박스가 기록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우 기자가 CCTV를 확보해 분석한 <2216편 추적 보고서>는 항공기의 마지막 4분7초를 보여주는 유일한 기록물이 됐다.
남도일보는 <제주항공 참사, 그 후 8개월> 보도에서 항공기가 추락한 ‘사고’의 원인과, 179명이 사망한 ‘참사’의 원인을 구분해 보도했다. 국제 규정에 맞지 않는 로컬라이저(방위각 시설)와 콘크리트 둔덕을 방치하는 등 정부의 무책임과 안전불감증이 사고를 참사로 키웠음을 짚어냈다. 이처럼 탄핵 정국에서 참사 보도에 소홀했다는 비판 속에서도, 언론 한편에서는 끊임없는 취재가 이어져 왔다.
그럼에도 1년째 정부의 진상 규명은 제자리걸음이다. 우한울 기자는 현재 상황을 두고 “환자에게 큰 병이 생겼는데, 어떤 병인지 진단은 내지 않고 감추면서 치료법만 내놓은 상황”이라고 비유했다. 안전관리 강화 대책은 마련했는데, 사고에 대한 설명은 전무하다는 것이다.
국토교통부 산하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사조위)는 7월 “조종사가 손상이 심했던 오른쪽 엔진 대신 왼쪽 엔진을 껐다”는 중간 조사 결과를 발표하려다 유족들의 반발에 가로막혔다. 참사의 또 다른 원인으로 지목됐던 방위각 시설과 둔덕, 기체·엔진의 결함 가능성 등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사조위는 이달 초 언론의 취재와 질의가 제한된 ‘공청회’ 형식으로 조사 결과를 발표하려 했으나 최종 무산됐다. 그 사이 국토부는 ‘항공안전 혁신 방안’을 비롯한 안전 대책을 세 차례 내놨다.
유족의 입장에서 참사를 취재해온 유지영 오마이뉴스 기자는 진상 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이유를 “유족을 사고 조사에 있어서 중요한 주체로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국토부 산하의 사조위가 국토부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유족의 요청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낮다. 유 기자는 “유족이 참사의 진상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온전한 애도가 이뤄질 수 없다. 사조위의 국무총리실 산하 이전을 앞두고, 앞으로는 유족을 진상 규명에 있어 중요한 주체로 상정하고 조사를 진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참사 1주기를 앞두고, 국민일보는 참사 이후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유족과 정부 기관 사이 갈등의 해법을 찾기 위한 3편의 기획 보도를 이어간다. 김혜지 기자는 “경제부 정책팀에서 근무하는 만큼, 정책적인 면에서 이번 참사에 대한 깊이있게 다뤄보고자 했다”며 “참사의 원인을 분석하는 것을 넘어 해외에서는 유족과 정부 당국이 어떤 식으로 관계를 설정하는지, 문제를 구조적인 차원에서 논의해 보고자 한다”고 밝혔다.
한편 30일 KBS <시사기획 창>에서는 우한울 기자가 지난 1년간 국토부의 참사 조사와 안전대책 발표 과정에서 남긴 의문들을 종합해 보도할 예정이다. KBS광주방송총국은 23일과 24일 진상규명을 향한 유족들의 투지와 함께, 대한민국 재난 참사 시스템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대안을 담아낸 다큐멘터리 2부작을 공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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