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3일 내란 사태 1년을 맞아, 언론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당일의 기억을 환기하고 여러 시민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기획 보도를 수행했다.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당일의 긴급한 상황을 확인하고 여전히 남아 있는 내란 청산의 과제를 탐색하기도 했으며, 당일 국회 앞으로 달려온 여러 시민을 인터뷰하고, 당일의 현장 사진과 아카이브 소개, 1년만에 다시 모인 시민대행진 소식 등 다채로운 기획과 현장 보도가 이어졌다. 여러 인터뷰를 통해 시민들이 가진 민주주의에 대한 희망과 요구를 볼 수 있었다. 1년 전부터 지금까지 여러 목소리로 울려 제기됐던 수많은 과제를 어떻게 사회적 공론장에 올릴 것인가는 우리 언론의 책임이라고 할 수 있다.
거의 6개월간 매주 진행된 내란 세력 척결과 탄핵을 요구하는 광장의 목소리를 요약하면 “이거저거 다 요구하고 여기저기에 다 연대한다”는 것이라는 농담이 있었다. 광장은 우리 사회에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현현되고, 법과 제도가 외면해 버린 취약성을 가시화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우리가 먹고 마시고 살아가는 일에 어떻게 서로 연결되어 있는가를 확인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노동과 소수자에 대한 보도의 방향과 의제 설정 방식이 바뀌어야 함을 절감하게 하는 공간이기도 했다. 실제 탄핵 광장 이후 상당수의 청년들이 노동조합 활동과 민주노총에 대한 인식을 바꾸었다는 연구도 있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여전히 노동 관련 보도는 을과 을의 갈등을 유도하는 모양새다. 혹은 어떤 노동은 의제화하지 않는다. 쿠팡 새벽 배송을 둘러싼 논쟁은 갑자기 가족을 책임지는 주부 혹은 생계가 절박한 노동자와 정규직이 다수인 노동조합 간 갈등인 것처럼 보도되고, 정당간 정쟁 프레임 속에서 노동자의 이해관계는 주목되지 못한다. 세종호텔 해고 노동자는 고공 농성을 지속하고 있어 아직 땅을 밟지 못했고 수많은 일터에서 일방적 대량 해고가 진행되고 있으나 이에 대한 심층적인 보도는 적은 편이다. 이주노동자들의 불안정하고 안전하지 않은 노동 현장 역시 주류 언론에 의해 가시화되지 못하고 있다.
성평등 민주주의와 관련된 의제 역시 흐려지는 것처럼 보인다. 성별 임금 격차 문제나 차별금지법 제정 등 광장에서 수차례 언급된 성평등 의제 자체가 현재의 제도권 정치에서 주요 관심사가 아니다 보니 언론에서도 이를 조명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슬기 기자는 그의 책 <우리는 우리가 놀랍지 않다>에서 여성 유권자들의 목소리가 유구한 가부장제적 프레임 속에서 어떻게 지워지고 있는가를 상세하게 보여주었다. 갑자기 나타나 놀람과 경이의 대상이 된 것이 아니라, 일상적 혐오에 저항해 온 여성 유권자들의 존재와 그들이 제기한 의제를 주목할 것을 요구하는 책이다. 그 외에도 다양한 광장의 목소리를 주목하는 연구서가 다수 출판됐으나, 언론이 이러한 의제와 목소리를 키워가도록 시민의 관심을 환기하고 토론을 위한 공론장을 열었는지에 대한 평가에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언론이 여성과 소수자 의제를 다루지 않는 가운데, 성평등 보도를 위해 구축한 다양한 저널리즘 가치나 원칙들 역시 다소 흐려지고 있는 모양새이기도 하다. 단적으로, 최근의 젠더 기반 폭력 관련 보도는 관련 보도 준칙이나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지던 시점보다 더 개선되지 않고 오히려 어떤 점에서는 퇴보한 점도 있다. 젠더와 청년 세대 문제를 고려해 비판적 관점이 필요한 지점, 예컨대 정부 정책과 예산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인공지능(AI) 관련 주제에서도 언론의 비판적 의제화 역시 찾아보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
광장의 목소리들은 당시의 긴박함과 시민들의 열망과 노력을 전달하는 현장 ‘사진’과 배경으로서만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를 어떻게 바꿔가야 하는가에 대한 다양한 견해와 입장이 충돌하면서도 조율되는 현재의 것으로 언론에서 다뤄져야 한다. 언론이 무엇을 물어야 하는지 어떻게 이를 해결해 나갈 수 있는지에 대한 원자료들이 지난 1년간 계속 그 자리에 있었다. 한걸음 혹은 건너뛰어 도약하는 걸음들을 뒷받침하는 사회적 공론화의 책임에 대한 언론의 재인식이 필요하다.
김수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여성학협동과정 부교수의 전체기사 보기
Copyright @2004 한국기자협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