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속의 저울

[언론 다시보기] 양재규 변호사·언론중재위원회 조정본부장

양재규 변호사·언론중재위원회 조정본부장.

은유적 표현으로서 양팔저울은 다양한 의미를 지닌다. 상충하는 가치들 사이에서 내리는 윤리적 판단의 경우, 흔히 저울질에 비유되곤 한다. 법의 여신 디케의 손에 들린 양팔저울은 ‘공평’과 ‘정의’를 상징한다. 그리고 양팔저울의 작동 원리와 거의 100%에 가까운 싱크로율을 보이는 법리가 있는데, 바로 ‘이익형량’이다.


‘이익형량’이라는 용어가 다소 생소할 수도 있겠으나, 다양한 분야의 소송에서 두루 사용되는 보편적 법원리다. 일례로, 면허 취소·공공시설 설치와 같은 행정 분야에서 내려지는 각종 재량적 처분에 대한 적법성 판단 과정에서 공익과 사익 간 비교형량이 필수적으로 이루어진다. 언론소송으로 분야를 좁혀보면, 초상권 내지 사생활 침해와 같은 각종 인격권 침해 사안에서 판례는 상충하는 이익 간 형량을 통하여 침해행위의 위법성을 최종적으로 가리고 있다.


이익형량이란, 쉽게 말해 상충하는 이익들을 저울질해 봄으로써 어떤 이익이 더 무거운지 판별하는 것이다. 저울질의 결과, 목적한 행위로써 달성되는 이익의 무게가 침해되는 이익의 무게보다 가벼우면 그 행위는 정당화되지 못한다. 정당화되려면 무겁거나 최소한 대등해야만 한다. 이 원리의 최대 장점은 문제 된 행위나 조치, 표현의 정당성을 직관적이며 상식적으로 설명해 준다는 데에 있다.


문제는 이익형량이 사후적 설명 원리로서만 기능할 뿐, 사전적 예방 기능을 거의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저울질을 해보기 전까지 저울의 팔이 어느 쪽으로 기울지 도무지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예측할 수 있어야 안심하고 행동할 수 있는데, 그렇지 못하니 위축 효과를 발생시킨다. 언론소송 결과가 취재 및 보도의 가이드라인으로 기능하지 못하는 데에는 예측 가능성이 현저히 낮은 이 원리의 특징이 한몫한다고 생각한다.


이익형량을 사후적 설명 원리라고 했지만, 설명력 역시 보다 제고될 필요가 있다. 설명 원리라고 하기에는 다소 투박하고 두루뭉술하다. 이익형량의 원리가 적용된 언론 관련 판결문을 읽어보면, 침해행위 영역에 속하는 요소(침해행위로 달성하려는 이익의 내용과 중대성, 침해행위의 필요성과 효과성, 침해방법의 상당성)와 피해이익 영역에 속하는 요소(피해법익의 내용과 중대성, 피해의 정도)를 저울질했다는데 도대체 어떤 경위로 해당 결론에 이르게 되었는지 납득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설명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적어도 양팔저울의 접시 위에 무엇을 올렸는지 명확히 제시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저울질할 요소를 신중히 선별해야 한다.


2018년 3월 한 지상파 메인 뉴스에서 국내 최초의 어린이 다문화합창단 운영 관련 문제점을 다루었다. 이 과정에서 해당 합창단을 운영하는 단체의 대표 A의 얼굴이 공개되었다. 이에 A는 자신의 초상권 등이 침해되었다는 이유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1심에 이어 2심까지는 위법한 초상권 침해라고 보았다. 그런데 3심에 이르러 결론이 뒤집혔다. 대법원이 이익형량 방식에 약간의 변화를 주었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침해행위의 보충성·긴급성’ 및 ‘피해이익의 보호가치’를 형량의 요소에서 제외하는 대신 ‘피해자의 특성(공인인지, 사인인지)’, ‘사안의 특성(공적 분야와의 관련성, 공론의 필요성)’, ‘피해자의 책임성(공적 관심을 자초했는지)’을 새로운 고려 요소로 추가했다(2020다253423). 이 작은 시도로 양팔저울이 기울어지는 방향은 달라졌다.


낮은 예측 가능성이라는 약점에도 불구하고, 이익형량의 원리가 언론소송에서 폐기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양팔저울을 사용해 온 인류가 오랫동안 축적해 온 대체 불가한 지혜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폐기가 아닌, 보완이 정답이다.
일단, 저울질이 불필요한 영역을 조금씩 넓혀가야 한다. 단적인 예로 ‘당사자 동의 의제’를 들 수 있다. 당사자로부터 동의를 받으면 초상권, 사생활 침해 등이 문제되지 않는다. 이와 유사하게, 스스로 공개된 무대 위에 올랐다면 자신을 향한 공중의 주목과 관심 또한 견뎌야 한다. 타인에 의해 강요된 결과가 아니라 스스로 내린 선택에 따른 결과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대안은 기자들 마음속에 내재화된 양팔저울을 하나씩 갖추는 것이다. 보도에 앞서 차분히 저울질해 본다면, 소송에서 이익형량의 결과로 낭패를 보는 일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양재규 변호사·언론중재위원회 조정본부장의 전체기사 보기

배너

많이 읽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