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히지 않게, 반복되지 않게… 실록 쓰듯 비상계엄 기록

주요 증언·주장, 한눈에 보듯 정리
시민이 주인공인 영상 100편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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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지 않게 남겨야 했다.” “잊혀선 안 될 거 같았다.” 집요하고 묵묵하게 12·3 비상계엄 사태를 기록한 언론인들은 같은 마음가짐이었다. 비상계엄 이후 쉼 없이 이어진 사건 속에서 어느덧 1년이 지났다. 각자의 자리에서 기자와 PD들은 그 1년을 기록했다. 시간은 흘렀지만, 이들의 기록물은 비상계엄을 또렷이 상기시키고, 놓쳤던 사실들을 새롭게 드러낸다. 방대한 기록을 만들어내고 있는 이들의 작업 과정을 들여다본다.

◇계엄 막아낸 주역, 시민들을 기록하다
계엄 사태가 있고 2주 정도 흐른 시점이었다. ‘계엄 관련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려고 한다’ ‘1년 간 구술 기록을 끌고 가보려고 하는데 같이 할 사람을 구하고 있다’는 유종훈 KBS PD의 소식을 듣고 윤선영·김미래 PD가 합류했다. 이들은 계엄의 밤, 국회로 달려간 시민 100여명의 증언을 차근차근 모아갔다. 참여 제보를 받고, 일일이 수소문도 했다. 스튜디오에서 시민 한 명 한 명을 인터뷰한 영상을 유튜브 채널 <12·3 비상계엄 증언 채록 프로젝트-그날 그곳에 있었습니다>(그날그곳)에 거의 매일 올렸다. 시민이 주인공인 영상 100여편이 차곡차곡 쌓였다.


하룻밤 사이 국회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일어난 일인데도 참 다양한 이야기가 나왔다. 시간대별로, 국회 안팎 각 위치마다 다른 증언들이 쏟아졌다. 계엄을 맞닥뜨린 시민들이 느낀 두려움이 생생하게 전해지고, 이들이 목격한 ‘2차, 3차 계엄 의심’과 같이 조사가 더 필요해 보이는 정황들도 속속 나타났다. 시민들을 만나며 PD 자신도 그날 밤 국회에서 본 게 일부분일 뿐이었다는 걸 새삼 느낀다.


김미래 PD는 “그날 밤을 대충 다 안다고 생각했다. 프로젝트 중반까지도 새로운 얘기가 나올까 싶었는데 매번 새로운 지점들이 나왔다”며 “경험이 상반된 게 많다. ‘군경의 태도가 소극적이었다’라고 말씀하시는 분들, 반대로 ‘내가 겪은 건 그렇지 않았다’는 분들도 있다. 그래서 더 여러 명을 인터뷰해야겠구나, 그 기억들을 종합하면 조금 더 진실에 가깝게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고 말했다.


탐탁지 않아 하는 회사의 시선 속 정식 팀으로 인정받지 못한 채 기록을 이어나갔다. 돌아보면 “멈추지 않아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1년 장기 기획에 부담감은 없었는지 물으니 윤선영 PD는 “그런 것보다 누가 와서 ‘이걸 왜 하냐’, ‘당장 그만둬라’ 말하지 않을까 싶어 하루하루 걱정하며 살았다”고 했다. 그는 “5·18에 대한 증언 채록이 아직도 이뤄지고 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이 작업을 아무도 하지 않을까봐 걱정됐는데 저희가 할 수 있어서, 멈추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계엄 1년을 맞는 3일엔 지금까지의 영상을 한데 모아 재구성한 다큐멘터리가 TV로 방영된다. 그날그곳 어느 영상에 ‘12월3일 KBS는 이 시리즈를 하루 종일 틀어라!’라고 댓글을 달았던 한 시민의 바람이 조금은 이뤄지게 됐다. 윤 PD는 “간간이 유튜브를 보며 응원해 주셨던 분들이 TV를 보고 반가워하셨으면 좋겠다”며 “계엄 극복까지 일련의 성과, 결실에 대한 선물로 느끼셨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뉴스민 기자들은 1년간 대구·경북 시민들의 목소리가 계속 기억되도록 노력했다. 계엄 선포 직후부터 윤석열이 파면되기까지 123일간 지역에서 광장을 지킨 시민 30여명이 겪은 일상의 변화와 생각을 기록한 <민주주의자들>이 먼저 나왔다. 이어진 대선 정국, 기자들은 그 때 광장에서 만났던 시민들을 다시 찾아 나섰다. 그렇게 대구·경북 지역 시민 41명을 심층 인터뷰한 <광장: TK리부트>가 탄생했다.


