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미심위, 대통령 추궁에 '독립기구' 외피조차 무색
이 대통령, 방미통위 업무보고서 "방미심위 업무보고 왜 안하나"
"종편, 방송인지 편파 유튜브인지 하는거에 대응하고 있나" 묻기도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 등이 12일 대통령 업무보고를 진행했다. 출범 70일이 지나도록 위원회 구성이 완료되지 않은 방미통위는 국정감사와 내년도 정부 예산안 심사를 초유의 직무대리 체제로 치른 데 이어 대통령 업무보고에도 위원장 직무대행이 참석했다. 현재 방미통위는 김종철 위원장 후보자가 16일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있어 12월5일자로 위촉된 류신환 비상임위원이 위원장 직무대행을 맡고 있다.
비상근인 위원장 직무대행에 출범 두 달이 넘게 조직 정비가 되지 않은 탓일까. 이날 업무보고에선 사실이 아니거나 논란의 소지가 있는 발언들이 대통령과 대통령실 관계자 쪽에서 나왔지만, 방미통위는 이를 정확히 바로잡지 못하고 소극적으로 대응했다.
“엉터리·편향 보도에 대응”하는 게 방미통위 통상 업무?
우선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류신환 위원장 직무대행으로부터 업무보고를 간략히 들은 뒤 “같이 온 직원들 누가 있느냐”고 물으며 “통상적인 실무 일은 다 하고 있죠? 예를 들면 심사 업무라든지 방송사들 엉터리 보도하고 편향 보도하고 이런 거 하는 데 대응이나 가짜뉴스 대응이나 통상 업무는 하고 있는 거죠?”라고 물었다. 위원회 구성이 늦어져 심의·의결이 필요한 업무는 중단된 상황임을 전제한 질문이었다.
이에 대해 박동주 방미통위 방송정책국장은 “예. 실무적인 업무는 하고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이는 반만 맞는 답변이다. 대통령의 질문 중 “방송사들 엉터리 보도하고 편향 보도하고 이런 거 하는 데 대응”하는 건 애초에 방미통위가 하는 ‘통상 업무’가 아니다. 방미통위가 이런 일을 ‘통상’으로 하고 있다면 그건 문제가 된다.
박 국장의 답변이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했는지 이규연 대통령실 홍보소통수석이 나섰다. 이 수석은 “방심위(방송미디어통신심의위원회·방미심위) 구성이 전혀 안 돼 있어서 정상적인 심의는 안 되고 있다”며 “긴급 심의만 지금 하고 있다”고 설명을 보탰다.
그러나 이 역시 사실이 아니다. 방미심위는 10월 개편 이후 여태 ‘0인 체제’로 긴급 심의조차 할 수 없는 상태다. 이 대통령이 앞서 캄보디아 범죄 조직의 온라인 구인광고 등 범죄 유인 게시물에 대해 “방심위의 긴급심의제도를 활용해 삭제 조치 방안을 신속하게 강구하라”고 지시했음에도 그런 이유로 방미심위는 즉각적으로 조치에 나서지 못했다.
이 대통령 “방송이 개인 유튜브처럼 해도 관여 못하나?”
대통령은 “방송 정상화”가 방미통위 업무 아니냐며 비슷한 질문을 이어갔다. 이 대통령은 “여기(업무보고) 보면서 왜 이게 빠졌지? 한 게 있었다”면서 “종편, 그게 방송인지 편파 유튜브인지 그런 게 의심이 드는 경우가 꽤 있지 않나. 그런 건 업무에 안 들어가나”라고 물었다.
이에 류신환 대행이 원하는 답을 내놓지 못하자 “류신환 변호사님 비상근인데 어떻게 알겠냐”면서 실무 책임자들을 향해 “방미통위 업무 중에 방송 편향성, 중립성 훼손, 품격 떨어지게 그런 거에 대한 뭐가 있어야 할 거 아닌가. 왜 언급조차 없냐는 것”이라고 대답을 재촉했다.
이에 박동주 국장이 “방송 내용과 관련된 편향, 중립성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방미심위가 평가하게 돼 있다. 저희가 다루는 부분이 아니다”라고 답했다.
그러자 이 대통령은 “그럼 방송들이 중립성을 어기고 특정 정당의 개인 사적 유튜브처럼 행동하는 거에 대해서 방통위가 전혀 관여할 수 없다는 거냐”고 다시 물었고, 이번엔 류신환 대행이 “그렇지는 않다”면서 “재허가·재승인 절차에서 공정성을 판단하도록 돼 있기 때문에 개별 보도와 논평에 관해서는 실무자가 보고한 대로 방미심위에서 심의하도록 구조가 돼 있다”고 설명했다. 방미통위로선 나름 최선의 대답을 내놓은 셈이었다.
