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내란… 치열하고 치밀했던 '법조의 시간'

[12.3 비상 계엄 1년] 법조기자들이 전하는 지난 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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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비상계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내란’의 진상은 아직 드러나는 중이다. 헌정을 위협한 ‘쿠데타’에 누가 어떻게 관여했고 무엇을 했는지, 전모를 밝혀내고 온당한 처벌로 마무리할 수 있는지,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엔 거대한 숙제가 남았다. 온 국민의 시선이 서울 여의도(국회)와 안국동(헌법재판소)에 쏠렸던 시기를 지나며 이 남은 과제들은 고스란히 서초동으로 옮겨간 게 현재다.


검찰과 특검, 법원의 쿠데타 수사·내란 재판이 본격화되며 찾아온 ‘법조의 시간’. 한 해 동안 많은 언론이 내란을 기록하고 감춰진 조각을 드러내느라 숨 가빴다. 뜨거웠던 열기가 꺼진 자리에서 묵묵히 제 역할을 해온 중심에 법조기자들이 있다. 민주주의를 위협한 내란 사건의 인물, 증언, 증거, 여러 정황을 가까이서 지켜보며 치열한 시간을 보낸 기자들의 1년을 통해 우리에게 남은 과제를 돌아본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7월5일 내란 특검 2차 조사를 받기 위해 특별검사팀 사무실이 있는 서울 서초구 서울고검에 출석하는 모습을 기자들이 취재하고 있다. /공동취재

◇겨울: 대통령 체포와 함께 사라진 주말
2024년 12월14일 국회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가결했다. 탄핵심판 절차가 시작되며 헌재로 국민 시선이 쏠렸다. 한편에선 내란 관련 인물 수사가 본격화됐다. 현직 대통령이 헌정 사상 처음으로 수사기관에 체포된 게 이때다. 1월15일 그날은 김주영 세계일보 기자가 입사 10년 만에 사회부 법조팀으로 발령 나 서울고등검찰청으로 첫 출근을 한 날이었다.


이날 서초동 기자실에 들어간 그는 “다들 정신이 없어 보인다”고 생각했다. 조간신문에서 ‘오늘 체포영장 집행’이란 내용을 봤지만, 앞서 1차 체포 시도가 실패한 터였다. “속보가 뜨고부턴 자세히 기억이 안 난다. 정신이 없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체포된 윤 전 대통령 조사를 이날 시작했다. 김 기자는 이날 수사 상황을 스케치한 16일자 기사에 “200쪽이 넘는 질문지를 준비한 공수처는 윤 대통령을 상대로 12·3 비상계엄 사전 모의부터 세부 실행까지 전 과정을 캐물었다”, “윤 대통령은 대부분 질문에 진술거부권을 행사했다”고 기록했다.


비상계엄 직후부터 1~2개월은 전례 없는 일투성이였다. 헌정사에 유례없는 사법부에 대한 테러, ‘서부지법 폭동 사태’가 이때 벌어졌다. 수사기관과 언론에서 산발적으로 튀어나오는 내란 관련 사실들은 낯설었다. 지난해 7월부터 검찰을 출입한 이창준 경향신문 기자는 “사건의 기본적인 사실관계도 구성이 잘 안됐을 때”로 당시를 말했다.


‘뻗치기’가 일상이었다. “가장 원초적이지만 확실한 취재 방법이 당사자를 만나는 거지 않나. 하나라도 더 건지려고 애쓰던 때였다.” 내란 관련자 변호사 사무실을 무작정 찾아다녔다. “문 앞에 앉아 있다가 나오면 뭐라도 하나 들으려고 사람들 다 집에 갈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이 기자는 “여기가 안 되면 저기 가고… 주말도 없었다. 집에 오면 자고, 눈뜨면 일하고 그랬던 거 같다”고 했다.