이번 계엄 사태에선 대구·경북 시민들의 목소리를 기록하는 게 특히 중요하다고 봤다. 이상원 뉴스민 편집국장은 “광장에 나온 시민 대부분은 정치권력에 비판적 의식 없이 무한한 신뢰를 보내준 지역이 대구·경북이라는 원죄 의식이 있었다. 지역 언론으로서 같은 책임이 있다는 생각도 했다”며 “무엇보다 광장에서 나왔던 사회 대개혁에 대한 이야기가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어야 정치권력이 무시하지 못할 거라고 봤다. 이 사태가 반복되지 않도록, 제대로 변화하려면 우리 지역 시민들이 지적하는 문제들을 구체적으로 파악해야 했다”고 말했다.


기자들도 시민들을 만나며 새로운 지점을 발견했다. 이 국장은 “박정희 시절을 제대로 청산하지 못하고 지금까지 내려온 것에서부터 원인이 있지 않겠냐는 분석을 많은 분들이 하셨다”며 “연령대별로 배분해 만났는데도 모든 연령대에서 그 이야기가 공통적으로 나와 놀랍기도 했다”고 말했다.


TK리부트는 원래 심층 인터뷰를 토대로 공통된 목소리를 엮은 7개 꼭지의 기획 기사로 계획됐다. 기획 기사 외 시민 개별 인터뷰 40여편이 연재된 건 오로지 기자들의 의지 때문이었다. 시민 목소리 하나하나가 소중했던 기자들은 기사에 담기지 못한 이들의 이야기가 아까웠다. 편집국장 포함 기자 4명, PD 1명뿐인 얼마 되지 않은 회사의 인력 사정을 감안해 애초의 기획만 생각했던 이 국장은 당시 기자들에게 “너희들이 선택한 거니 너희들이 책임져라”라고 했지만, 시민들의 뜨거운 반응을 보면 꼼꼼히 기록하기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 국장은 “인터뷰 당사자들이 관심을 정말 많이 가졌다. 광장을 계기로 생긴 커뮤니티에 ‘뉴스민 인터뷰하러 간다’고 알리고, 개인 SNS 계정으로 기사 홍보도 하는 모습을 보며 이 기록이 참 의미 있구나, 이들의 어떤 목마름도 느꼈다”고 돌아봤다.

◇1년치 타임라인에 새긴 ‘쿠데타의 재구성’
시사IN의 <쿠데타의 재구성>은 일종의 “계엄 사태 연표”다.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계엄 선포 이후 시간들을 톺아보고 싶다면 이 기록물을 보면 된다. 시사IN 기자들은 지난해 12월 계엄 사태 직후부터 지금까지 수사·재판 상황을 비롯해 대통령실, 국회, 검찰, 경찰, 법원 등 주요 기관별 소식, 주요 증언과 내란 혐의자의 주장 등을 선별해 시간 순으로 정리하고 있다.


변진경 시사IN 편집국장은 계엄 사태 초반부터 이 연혁 작업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변 국장은 “역사서 부록에 있는 연혁, 사전과 같이 찾아볼 수 있는 기록을 떠올렸다”며 “중요한 사건들이 흘러가 버리는 게 많았다. 단독, 속보와는 별개로 인쇄 매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어떻게 차별화하고, 기록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는 방식이 무엇일지 고민도 있었다”고 말했다.


윤석열 파면 전까지는 매주 기자 한 명씩 전담해 타임라인을 업데이트했고, 지금도 주요 기점마다 2~3주 간격으로 결과물이 나오고 있다. 처음 기획 당시만 해도 헌법재판소 파면 선고를 끝으로 연재를 종결하려 했으나, 내란 재판 과정에서 윤석열의 궤변, 극우의 출몰 등 “내란의 잔불”은 여전해 ‘시즌2’로 작업이 이어졌다. 표로만 A4용지 30페이지 분량의 방대한 자료가 축적됐다.


