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25일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 3층 사파이어볼룸에서 열린 ‘2025 과학언론상’ 시상식. 이름을 부르자 김윤미 MBC 기자가 양팔을 살짝 들어 객석에 인사한 뒤 환하게 웃으며 나비처럼 가볍게 연단에 올랐다. 그가 받은 상패에는 ‘대한민국과학기자상’이 찍혀 있었다.
“송구스럽지만, 처음엔 상의 이름을 정확히 몰랐어요. 나중에 ‘대한민국’이 붙는다는 걸 알고는 ‘국가대표’처럼 느껴지더라고요. 이름이 워낙 크다 보니 ‘내가 이 무게를 감당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9일 서울 마포구 MBC 1층 글로벌라운지에서 마주한 김 기자는 말했다.
2025년은 16년차를 통과하고 있는 김윤미의 기자 이력에 특별하게 새겨질 듯하다. 한국과학기자협회가 선정한 ‘대한민국과학기자상’을 수상하면서 기자로서의 확고한 입지를 다지게 된 것이다. 복지, 환경, 경제, 산업 등 부서를 옮기면서도 놓지 않았던 과학의 끈은 데이터와 접속의 과정이었고, 습관처럼 검증하는 취재의 원천이었다.
심사위원장 안준모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는 “화려한 표현보다 명확한 전달을, 단발성 보도보다 지속적 검증을 택한 과학형 저널리스트로 평가된다”고 밝혔다. 김 기자는 이런 평가에 “부끄럽다”고 했다. 그는 “이공계 출신이라 글을 유려하게 쓰는 편은 아니”라면서도 “논리적인 글을 좋아하고 데이터나 사례가 있으면 관심이 간다”고 말했다. 그는 대학에서 대기과학을 공부하고, 대기과학과 석사를 졸업했다.
과학기자상을 받았다고 해서 과학 뉴스만 전담하진 않는다. 여느 기자들처럼 부서를 계속 옮겨 다녔는데, 그때마다 데이터에 눈이 갔다고 했다. “현장을 다니며 직접 취재해도 방송 과학 보도가 평가받지 않는 분위기가 아쉬웠어요. 그래서 데이터로 더 분명하게 보여주려 했습니다.”
데이터로 접근하면 다르게 보인다
데이터를 활용한 새로운 시각의 취재는 202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산업부를 처음 맡은 그해 여름, 공부라도 하자는 마음으로 하루 종일 전력거래소 전력 그래프를 들여다봤다. ‘공급능력’이나 ‘현재부하’ 등 전문 용어가 낯설었지만, 그의 눈에 전력 그래프가 날마다 같은 패턴으로 오르락내리락하는 게 들어왔다. 그리고 오후 5시마다 전력 피크가 나타났다. 제일 더운 건 오후 2~3시인데, 왜 5시지?
15년치(2005~2021년) 전력 피크 데이터를 모두 뽑아서 분석했다. 2010년에도, 2015년에도 오후 3시였던 피크타임이 2016년부터 오후 5시로 옮겨갔다는 걸 확인했다. 그 이유가 전력거래소에 잡히지 않은 숨은 전력, 가정집이나 소규모 공장에서 설치한 태양광 패널들이 생산한 전기가 영향을 미쳤음을 데이터로 보여줬다(<‘전력 피크타임’ 오후 5시로 늦춘 태양광 발전의 위력> 2021년 7월21일 MBC 뉴스데스크).
작년에는 데이터를 활용해 이공계 기피 현상을 파고들었다. 국회의원실, 정부, 입시학원 등을 통해 정보를 모으고, 축적한 자료를 표와 그래프로 정리하고, 전문가들을 만나 그 데이터의 의미와 맥락을 취재했다. 인재들이 이공계를 떠나는 현상을 통계로 포착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공계 위기라는 말은 다들 하지만, 막상 취재하려면 정말 어렵습니다. 사람마다 처한 사정이 다르고, 자신의 이야기를 공개 인터뷰로 쉽게 꺼내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접근 방식을 바꿔, 데이터를 먼저 들여다봤습니다.”
그는 과학고와 영재학교 출신이 의대로 얼마나 빠져나가는지 확인하기 위해 3년간(2022~2024년) 전국 39개 의과대학 신입생의 출신 고등학교를 전수조사하고, 카이스트(한국과학기술원), 디지스트(대구경북과학기술원), 유니스트(울산과학기술원), 지스트(광주과학기술원) 등 과학기술원의 신입생 충원율, 이탈률 같은 기초 통계를 직접 만들어 어디가 문제인지 수치로 밝혔다.
차별화된 시선은 <인재 몰린 ‘과학기술원’…의대 지원 ‘보험용’>, <영재학교·과학고 삼킨 의대 블랙홀…출신고교 첫 전수조사> 보도로 이어졌고, 이공계 인재들이 의대로 몰리는 실태와 그 이유, 교수들이 수도권으로 떠나면서 지방 과기원 학생들이 공부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현실을 짚은 디지털 콘텐츠 <의대·해외로 줄줄이 떠나는 ‘핵심인재’ 과학계 위기감은 0(제로)?>로 나타났다.