그러나 대통령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럼 그쪽 해당된 부분 가서 얘기하자”고 한 뒤 자료를 살피며 방송광고 등에 대한 질문을 이어가던 이 대통령은 “방심위 업무보고 자료가 없다”며 다시 화제를 이쪽으로 돌렸다. 류신환 대행이 “방미심위는 같은 법에서 규율하고 있긴 하지만 별도 조직이고, 지금 위원 구성이 안 돼 있다”고 하자 대통령은 “상근 직원들이 있을 것이고 어딘가 지휘를 할텐데 지휘라인이 어떻게 되나. 독립기관인가”라고 다시 물었다.
대통령이 방미통위와 방미심위의 업무, 조직 성격 등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하고 있음이 분명해진 대목이다. 방미통위(방통위)와 방미심위(방심위)는 이름이 비슷하고 합의제 기구란 유사점 때문에 일반 국민도 자주 헷갈리고, 그래서 한상혁 위원장 시절인 2020년 당시 방통위가 <‘방통위’와 ‘방심위’ 정확히 알려드립니다>란 제목으로 자세하게 비교표까지 첨부해 보도참고자료를 배포한 일도 있었다. 해당 자료에도 나와 있듯이 방통위는 대통령 직속 중앙행정기관이고, 방심위는 ‘민간독립기구’다. 방심위를 실질적인 행정기관으로 본 헌법재판소 판단이 있었지만, 형식상으론 어디까지나 민간 독립기구이기 때문에 위원도 대통령이 임명하는 게 아니라 ‘위촉’하며, 직원들도 물론 공무원이 아니다.
방미심위가 방미통위 지휘·통제 받는다?
10월1일 시행된 방미통위 설치법에서 방미심위 위원장 1인만 정무직 공무원으로 임명하도록 바꿨지만, 조직의 위상이나 성격은 그대로 뒀다. 김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방미심위 위원장을 인사청문회와 국회 탄핵소추 대상이 되는 정무직 공무원으로 보하는 것은 “심의 기능의 민주성과 책임성을 강화”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제2의 류희림’을 막기 위한 견제 수단으로서 불가피하다는 것이었다. 위원장이 공무원 신분이 되면 가뜩이나 국가 검열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방미심위가 ‘정부기구’화 될 것이란 비판과 우려가 있었지만 방미심위 구성원들이 이를 수긍한 것도 ‘견제’ 필요성에 공감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날 대통령 업무보고를 기점으로 향후 방미심위는 형식적으로나마 독립기구의 위상 유지를 장담할 수 없게 됐다. 이 대통령은 이날 “(방미심위도) 업무보고를 해야 할 것 아닌가. 대통령 지휘를 받는 곳 아니냐”고 했고, 류신환 대행은 더 반박하지 못하며 “지금 법 개정으로 새로 출범하면서는 그렇게 될 것 같다”고 답했다.
여기에 이규연 수석까지 나서서 방미심위는 “방미통위에서 지휘하는 게 맞”다면서 방미통위가 방미심위의 ‘상급’ 기관이라고 인정해 버렸다. 그러나 이 또한 사실이 아니다. 방미심위는 방미통위 산하 기관이 아니라 공영방송 KBS, EBS 등과 함께 유관기관으로 분류된다. 당연히 상하 관계로 묶일 수도 없다. 과거 ‘이동관 방통위’가 ‘류희림 방심위’와 이른바 ‘가짜뉴스 대응’을 한다며 뉴스타파 등 비판 언론 탄압에 한 몸처럼 움직일 때도 최소한 ‘협조’, ‘협력’이란 명분을 내세웠지 방통위가 방심위를 직접 지휘하는 형식은 아니었다. 만일 홍보소통수석의 말처럼 방미심위가 방미통위의 ‘지휘·통제’를 받는다면 방미심위가 실질적인 국가 검열 기구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게 된다.
이날 대통령이 보여준 방미통위와 방미심위, 그리고 방송 보도에 대한 인식은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해온 ‘허위조작정보 근절법’ 처리와 맞물려 주목할 만하다. 김종철 방미통위 위원장 후보자, 그리고 아직 지명도 되지 않은 방미심위 위원장 후보자는 향후 인사청문 등의 과정에서 대통령의 ‘방송 정상화’ 요구와 법에 명시된 방미통위·방미심위, 그리고 방송의 독립성 보장에 대해 어떤 대답을 내놓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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