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6월 한 법원 관계자의 제보가 있었습니다. 지난해 여름 제주지법 부장판사 3명이 근무시간에 술을 마신 것도 모자라 노래방에서 음주난동을 벌였다는 내용입니다. 처음에는 제보 내용을 선뜻 믿기 어려웠습니다. 설마 판사들이 이런 행동을 했을까 싶었던 겁니다. 하지만 수개월 취재 과정에서 실체가 점점 드러나면서 ‘설마가 현실’이 됐습니다. ‘법복의 권위’가 깨지는 순간이었습니다. 평소 밤늦게까지 재판기록을 검토하고 판결문을 쓰느라 고생하던 판사들만 봐와서 그런지 충격적이었습니다. 한 사람의 인생을 좌지우지할 정도로 판결의 힘은 큽니다. 이런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판사들의 비위는 가볍게 볼 사안이 아닙니다. 하지만 사법부의 조처는 징계가 아닌 ‘법원장 훈계’가 전부였습니다. 더욱이 이들 판사는 제주대 로스쿨 강의 중 욕설하거나 유흥주점 접대 사법거래 의혹, 배석판사와의 합의 없이 즉일 선고하는 등 불법재판 의혹을 받고 있습니다. 각종 의혹에도 대법원 윤리감사관실은 형식적인 조사에 그쳤습니다.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는 판사에 대한 내부 자정작용이 작동하고 있지 않은 겁니다. 판사 개인이 헌법기관이라는 이유로, 사법부의 독립이라는 이유로 법원은 ‘성역화’ 된 채 우리 사회에 자리 잡았습니다. 독립된 권력과 견제 받지 않은 권력은 동의어가 아닙니다. 헌법의 사법부 독립은 법관 독립이 아닌 재판 독립을 뜻합니다. 견제 받지 않은 권력은 부패하기 마련입니다. 사법부의 성찰이 이뤄지고 견제 장치가 마련돼 법복의 권위가 다시 바로서길 바랍니다.
고상현 제주CBS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Copyright @2004 한국기자협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