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속 순간의 빛' 쫓아… 어둠 속 누리호 궤적 기록하다

사진기자들, 국내 첫 '야간 발사' 현장 촬영
200초 촬영 위해 1년치 외신사진 등 연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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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 트기 한참 전인 새벽 4시, 황준선 뉴시스 기자는 취재 차량에 시동을 걸었다. 목적지는 전라남도 여수의 작은 섬, 낭도였다. 일반인이 출입할 수 있는 장소 중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 발사대가 가장 잘 보이는 곳을 찾았다. 5시간을 꼬박 달려 목적지에 도착하자마자, 황 기자는 카메라를 들고 ‘더 좋은 스팟’을 찾기 위해 낭도를 샅샅이 탐방했다.

비슷한 시각, 최지환 뉴스핌 기자는 여객선에 몸을 실었다. 남쪽으로 발사하는 누리호의 궤적을 더욱 잘 담기 위해 나로우주센터보다 더 남쪽에 위치한 여수 금어도를 촬영 장소로 선택했기 때문이다. 5시간을 달려 도착한 여수에서, 각종 장비를 실은 차를 배에 싣고는 한 시간여를 더 이동해야 했다. 도착 시각은 오후 2시 30분. 해가 지기 전까지 주어진 3시간 동안 최적의 촬영 장소를 찾고, 테스트 촬영까지 마친 후에야 비로소 숨을 고를 수 있었다.

윤웅 국민일보 기자가 촬영한 사진. 장노출을 활용해 누리호의 궤적과 별의 궤적이 어우러지게 찍었다. 윤 기자는 "별을 뚫고 먼 우주로 뻗어나가는 누리호의 모습이 잘 담긴 것 같아서 마음에 든다"고 했다. /윤웅 제공

해가 진 후에는 어둠 속에서 ‘뻗치기’가 이어졌다. 누리호 4차 발사가 예정된 시각은 11월27일 0시55분. 자정을 훌쩍 넘겨서야 발사가 이루어질 예정이었지만,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현장을 떠날 수가 없었다. 한국에서 로켓을 야간 발사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 때문에 사진 기자들에게는 노출값을 정확히 설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였다.

주변광이 풍부한 낮과 달리, 적절한 노출값을 찾지 못하면 누리호의 모습이 제대로 담기지 않을 확률이 높았다. 윤웅 국민일보 기자는 “로켓의 불빛이 얼마나 밝을지 예상하는 것이 어려웠다”며 “첫 촬영을 앞두고 미국에서 스페이스X를 야간 발사하는 장면을 찾아보면서 공부했다. 해외 반응을 보면 ‘태양이 뜨는 것처럼 밝다’고 하길래 사진이 너무 하얗게 나오지 않게, 로켓 불빛이 잘 보이도록 노출값을 조절하는데 신경을 많이 썼다”고 설명했다.

황준선 뉴시스 기자가 촬영한 <네 번째 누리호, 미지의 우주로>. 연속해서 촬영한 100여 장의 사진을 합성해서 누리호의 이동 경로를 그렸다. 황 기자는 "검은 밤 하늘을 밝히며 직선으로 뻗어나가는 모습이 잘 표현돼 가장 마음에 든다"고 설명했다. /뉴시스

황준선 기자 역시 스페이스X를 촬영한 1년 치 외신 사진을 모아놓고, ‘메타 데이터(촬영 설정값)’를 확인하며 공부했다. 해외 사진작가들이 자신의 SNS에 공유한 촬영법을 참고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근거리에서 스페이스X를 촬영한 외신과는 달리, 국내 기자들의 촬영 장소는 현장과의 거리가 16km가량 떨어져 있었다. 누리호의 궤도 역시 스페이스X와는 다를 터였다. 윤웅 기자는 “현장에 함께 있던 동료 기자들과 1분 전까지 사진이 안 나오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하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발사 카운트다운이 임박하자, 기자들의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로켓이 이륙하는 모습을 촬영하면서도, 장노출 카메라의 셔터를 눌러 누리호의 이동 궤적을 추적했다. 압박감을 극복하고 셔터를 눌렀다는 윤웅 기자는 “일단 찍었다는 사실에 안심이 됐다”며 “결정적인 짧은 순간을 사진에 담아내는 것이 사진 기자의 매력”이라는 소회를 밝혔다.

최지환 뉴스핌 기자가 촬영한 누리호의 모습. 최 기자는 "장노출을 통해 한 장의 사진으로 발사되는 과정을 합성 없이 보여줄 수 있어서 기억에 남는다. 3분정도 짧은 시간이지만 아침 일찍부터 준비한게 보상받는 느낌이었다"는 소회를 밝혔다. /종합뉴스통신사 뉴스핌

‘현장을 기록해야 한다’는 책임감 만큼 “실패하면 안 된다”는 부담감도 있었다. 최지환 기자는 “미적인 부분만을 생각했다면 더 과감한 촬영을 시도했을 텐데, 저희는 현장을 기록해야 하므로 조금 더 안전한 세팅 값으로 촬영을 했다. 그러다 보니 누리호의 전체 궤적을 담지는 못하고 200초 정도의 궤적만 담을 수 있었는데, 다음에는 더 잘 찍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한 줄의 기사 제목이 독자에겐 ‘위로’가

이처럼 기자들이 포착하려 했던 ‘순간의 빛’이 독자에게는 또 다른 의미로 다가서기도 한다. 2021년 10월21일, 1차 시험발사가 이뤄진 누리호의 모습을 담은 홍해인 연합뉴스 기자의 사진 기사가 그 예다. 보도된 지 4년이 넘었음에도, 이 기사가 주목받는 건 다름 아닌 기사의 제목 때문이다.

홍해인 연합뉴스 기자가 2021년 10월21일 보도한 <무한 우주에 순간의 빛일지라도. 기사. 누리호 발사가 이뤄질 때면 다시금 기자를 찾는 독자들이 600개 넘는 댓글을 남겼다. /연합뉴스

<무한 우주에 순간의 빛일지라도>, 짧은 제목으로 독자에게 큰 여운을 남긴 이 기사에는 누리호 4차 발사가 이뤄진 11월27일에도 새로운 댓글이 달렸다. ‘순간의 빛들이 한데 모여 큰 빛이 될 거예요’, ‘실패에 좌절하지 않고 계속 일어날 힘을 얻고 갑니다. 오늘의 누리가 성공했듯 나도 언젠가 박수칠 날이 오기를’ 등 응원과 소망이 담긴 독자들의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정작 홍해인 기자는 기사 제목이 이렇게 큰 반응을 얻을지 몰랐다. 사진 촬영을 하고, 근처 항구에 주차해둔 취재 차량에서 기사를 마감하다 불현듯 떠오른 문구였다. 현장을 빠르게 보도해야 하는 통신사 사진 기자였던 탓에, 누리호의 1차 발사가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그저 ‘성공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아 제목을 쓰고는 기사를 송고했다.

홍 기자는 이 기사가 큰 반응을 얻은 이유를 두고 “희망이 담겨있기 때문”이라고 추측했다. “사실 1차 발사는 기술적으로는 실패했지만, 이를 지켜보는 시민들은 모두 ‘잘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거잖아요. 성공과 실패를 단정 짓기보다는 시민들과 같은 희망이 담겨있어서 좋아한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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