현장에서 묵묵히 일하는 과학자들 조명
과학기술은 용어도 그렇고 멀게 느껴진다. 이공계 출신인 그도 “요즘 보도자료는 그냥 읽어서는 이해가 안 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는 어려운 과학을 쉬운 언어로 표현하기 위해 사람을 등장시킨다. “과학자가 왜 그 연구를 시작했는지, 현장에서 어떤 시행착오를 겪었는지 같은 이야기를 담으면 시청자도 ‘내 얘기’처럼 받아들이거든요.” 사람으로 과학을 설명하고, 과학을 실마리로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이다.
누리호를 만들고 책임진 연구진에 주목한 것도 그랬다. 11월27일 누리호 4차 발사 현장을 밤새워 취재한 김 기자는 서너 시간 자고 그날 아침 10시 서울로 출발했다. 서울로 올라오는 차 안에서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이 촬영한 영상을 보다가 한 과학자에 눈길이 갔다. “누리호 이륙 직전 발사지휘센터에 있는 과학자들이 보이는데, 한 분에게 눈이 계속 갔어요. 이륙 순간 오른손을 불끈 쥐었다가 이마를 감싸 쥐고 한숨을 쉬며 의자에 몸을 기댄 과학자, ‘신 스틸러’였어요.”
항우연 홍보팀에 전화를 걸어 김대래 나로우주센터장과의 화상 인터뷰를 요청했다. 오후 5시로 인터뷰는 잡혔지만, 그날 뉴스데스크에는 리포트가 들어갈 자리가 없었다. “욕심을 좀 부렸어요. 이런 날 과학자가 방송을 타지 언제 타겠어요. 꼭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죠.” 인터뷰는 이튿날(11월28일) 아침 뉴스투데이에서 <발사 순간 쓰러진 연구진…“안도감에 기억 안 나”>로 방송됐다. 그는 “누리호 같은 과학기술은 결국 사람이 만들어낸 결과”라며 “개발자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여기까지 왔는지 이야기가 담겨야 시청자도 몰입한다”고 했다. 이어 “현장에서 묵묵히 연구하는 과학자들의 모습을 보여줘야 아이들도 ‘우리나라 과학자는 이런 사람들이구나’하고 상상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국내 연구진이 개발한 치매 신약후보 물질도 ‘30년 지기 과학자’로 접근하면 스토리가 생긴다. 작년 11월에 보도한 뉴스데스크 리포트 <30년 친구 과학자, 치매 치료 연구로 5천억 잭팟 터트렸 다>는 그런 사례다. 과학자들이 치매 약물로 글로벌 제약회사와 5000억원 규모의 기술 이전 계약을 맺었다는 소식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보도자료에 있었다. 어떤 사람들이 이런 성과를 얻었을까 싶어 홍보팀에 연락해 이야기를 나누다 그들이 오랜 친구 사이라는 걸 알았다.
“대학 같은 과, 같은 실험실 출신에 같이 유학 가고, 결혼식 축가도 불러준 30년 지기 친구라는 거예요. 이거는 두 친구로 엮어야겠다 싶었죠.” KIST가 출자한 연구소 기업 큐어버스 조성진 대표가 KIST 박기덕 박사에게 “밥? 밥(먹을래)?”라고 말하는 장면으로 시작한 리포트는 두 친구 과학자의 각별한 인연, 치매 약물 개발, 연구 성과, 정부 출연연구원 사상 역대 최대 규모의 기술 이전 계약 체결 등을 담았다. 그는 “뉴스 큐시트가 항상 빡빡해 과학 기사 한 줄 넣기가 어렵다”면서 “어떻게 하면 넣을 수 있을까 고민하다 두 친구가 만들어낸 잭팟으로 세일즈를 했다”고 말했다.
“왜 통신사 문제를 그렇게 파느냐”
과학 전문 잡지 ‘과학동아’는 김윤미 기자의 첫 직장이었다. 대기과학과를 나와 대학원에 진학했지만, 흥미를 붙이지 못했고, 호기심도 생기지 않았다. 그는 “호기심이 생기지 않을 수밖에 없었어요. 아는 게 없었으니까요”라고 웃었다. 지도교수에게는 “연구는 제 적성이 아닌 것 같아요. 전공을 살릴 수 있는 일을 찾아보려고요”라고 털어놨다. 교수의 소개로 기자들을 만나면서 “아는 걸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원 석사를 끝내고 2009년, 과학동아에 입사했다.