◇봄: 탄핵심판 끝나자마자 장미대선
2023년 4월부터 법조팀에 몸담아 온 오연서 한겨레신문 기자는 3월쯤부터 안국동에서 서초동으로 주된 취재현장이 바뀐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장기간 이어져 온 굵직한 재판을 챙기되 나머지는 궁금한 사건, 취재원을 챙겼던 계엄 전 법원 담당 방식도 달라졌다. 내란 재판은 연일 진행됐다.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법정에 잡혀있는 나날이 이어졌다.


2~3월, 국회에선 내란 혐의 국정조사특위가 가동됐다. 헌법재판관 임명 논란이 벌어지고, 법원의 구속 취소와 검찰의 항고포기로 윤 전 대통령이 석방되기도 했다. 큰 틀에선 헌재의 탄핵심판은 막바지로 향하고 형사재판은 막이 오른 시기였다.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가 1~2월 윤 전 대통령을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기소하고 공소장을 공개했다. 이후 윤석열, 김용현(전 국방부장관), 조지호(경찰청장)에 대한 첫 재판이 열리며 내란 관련자 재판이 잇따랐다.


오 기자는 “주요 사건이라 소법정이 아니라 대법정에서 진행됐는데 확실히 분위기가 더 무겁고 엄숙한 편”이라고 전했다. 이어 “재판 초기, 투입됐던 계엄군들이 법정에서 울먹거리거나 반성한다는 얘길 많이 했다. 특히 윤 전 대통령 면전에서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을 한 군인이 떠오른다”며 “정치부에서 윤 전 대통령 당선 시절을 취재했는데 그때와 피고인석에 앉은 분위기가 달라 생소했다”고 덧붙였다.


4월4일 헌재가 대통령을 파면했고, 정치의 시간이 왔다. 6월4일 새 대통령이 취임했다. 정치권과 법정에서 내란 세력은 궤변을 반복했다. 2022년 8월부터 법조팀에서 일한 여도현 JTBC 기자는 윤 전 대통령이 출석한 내란 재판 현장을 담은 4월22일 보도를 통해 “헌재에서 비상계엄을 정당화하는 이유가 될 수 없다고 판단한 주장들을 반복하면서 헌재에 나온 증인을 다시 형사재판에 부르는 것은 결국 재판을 지연시키고 각종 음모론을 부추기기 위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고 기록했다.

파면 뒤 열린 첫 형사재판에 출석하기 위해 4월14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들어서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차량 탑승 모습. /연합뉴스

◇여름과 가을: 특검과 법원에 쏠린 시선
6월 이후 내란·김건희·순직해병 특검이 출범하며 본격 ‘법조의 시간’이 열렸다. 초유의 ‘3특검’ 가동으로 언론사들은 기존보다 2배가량인 10여명 안팎까지 법조팀 인력을 늘렸다. 특히 내란 특검은 윤 전 대통령에 집중됐던 계엄 수사를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모든 관련자로 확대하며 기자들이 들여다볼 부분도 늘 수밖에 없었다.


여도현 기자는 “이 사안은 저희 팀이 취재를 해왔고 취재원도 저희가 다 갖고 있으니 주말에도 ‘5분 대기’였다. 브리핑은 특검의 입장일 뿐인데 그 말만 쓸 수 없으니 정말 많은 사람을 만났다. 집에 있어도 타사가 뭘 쓴지도 봐야 하니 늘 각성 상태였던 거 같다”며 “올여름이 너무 더워서 밖에서 뻗치는 게 힘들었다. 더위를 먹어서 출근하면 일단 토하고 시작했는데 팀이 다 그랬다. 다들 좀 미쳐 있었다”고 했다.


여 기자는 “‘역사적 소명’ 같은 거창한 말을 별로 안 좋아하는데 이게 내 일기장이 아니지 않나. 취재를 하다 보면 비굴한 순간도 있는데 한 번도 비굴하단 생각은 안 했던 거 같다. 타사에 물을 먹으면 쓰라렸지만 ‘밝혀져 다행이다’ 싶기도 했다. 저들이 무슨 행동을 했는지 너무 알려야 하니까”라고 말했다.


