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도 더 전에 모 국회의원의 정치후원금 회계보고서를 정보공개청구한 적이 있다. 수수료를 내니 선관위가 개인정보 등을 지우고 스캔한 PDF 파일을 공개했다. 파일을 열어보니 이상한 것들이 눈에 띄었다. 주유소에서 이틀에 한 번꼴로 기름을 넣는 데다, 특정 주유소에서 한 번에 50만원, 100만원씩 결제하기도 했다. Ctrl+F를 눌러 ‘주유소’에서만 얼마나 썼는지 확인하고 싶었지만 불가능했다. PDF 파일이 글자 검색이 안 되는 이미지 스캔이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100장이 넘는 보고서를 종이로 인쇄해 포스트잇을 붙여가며 체크한 후 엑셀에 수기 입력하는 방법으로 분석을 마쳤다. 분석 결과는 신문 기사로도 나왔고, 해당 문제는 인사청문회에서 다뤄지기도 했다. 꽤 재미있는 작업이었지만, 전체 국회의원으로 확대해 볼 엄두는 내지 못했다. 분석을 하려면 엑셀에 입력을 해야 하는데, 그걸 할 시간도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다. 활동가가 2배로 늘어난 지금은 도전해 볼 만도 하지만, 이젠 굳이 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 지난한 작업을 하는 이들이 나타난 덕분이다. 바로 오마이뉴스다.
오마이뉴스가 본격적으로 국회의원 정치후원금 집행 내역을 분석하고 기사화한 것은 2016년부터다. 취재진은 국회의원들이 각자 모은 정치후원금을 어디에 얼마나 어떻게 썼는지를 꼼꼼히 들여다봤다. 지금까지 나온 기사만 해도 100건이 넘는다. 얼마 전에 시작한 2024년 정치후원금 분석 기사도 흥미롭게 읽고 있다. 그리고 기사를 볼 때마다 ‘고생했다, 고맙다’는 속인사를 하게 된다.
정치자금 집행보고서는 누구나 공개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공개’의 형태가 문제다. 국회의원 300명의 정치자금 집행보고서는 수백 페이지 분량의 문서를 사람이 일일이 읽어야 하는 PDF 파일 형태로 공개된다. 이대로는 분석이 불가능하다. 오마이뉴스 취재팀이 하는 일은 여기서 시작된다. PDF 문서를 OCR(광학문자인식) 프로그램으로 텍스트로 변환한다. 하지만 OCR은 완벽하지 않다. 글자나 숫자가 잘못 인식되고, 항목이 뒤섞이고, 표 구조가 깨진다. 이를 일일이 원본과 대조하며 수정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국회의원 300명, 수천 건의 지출 내역을 하나하나 확인하고 정리하는 과정이다. 말 그대로 눈이 빠지는 지난한 작업이다. 기사 뒤에 숨은, 보이지 않는 노동이다. 하지만 이 과정 없이는 어떤 분석도, 어떤 보도도 불가능하다. 보도의 출발점은 쓸 수 있는 데이터를 만드는 일부터다.
이종호 기자를 중심으로 한 취재팀의 작업에 고맙다고 인사를 하는 이유는 고생해서 만든 데이터를 깃허브(GitHub)에 공개하기 때문이다. 이 자료는 누구나 내려받아 쓸 수 있다. 몇 년 전부터는 경향신문과 뉴스타파도 이 작업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데이터도 함께 만들고 각자의 플랫폼에서 로데이터(Raw data·미가공 자료) 자체를 공개한다.
언론사에서 취재 과정에서 만든 데이터를 공개하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독점적으로 보유하고 활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취재팀은 다른 선택을 했다. 공들여 만든 데이터를 공공재로 전환한 것이다. 이 선택의 의미는 크다. 다른 언론사도, 연구자도, 시민단체도, 시민들도 이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게 됐다. 같은 데이터를 놓고 다양한 관점에서 분석하고, 다른 각도에서 질문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취재 소스가 공동의 자산으로 전환된 셈이다. 더 이상 같은 정보공개청구를 여러 언론사와 시민들이 중복으로 하고, 똑같은 데이터 정제 작업을 반복하지 않아도 된다. 애써 만든 작업이 개인 컴퓨터에 묻혀 있지 않아도 된다. 함께 작업하고 먼저 작업한 사람의 기여를 바탕으로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특종, 단독, 독점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언론 생태계에서 이뤄지는 협업과 공유의 프로세스가 가지는 의미는 크다. 기존의 폐쇄적 관행에 균열을 낸 이 과정은 언론이 공익을 지향한다는 본질적 가치를 실천하는 방식이다. 더불어 취재의 부산물이 공공재가 될 수 있음을 증명한다.
이미 몇몇 언론에서 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런 시도가 더 많아지길 바란다. 정치자금뿐 아니라, 취재에 쓰인 데이터들이 공유되어 또 다른 역할들을 할 수 있을 것이다.
※2012년~2024년 국회의원 정치자금 데이터는 https://github.com/OhmyNews/KA-money에서 받을 수 있다.
정진임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소장의 전체기사 보기Copyright @2004 한국기자협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