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뉴스 잡으려다 진짜뉴스 죽는다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진실은 때로 너무 늦게 모습을 드러낸다. 어떤 진실은 끝내 밝혀지지 못한 채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그래서 언론은 늘 확정되지 않은 사실을 묻고, 권력이 감추려는 의혹을 들춰내야 한다. 가끔은 소송을 감수하고 권력을 정조준하기도 한다.


그런 비판 보도에는 흔히 ‘가짜뉴스’라는 낙인이 찍혔다. 2016년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을 세상에 알린 JTBC의 태블릿PC 보도, 국정원 댓글 조작 사건 보도 역시 처음에는 허위·음모론이라는 비난에 직면했다.


SPC의 열악한 근로환경을 고발한 보도, 쿠팡의 후진적 노동환경과 부실한 내부통제 등을 지적한 기사들 또한 마찬가지다. 기업과 이해관계자들은 ‘과장’과 ‘왜곡’을 주장했지만, 그 보도들은 시간이 지나 진실로 드러났다. 그리고 이들 기업이 자정할 수 있는 단초가 됐다.


10일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를 통과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온라인상 허위조작정보의 유통을 막고 이용자 피해를 최소화하겠다며 ‘허위조작정보 근절법’이라고 이름 붙였다.


개정안에 망법상 사실적시 명예훼손 폐지, 허위사실 명예훼손 친고죄 전환 등 언론계가 꾸준히 제기해 온 지적이 일정 부분 반영된 것은 환영한다.


하지만 언론계가 요구해 온 ‘권력자의 징벌적 손해배상 청구 배제 조항’은 제외됐다. 손해액의 최대 5배에 이르는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도입될 경우 사후적으로 다툼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공익적 취재와 탐사보도는 구조적으로 위축될 수밖에 없다. 권력이나 거대 자본을 상대로 한 보도일수록 소송 위험은 커지고, 언론은 진실 규명보다 법적 리스크를 먼저 계산하게 된다.


논란이 확산하자 민주당은 징벌적 손해배상은 고의성과 부당한 목적이 모두 입증돼야 가능하다며 남용 우려에 선을 그었다. 그러나 언론 현장의 우려를 해소하기에는 여전히 역부족이다. 권력 비판과 공익적 탐사보도가 움츠러들면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결국 국민이다.


난무하는 의도적 거짓과 혐오를 해소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부정할 수는 없다. 혐오가 돈이 되는 세상이고, 유튜브에선 구독자를 늘리고 후원금을 받아내기 위한 혐오와 거짓 정보가 독버섯처럼 퍼지고 있다. 하루하루 정교해지는 인공지능(AI) 영상·사진이 가짜뉴스와 결합하면 사회적 혼란은 더욱 커질 것이다.


언론 역시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오보와 부실한 검증, 페이지뷰 경쟁을 위한 어뷰징 기사들이 신뢰를 갉아먹어 온 것도 사실이다. 언론의 자정 노력과 책임 강화는 피할 수 없는 과제다.


다만 거짓과 혐오를 해소하기 위해 만들겠다는 법이 자본에 대한 감시, 권력에 대한 견제를 막는 장치로 오용된다면, 그 피해는 결국 이 사회와 국민이 지게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국가가 진실과 거짓의 기준을 독점하는 순간 비판적 보도는 통제의 대상이 되고 언론의 자유는 형식만 남게 된다.


정치권이 법제사법위원회와 본회의 논의 과정에서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감시 기능을 훼손하지 않는 방향으로 법안을 신중히 재검토해 줄 것을 요구한다. 언론계 역시 국민의 알 권리와 건강한 민주적 공론장을 지키기 위해 책임 있는 논의와 자정에 적극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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