국무위원, 군 관계자, 대통령경호처 인사 등 계엄 관련자들이 속속 특검 수사를 받으며 기자들은 더 분주해졌다. 그간 미진했던 노상원에 대해 7~8월 소환조사를 했던 즈음 이창준 기자는 힘들었던 주간이 기억난다. 노씨와 친하게 지냈거나 동업을 했다는 무속인을 만나러 전북 군산, 경기 안산에 다녀왔고, 노씨 변호인 사무실에 갔다가 박대를 당했다. “장기적으로 하다 보니 좀 지쳤었다. 성과 없이 터덜터덜 집에 가는데 선배가 연락망을 통해 ‘오늘 창준씨 정말 고생했네요’ 하는데 눈물이 찔끔 났다.”


이런 비효율적인 과정은 특종이 아니더라도 좀 다른 기사를 만든다. 9월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 피의자 신분으로 서초구 서울고검에 출석한 박성재 전 법무부장관은 1층 현관 출입이 협의되며 취재진이 포토라인도 만들었지만 돌연 지하 주차장을 통해 나타났다가 ‘혹시나’ 대기하던 이 기자와 마주쳤다. 이 기자는 ‘계엄 당시 합동수사 본부에 검사 파견을 지시했나’, ‘수용 공간 확보 지시를 내렸나’ 등 질문에 박 전 장관이 “당신들에게 이야기해야 할 내용인가”, “어디에서 무슨 근거를 갖고 하는 소리냐” 등 반응을 보이며 답하지 않았다고 이날 기록했다.

◇다시 겨울: 내란의 결말 기록 중인 기자들
특검 출범 후 상당 시일이 흐르며 시선은 재판부를 향하고 있다. 큰 틀의 쟁점은 정해졌고 각론을 두고 다투는 ‘고지전’의 형국, 덩달아 법원 출입 기자들이 바빠진 시기다. 11월 셋째 주에도 오연서 기자는 여전히 법정에 잡혀있었다. 17일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이 별건으로 기소된 개인정보보호법 사건 결심이 있었다. 내란 사건 관련 첫 구형이 이뤄진 재판이었다. 이날 최상목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증인으로 출석한 한덕수 전 국무총리 재판도 열렸다.


18일엔 윤 전 대통령의 체포방해, 비화폰 삭제와 관련한 특수공무집행방해, 직권남용권리행사 방해 등 혐의 속행 공판이 있었다. 19일엔 김건희 재판과 더불어 윤석열,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이 증인으로 출석한 한 전 총리 재판이 이어졌다.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 변호인이 소동을 피워 초유의 감치 사태가 나온 그 재판이다. 20일엔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이 증인으로 출석한 윤석열 재판까지, 한 주가 이렇게 지나갔다.


오 기자는 “내란 관련 본안 사건인 윤석열, 김용현, 조지호 이 세 사건이 결국 12월 말에 병합되는 수순이고 그러려면 비슷한 속도로 재판이 진행돼야 하는데 김용현 재판이 너무 더뎌 일정이 지켜질지 관건”이라며 “1년간 자신의 지시를 받고 행동한 군과 경찰의 이야기가 나왔고 재판까지 받았는데 윤석열이 최후 진술 등에서 어떤 말을 할지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모든 팩트와 진술이 모이는 재판정에선 충격적 팩트가 여전히 나오고 있다. 10월13일 내란 특검은 계엄 당시 국무회의 장면을 담은 대통령실 CCTV 영상을 공개했는데 ‘몰랐거나 말렸다’는 국무위원들이 주장과는 거리 있는 모습이 나오며 파장이 일었다. 여도현 기자는 “군인들이 뭔가를 함으로써 가담한 거라면 국무위원들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음으로써 가담했다는 걸 보여준 측면이 있지 않나 싶다. 대통령을 견제하는 자리인데 국무위원 중 누가 봐도 책임 있는 행동을 보인 위원이 없었다. 일어나 나간 사람도 하나 없지 않았나”라고 했다.


