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주인이 되려면

[이슈 인사이드 | 문화] 사지원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

“자니아는 제 연장선입니다. 저는 그를 실제 사람처럼 생각합니다.”


인공지능(AI) 가수 ‘자니아 모네(Xania Monet)’를 만든 시인 텔리샤 존스는 지난달 미국 CBS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자신이 쓴 시를 AI 작곡 플랫폼 수노(Suno)에 입력해 목소리와 멜로디를 입혔다. 가창과 연주를 직접 하지 않았지만 존스는 “진정한 예술가는 나 자신”이라고 강조한다. 음악의 감정과 메시지는 자신의 삶에서 비롯됐고, AI는 그 감정을 소리로 구현하는 도구일 뿐이라는 설명이다.

AI 가수 자니아 모네의 ‘Unfolded’ 앨범.

그렇게 탄생한 ‘How Was I Supposed to Know’는 SNS에서 먼저 입소문이 났고, 결국 미국 빌보드 R&B 디지털 송 세일즈 차트에서 1위를 기록했다. AI 아티스트 최초의 빌보드 1위다. 모네는 데뷔 4개월 만에 스포티파이에서 44곡을 발표했고, SNS 팔로워만 120만명을 넘겼다. 최근엔 약 300만 달러(44억원) 규모의 음반 계약까지 체결했다.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하는 가수보다 더 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다.


AI 가수 하면 ‘사이버 가수 아담’을 떠올리던 기자에겐 꽤 낯선 장면이었다. 그러나 AI는 이미 대중음악의 핵심에 들어와 판을 바꾸고 있다. 프랑스 스트리밍 플랫폼 디저(Deezer)가 8개국 9000명을 상대로 진행한 실험에서 응답자의 97%는 AI와 인간이 만든 노래를 구분하지 못했다. 절반 이상(52%)은 불편함을 느꼈다는 반응이었지만, 이 결과는 감정이 없는 기계가 감정을 다루는 산업을 빠르게 점령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생산 환경은 더욱 급격히 변했다. 프랑스와 독일의 저작권 관리단체 사셈(SACEM)과 게마(GEMA)의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창작자 1만5073명 중 35%가 이미 AI를 활용해 음악을 만든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35세 이하 음악가로 좁히면 그 비율이 51%에 달한다. 국내의 한 작곡가는 기자에게 “AI로 곡을 만든 뒤, 이를 기계에 똑같이 찍어낸다면 AI 활용 사실을 아무도 모를 것”이라며 “현직 작곡가들도 상당 부분 AI를 활용하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귀띔했다.


그렇다고 모두 부정적으로만 볼 일은 아니다. 창작의 장벽은 무너졌다. 악기를 배우지 않아도, 고급 장비가 없어도, 누구나 아티스트가 될 수 있다. 기존 시스템 바깥에 있었던 이들에게 기회가 열리는 시대다.


문제는 책임이다. AI가 학습한 수많은 음악은 결국 누군가의 작업물이다. 그 안에 녹아든 인간의 시간과 기술은 어떻게 보상받을 것인가. 지금 음악 산업이 가장 어려워하는 질문은 결국 저작권이다. 어떤 데이터를 학습했는지, 그 기여도를 어떻게 산정할지, 원저작자의 이익을 어떻게 보호할지 여전히 기준이 모호하다. ‘인간의 개입이 있어야 저작권이 인정된다’는 원칙 아래에서도 인간이 1만큼 기여하고 AI가 99를 만들었을 때 그 경계를 구분하기란 쉽지 않다.


중요한 것은 더 창의적이고 합리적인 기준을 마련하는 일이다. 예를 들어 국내 기업 뉴튠(Neutune)은 AI가 음악을 생성하는 과정에 식별 정보를 삽입해 어떤 곡의 어떤 요소가 얼마나 쓰였는지 추적하는 기술을 연구한다. 문제를 기술이 만들었듯, 해결 역시 기술에서 찾아야 한다는 접근이다.

사지원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

AI 음악 시대의 질문은 단순하지 않다. 이미 청취자의 귀가 기계를 받아들인 시대에 인간의 자리는 어디인가. 기술이 아무리 정교해져도 음악을 통해 전달되는 경험과 책임은 인간에게 남는다. 예술의 주인 자리를 잃지 않기 위해 기준을 세우고 갱신해 가는 일, 그 과정이 AI 시대에도 음악을 음악으로 남게 하는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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