“어쩌다 보니 기자가 된 것 같아요.” 그는 “언론고시를 준비하지 않아서 어떻게 언론사에 들어가는지 몰랐고, 과학기자가 무엇을 하는지 전혀 정보가 없었다”면서 “과학동아에서 들입다 과학만 팠다”고 했다. 과학동아에서 4년을 일하다 2013년 MBC로 이직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을 겪으면서 우리가 자연에 대해 너무 모른다는 걸 깨달았어요. 과학적으로 질문할 게 많았는데, 우리나라에는 전문가가 많지 않았어요. 지진과 지진 해일이 흔하게 일어나는 곳은 아니니까요. 수소문 끝에 손해보험 쪽에서 전문가를 찾아 굉장히 보람있게 일을 한 기억이 있어요. 근데 잡지에만 머무르는 게 아쉬웠어요.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과학 기사가 전달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김 기자는 산업트렌드팀 차장으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를 출입하고 있다. 그가 올해 개인적으로 뜻깊었다고 꼽은 보도는 KT와 LG유플러스 해킹 은폐 의혹이다. 그는 이지은 기자와 함께 9월1일 첫 보도를 시작으로 단독 리포트 11개를 이어가며 50일 남짓 연속 보도했다. KT 무단 소액 결제 사건 원인이 ‘유령 기지국’에 있음을 최초 보도했고, KT가 해킹 의혹이 제기된 서버를 무단 폐기했다는 의혹을 추적했다. 끈질긴 보도 끝에 KT는 내부 서버가 외부 침입을 받은 사실을 인정했고, 정부는 민관합동조사단을 꾸려 정밀 조사에 착수했다. 해킹 의혹이 나왔는데도 “정보 침해는 없었다”며 미온적인 태도를 보인 LG유플러스는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에 피해 사실을 신고하겠다고 입장을 바꿨다.
취재가 길어지면서 “왜 통신사 문제를 그렇게까지 파느냐”는 말도 들렸다. 그는 “사실을 숨기려는 움직임이 보여서 취재를 멈출 수 없었다”고 했다. 기업들은 내부 문서가 밖에 있는데도 ‘해킹이 아니라 침해사고’라고 주장했다. 자진 신고하지 않으면 정부가 조사에 나설 수 없는 허점을 이용했다. “우리가 확인해서 보도하기 전까지는 끝내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숨바꼭질하듯 따라가며 작은 단서들을 하나씩 이어 붙였습니다.” 그는 “데이터가 쌓이고 쌓여서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결과가 됐다”고 했다. KT ‘유령 기지국’과 서버 폐기 의혹 연속 보도는 방송기자연합회 제204회(2025년 9월) 이달의 방송기자상을 수상했다.
과학자들 직접 만나 미디어 트레이닝
김 기자는 최근 들어 과학자들을 직접 대면하는 기회가 늘어났다. 한국과학창의재단이 주최하는 ‘과학기술인 대상 1대1 미디어 트레이닝’에 언론 소통 전문 트레이너로 참여하면서다. 유튜브에 출연하거나 강연을 나가고, 방송국에서 인터뷰 요청이 왔을 때 미디어 대응을 잘하길 원하는 과학자들을 교육하는 프로그램이다. 그는 언론 인터뷰 현장과 유사한 분위기에서 과학자들을 인터뷰해 피드백을 제공하고 있다.
“과학자들은 대체로 겸손하죠. ‘어떻게 연구를 시작하게 되셨어요?’라고 여쭤보면 ‘연구 과제가 생겨서’, ‘정책이 마련돼서’ 같은 답을 많이 하세요. 저는 그보다 ‘왜 이 연구를 하게 됐는지’를 더 듣고 싶거든요(웃음). 그래서 ‘조금 더 많은 분들이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연구를 시작한 계기와 문제의식을 함께 들려주시면 좋겠습니다’ 같은 말씀을 드립니다.” 그는 “하루 종일 인터뷰하는데 별로 힘들지는 않다”면서 “매번 새로운 정보가 쏟아지니 오히려 집중하게 되고 시간이 빨리 간다”고 말했다.
한때는 과학 보도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다고 느껴 아쉬울 때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과학기술이 거의 모든 분야와 맞닿아 있다. 달리 말하면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걸 과학적으로 이야기하는 뉴스가 필요한 시대이다. 그래서 그는 과학만 전담하는 ‘스페셜리스트’보다, 분야를 넘나들며 연결해 설명하는 ‘제너럴리스트’에 가깝고 싶다고 했다. 2년 전 ‘통일전망대’에 손들고 간 것도 그렇고 기회가 되면 다양한 분야에서 취재 경험을 더 쌓고 싶다고 했다.
“습관처럼 ‘근거가 있나’부터 확인하려고 해요. 검증하는 습관이 과학기자의 장점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 강점을 살릴 수 있다면 어떤 분야든 도전해보고 싶습니다. 과학기자 후배들에게도 ‘저널만 보지 말고, 사회가 궁금해하는 질문을 데이터와 취재로 풀어보자’고 말해요. 좋은 과학자들의 이야기를 더 많은 사람에게 전달하고, 과학과 대중 사이를 잇는 역할을 꾸준히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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