쿠데타의 재구성은 시사IN의 ‘윤석열 탄핵 특별호’, 단행본 <다시 만난 민주주의>의 별책 부록으로도 실렸다. “정기 구독 독자 배송분 외에 온라인 선판매가 2시간 만에 품절”될 정도로 독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변 국장은 “대학생들이 이걸로 공부한다는 피드백을 받았다. 이 기록은 지금도 쓸모가 있을 것이고 지나면 더 쓸모가 있을 거라고 본다”며 “중간중간 우리가 자주 꺼내봐야 되는 역사인데, 그 기능을 할 수 있어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내란의 부역자’ 끝까지 추적하는 기자들
오마이뉴스 <12·7 탄핵박제 105인> 시리즈는 지난해 12월9일부터 현재(1일 기준) 98화까지 이어진 끈질긴 기록물이다. 제목대로 이 시리즈는 105화가 마지막이다. 지난해 12월7일 대통령 탄핵안 첫 표결을 무산시켜 공분을 일으킨 국민의힘 의원 105명의 행적과 면면을 기록하는 시리즈다.


“1년 후에는 다 찍어준다”는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의 발언이 이 프로젝트의 도화선이 됐다. 당시 경제기획부에서 같이 일하며 “우리는 뭘 할 수 있을까” 고민했던 김종철·이경태·이정환·이주연 기자는 마침 이 발언을 접하며 할 일을 정했다. “국민들이 다 잊고 찍어줄 거라 생각했다면, 잊지 못하게 우리는 열심히 기록을 하면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의원 이름 가다나 순으로 연재되는 기사는 이들의 최근 행보, 계엄 관련 발언들, 계엄 이후 정치적 선택, 프로필 등으로 구성돼 있다. 틈틈이 이들의 행적을 업데이트하는 ‘리마인드 파일’을 토대로 기자들 각자 일주일에 한 편씩 돌아가며 쓴다. 최대한 감정적으로 다루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주자는 방향성으로 기사를 작성한다. 직접적인 항의는 아직 없었지만, 타깃이 된 의원들이 볼멘소리 한다는 얘기를 전해 듣긴 했다. ‘그래도 없는 말은 안 썼더라’는 당사자의 피드백도 받았다.


연재한 지 1년 가까이 지난 지금, 하기 잘했다는 생각이 계속 든다. 이주연 기자는 “12월7일 한 번에 머무르는 게 아니라 그 이후에도 이 정치인들은 계속 어떤 선택을 하고 있다. 대통령 관저 앞에 갔는지, 3·1절 극우 집회에 갔는지 등 이들의 선택을 하나하나 남겨뒀다”며 “105인을 다 쓰게 되면 이들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최종판’도 만들려고 한다”고 말했다.

비상계엄으로 시끄러웠던 곳은 대통령실, 국회, 법원, 군뿐만이 아니었다. 고경태 한겨레 기자가 7월부터 연재하고 있는 <ㄷㄷㄷ, 인권위 그날>은 국가인권위원회를 중심으로 계엄 사태를 새롭게 들여다 보는 기사다. “국가인권위 사망의 날” “출범 이후 가장 치욕적인 결정”이라 불리는 그날, 2월10일 ‘계엄 선포로 야기된 국가적 위기 극복 대책 권고의 건’ 의결을 둘러싼 과정을 재구성했다. 당시 안건엔 ‘윤석열 등 내란죄 피의자들에 대한 불구속 수사 원칙 준수’, ‘한덕수 탄핵소추 철회 권고’ 등이 담겨 인권위가 계엄을 옹호한다는 국민적 지탄을 받았다.


세 차례 시도 끝에 이 안건이 의결된 배경, 인권위원들의 면면, 안건을 반대했던 한 위원의 변심 과정 등이 기자가 입수한 회의록, 내부망 게시글, 위원 단톡방 등을 통해 생생하게 전해진다. 2월에 있었던 일을 5개월 뒤에 다시 꺼내든 건 새로운 사실을 계속 발견했기 때문이다. 고경태 기자는 “방대한 회의록을 다시 들여다보니 사람마다 갖고 있던 태도, 저항하지 않은 사무처 간부 등 문제로 볼만한 과정이 보였다. 자세히 한번 써볼 필요가 있겠다 싶었다”며 “계엄 이전부터 있었던 인권위원들의 막말, 권위주의 등 인권위가 당면한 근본적 문제도 함께 다루고 있다. 왜 그런 결정을 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인지를 쓰는 것”이라고 말했다.


기록의 이유에 대해 고 기자는 “이야기하지 않으면 사실을 모르고 돌아보기도 힘들어진다”며 “하나부터 열까지 되짚어보면 그동안 관찰하지 못했던 것들이 나온다. 사건을 다시 정확하게 볼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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