그러면서 “법원이 무죄라고 해도 검찰이 혐의 적용을 한 부분에 무죄를 판단한 거지 그 공무원적 태도가 옳다는 건 아니다. 국민에게 사과도 하지 않았다. 처벌을 피하려 직무를 망각했던 순간에 대해 그들이 어떤 태도로 말하고 있는지 우리가 주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내란의 종식, 심판의 시간
계엄으로 한 때 정부·여당 주요 인사들이 내란 관련자로 수사와 재판을 받고 있다. 추경호 전 국민의힘 원내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국회에서 최근 가결됐다. 한덕수 전 국무총리 선고일은 내년 1월21일로 잡혔다. 민주공화국의 ‘사후’ 과제란 측면을 떠나 이는 사회와 수많은 개인의 상흔이고 여기 ‘해피엔딩’은 없다.


2021~2023년, 정치부에서 국민의힘을 담당하며 윤 전 대통령 후보 시절부터 취재하다 올해 사회부에서 그들을 마주한 김주영 기자는 “윤석열의 시작과 끝을 다 옆에서 보고” 있는 상황의 헛헛함을 전했다. “집권 여당이 됐을 때 누가 어떻게 행동하고 권한을 많이 가졌는지를 주로 취재했는데 지금은 그런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나라의 비극이지 않나. 착잡하다.”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로 기소된 군인들의 얼굴을 한 번씩은 거의 본” 이창준 기자는 특검에 조사를 받으러 온 한 장성을 떠올렸다. “자신이 온 걸 기자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아서인지 마스크랑 모자를 쓰고 왔는데 들통이 난 모양새였다. 점심시간, 변호인이 혼자 나오길래 물어보니 그냥 안에, 화장실에 있겠다고 했다더라. 한순간의 판단이었다. 그걸 잘하라고 별을 달아준 거고 책임을 져야겠지만 직접 봤을 땐 인간적 안타까움도 들었다. 일부의 욕심으로 많은 인생이 망가졌다.”


‘내란’에 대한 민주공화국의 온당한 마무리가 될 심판의 시간이 다가오는 시점이다. ‘태생 자체가 정권의 의중을 반영할 수밖에 없는 정치검찰로서 특검의 행보’, ‘강압 수사 논란과 여전히 잔재한 수많은 의혹’, ‘사법부의 신뢰와 관련한 우려’ 등 논란은 언론의 남은 역할과도 관련이 있다.


여도현 기자는 “계엄 초기 취재를 하다 보면 판례 자체가 드물다 보니 법조인들조차 생소해했다. 법률가가 계엄을 선포하며 1년간 자기방어를 위해 여러 논리를 댔는데 앞으로 여러 선례가 만들어진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정치권이나 외부에서 계엄을 자기 장사로 활용한 경우가 너무 많았다. 언론 역할은 여기까지가 논의의 선이라 제시하고, 국민의 판단을 위해 많은 걸 취재해 선택지를 주는 것이란 소명의식을 실감한 한 해였다”고 했다.


지난 1년, 법조기자들에게 ‘역사를 기록한다’는 말은 구호가 아니었다. 책에서 본 일이 현실이 된 사건은 기자들 사이에서 ‘계엄 도파민’, ‘기자 뽕’이란 우스갯소리가 나올 만큼 각성제였다. 오연서 기자는 “이제 선고가 줄줄이 날 텐데 법조기자 역할이 더 중요해지지 않을까 싶다. 계엄과 탄핵 현장의 기록이 그 자체로 역사라면, 지금은 그런 생생함을 담을 수 있는 곳은 아니지만 이 일을 평가하고, 설명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큰 역할로서 벅차게 다가온다”고 했다.


김주영 기자는 “지난 1년,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게 큰 강물에 떠밀려온 느낌이다. 역사의 강물이 빠르게 흘러가는 상황 속에서 붙잡아야 할 뭔가가 있는지, 중요한 순간을 잘 캐치하는 게 언론이 할 일이라 생각한다.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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