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정부·여당에 대한 비판 보도에 언론중재위원회 제소를 남발하고, 언론보도와 관련한 영상을 ‘허위조작정보’라 규정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허위조작정보 근절을 이유로 정보통신망법 개정을 추진 중인 민주당이 스스로 입법 취지를 퇴색시키고 언론에 대한 징벌, 대결 의식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는 시선이 팽배하다.
21일 민주당 국민소통위원회 민주파출소가 공지한 주간브리핑 중 언론대응 내용을 보면, 한국일보 18일자 ‘정청래 당대표가 전당원 투표와 관련해 말을 바꿨다는 취지의 보도’에 대한 정정·반론조정 신청이 진행됐다. 14일엔 조선일보 12·13일자 ‘정부여당 현수막 대응’ 보도·사설에 대한 반론신청, 7일엔 대구신문 3일자 ‘민주당의 중재위 조정 신청을 언론 입막음으로 규정한 보도’ 및 동아일보 5일자 ‘AI 법안 지연 책임을 민주당에 전가한 보도’에 정정 및 반론 조정신청 내역이 적시됐다. 민주당의 범언론 ‘대응’에는 방송, 유튜브 전반이 포함된다.
보도 당사자로선 취할 수 있는 조치지만 공당이자 국정 운영의 키를 쥔 여당이 정례적·일상적으로 보이는 행보론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 언론계에서 나온다. 이미 민주당과 소속 의원이 10월13~30일 국정감사 기간 언론보도에 대해 총 19건 언중위 제소(민주당 8건)를 한 것(김승수 국민의힘 의원실 ‘조정 신청 처리 현황’ 자료)으로 드러난 바 있다. 특히 개별 의원 중에선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 최민희 의원이 가장 많은 6건의 조정신청을 했다.
국감 기간 최 의원이 문제 삼은 보도 관련 조정절차는 최근 속속 결론이 났다. ‘과방위 운영이나 최 의원에 대한 비판’, ‘딸 결혼식 관련 보도’ 등이 대표적이다. 일례로 10월20일자 MBC ‘뉴스투데이’ <고성·막말에 파행만…‘막장’ 치닫는 국감> 기사가 있다. 최 의원이 비공개 업무보고에서 기사에 항의하다 MBC 보도본부장을 퇴장시켜 언론계 비판이 따랐던 보도다. 10월23일 국감에서 최 의원은 “성찰하겠다”고 했지만 같은 날 정정보도를 청구했다. 해당 조정은 21일 ‘조정불성립’으로 마무리됐다.
딸 결혼식 관련해 중앙일보는 10월20일자 <딸 축의금 논란에…양자역학 공부하느라 신경 못썼다는 최민희> 보도에 대한 반론을 수용하고 19일 최 의원의 입장을 싣기도 했다. ‘양자역학을 공부하느라 세부적인 부분까지 챙기지 못했다는 의미였지 결혼식 자체를 몰랐다는 얘기가 아니었다’는 취지다. 새 방송법 입법 당시 비판보도에 대한 최 의원 측의 부적절한 대응을 지적한 10월29일자 한겨레 <최민희 쪽 ‘피감기관 방심위’에 비판 보도 차단 문의> 보도는 18일 조정불성립 됐다.
국감 이전 제소가 이뤄졌지만 여전히 조정절차 중인 사례도 있다. 한겨레 9월3일자 <‘방통위 개편’ 입법, 속도 매몰돼 내실 놓치나> 기사는 쌍방이 한 번씩 일정을 연기하며 12월 초 조정기일이 잡혔다. 조선일보에 대해선 <[정우상 칼럼] 인질로 잡고 있는 과학기술만이라도 석방해 달라> 칼럼과 관련해 12월5일 조정이 예정됐다. ‘과거 유사의학 책을 썼던 인사의 과학위원장 사퇴 또는 과학기술의 타 상임위 이관’을 요구하는 칼럼에 ‘22대 국회 과방위의 성과를 피력하고 과거 책은 정책문건이 아니’란 취지로 정정보도를 요구하고 있다.
이런 기조 속에서 13일 민주당 국민소통위원회가 YTN 리포트와 관련해 “허위조작정보”, “중대한 국기문란 행위”라 지칭한 행보가 나왔다. 하루 전 YTN은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대한 여야 공방 리포트에서 “(야당은) ‘항소 없는 밤’이란 노래를 만들어 상황을 풍자하기도 했다”며 일부 가사에 이재명 대통령이 웃고 있는 사진을 포함한 주진우 국민의힘 의원의 유튜브 영상을 전했다. 이후 YTN은 해당 부분을 삭제하고 리포트 제목을 바꿨다. 야당 국회의원의 행태가 적절했는지 등 여러 비판 소지가 있지만 집권여당의 입장 표명이 언론보도에 영향을 미쳤다는 건 주목할 지점이다.
일련의 일들은 민주당이 허위조작정보 근절을 명분으로 망법 개정 등을 추진하는 가운데 벌어졌다. 최민희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에 불분명한 정의로 자의적 규제가 이뤄질 수 있다는 우려가 이어져온 상황에서 여당이 ‘허위조작 감별사’로 비춰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개정안 마련을 주도한 노종면 민주당 의원은 YTN 보도에 대해 12일 페이스북에 “(이 대통령이) 조작수사 피해자라는 증거가 나오고 있는데도 범죄집단 두목으로 단정한 불법 허위조작영상”이라 적었는데, ‘풍자와 패러디’에 예외를 둔 개정안 방향과 배치된다는 지적이다.
언론개혁을 주도하는 민주당 상당 의원들이 언론 전반을 적대적으로 인식하고 징벌의 대상으로 본다는 지적도 나온다. 앞서 최 의원은 MBC 보도본부장 퇴장 사태 후 페북에 “MBC의 친국힘 편파보도가 언론자유인가”라고 썼고, 김현 민주당 언론개혁특별위원회 부위원장은 방송사 행사초청을 거절했다는 최 의원 페북 글에 “다녀오는 길”이라며 “사과와 반성이 필요하다는 말을 하고 왔다”는 댓글을 남겼다. 망법에 더해 발의된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사실’은 물론 ‘의견’까지 반론청구 대상으로 포함했는데 이대로라면 정치권의 언중위 제소는 더 확대될 공산이 크다.
정부·여당의 언론인식, 망법 개정에 대해선 외신도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14일 사설에서 “허위정보, 허위조작정보, 혐오표현 등보다 무서운 것은 정부가 이러한 단어를 정의한다는 것”이라며 “한국의 역대 정부와 정당들은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기 위해 노력해 왔고 현 정부는 언론의 범죄화를 용이하게 하는 새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모든 자유사회에 경고가 돼야 한다. (중략) 오웰적인 길을 따라가서는 안 된다”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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