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우리는 함께 기록해야 한다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2024년 12월3일 밤 10시27분, 그자의 입에서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는 말이 튀어나왔다. 온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반국가’, ‘척결’ 같은 폭압적 언사를 쏟아내고는 ‘자유’와 ‘헌정’을 들먹이며 ‘비상계엄 선포’로 국가를 농단하고 헌정을 유린했다. 내란의 시작이었다. 한 문장 안에서 앞뒤가 따로 노는 ‘아이러니’는 역설적으로 1년이 지난 지금의 현실과 너무도 닮았다.


그날 밤, 눈과 귀를 의심하던 시민들이 경악과 공포 속에서도 국회로 모여들었다. 국회의원들은 계엄군의 저지를 뚫고 담을 넘어 본청에 들어갔고 언론인들도 현장을 지키며 병력 배치와 계엄군의 동선을 꼼꼼히 기록했다. 덕분에 비상계엄은 선포 6시간 만에 ‘기적적’으로 해제됐지만, 후과는 엄청났다. 국민의 분열과 사회의 혼란 속에서 정권이 교체된 지금까지도 대한민국은 내란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자는 국회가 탄핵소추안을 의결한 뒤에도 ‘침대 축구’식 지연 전술을 이어가며 수사기관의 출석 요구를 거부했다. 가까스로 체포와 구속기소가 이뤄졌지만, 재판부가 납득하기 어려운 논리로 석방해 사법 불신을 키웠다. 헌법재판소가 탄핵심판에서 파면 결정을 내리며 사태가 일단락되는 듯했지만, 그 직후 대법원이 유력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해 선거판에 개입하려 한다는 비판을 자초했다. 내란 수괴 혐의를 받는 당사자의 재판 역시 그자를 풀어줬던 재판부에 계속 맡겨진 데다, 그자는 잦은 불출석으로 심리를 지연시키며 사법 시스템을 사실상 조롱해 왔다. 연내 단죄는 요원해졌다.


그자와 더불어 내란을 기도하거나 방조한 세력들의 태도는 더욱 심각하다.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거나 은폐하는 데 급급하고 제대로 된 사죄와 성찰은 찾아보기 어렵다. 입을 열 때마다 사실관계를 왜곡하고 책임을 회피하지만, 일부 매체는 이들의 주장을 검증 없이 받아쓰며 확성기 역할을 했다.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을 묻기 위해 진행 중인 재판에선 핵심 증인들이 선서를 거부하고 변호인들은 법정을 소란과 모독의 장으로 삼으며 사법부를 조롱했다.


계엄 선포 당시 집권 여당이던 국민의힘의 행태도 다를 바 없었다. 계엄 사태 직후 잘못을 지적하는 듯하더니 탄핵이 추진되자 ‘질서 있는 퇴진’을 내세우며 억지로 사태를 봉합하려 했다. 탄핵심판이 진행되는 동안엔 계엄 옹호로 돌아섰고 탄핵 이후에는 재판 결과를 보고 판단하자며 태도를 바꿨다. 당 지도부는 내란 사태에 정치적·도덕적 책임을 지는 대신, 오히려 당사자를 면회하고 부정선거론 세력과 연대하며 ‘내란몰이’라는 궤변으로 여론을 호도했다.


이 모든 일이 불과 1년도 채 되지 않아 벌어졌다. 그날 밤 던져진 내란의 불씨는 사그라들기는커녕 곳곳에 기름을 부은 듯 대한민국 사회 전반으로 번져 나가고 있다. 내란 연루 세력들이 단죄되지 않은 채 오히려 목소리를 높이는 현실은 12·3 사태가 완료형이 아니라 여전히 진행형임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먼저 책임자 처벌이 이뤄져야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과제는 이런 시도가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방지하는 일이다.


출발점은 역사적 사실을 정확히 기록하는 작업이다. 역사의 기록은 기억하려는 자와 망각하거나 기억을 왜곡하려는 자가 벌이는 치열한 투쟁의 산물이다. 내란을 둘러싼 오늘의 현실이 꼭 그러하다. 시인의 생존 증명이 시이듯 기자의 생존 증명은 기사일 수밖에 없다. 기자라면 마땅히 ‘기록하는 자’라는 기본적인 호명에 충실해야 한다. 언제까지 용기 있는 일부 기자들에게만 기대어 이 짐을 떠안게 할 수는 없다. 내란의 기억을 둘러싼 싸움에서 언론은 더 이상 방관자나 조력자가 아니라 책임 있는 기록자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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