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니어 기자들의 휴대전화에는 하루에 수백 개의 메시지가 쏟아지는 단체 채팅방이 있다. 같은 해에 언론사에 입사한 기자 동기들이 모여있는 방이다. 많게는 400여명이 모인 이곳에서 기자들은 취재원을 찾거나, 기사 아이템에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전문가를 공유한다. 늘 발제와 마감에 쫓기는 기자들이 상부상조하는 하나의 문화인 셈이다.
특히 정보가 부족한 저연차 기자들에게 채팅방은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현재 수습 기간 중이라는 한 기자는 “서울 도심에서 교통사고가 벌어져 상황을 파악해야 했는데, 당직 중인 경찰이 누군지 알지 못했다. 이때 채팅방에 취재원을 구하니 3분 만에 답이 왔다”며 “급한 취재를 할 때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단체 채팅방은 카카오톡이 한창 인기를 얻던 시기, ‘사츠마와리’(경찰서 출입)를 하던 수습기자들 사이에서 처음 만들어졌다. 2015년 입사한 한 기자는 “맨 처음 정보를 공유할 목적으로 단체 채팅방을 만든 건 2015년 당시 서초경찰서를 출입하던 기자 4명으로 알고 있다”며 “갑자기 취재 지시가 내려왔을 때 정보가 없으니 서로 아는 내용을 공유하자는 취지였고, 이후 친해진 기자들을 초대하면서 판이 커졌다”고 설명했다.
카카오톡이 문자를 대체할 메신저로 자리를 잡으면서 수습기자들은 경찰서에서 숙직하며 친해진 동료들과 단체 채팅방을 만드는 것이 당연해졌다. 이것이 소속 매체와 관계없이 입사 연도에 따라 동기로 묶이는 언론계 문화와 만나 ‘입사 연도별 단체 채팅방’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현재는 매년 1월, 해당 연도에 가장 먼저 입사한 기자가 채팅방을 만드는 것이 하나의 관습이 됐다.
해마다 차이가 있을 수는 있지만, 대부분의 채팅방은 엄격한 기준을 갖는다. 소속 매체와 이름을 밝히는 것이 의무이며, 정보 요청 시에도 신상을 먼저 밝혀야 한다. 더 이상 기자로 일하지 않는 경우에는 방을 나가야 한다. 공유된 정보가 악용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이처럼 정보와 자료 공유가 주를 이루는 업무 목적의 채팅방이지만, 소소한 응원도 오간다. 퇴근 시간이 다가오면 ‘오늘은 지하철에 앉아서 편안히 귀가하길 바란다’거나 ‘빠른 마감을 기원한다’는 메시지가 올라온다. 늦은 시간 취재 중인 기자들에게는 “고생이 많다”는 격려가 이어지기도 한다.
다양한 이벤트도 열린다. 2020년 입사자들이 모여있는 단체 채팅방에는 연말이면 ‘재밌는 드립(농담) 선발 대회’와 ‘한 줄기 빛 선발대회’ 같은 행사가 열리곤 한다. 재밌는 농담을 통해 동료들을 즐겁게 하거나, 동료에게 아낌없이 정보를 나누어 준 기자를 선정해 상품을 증정하는 것이다.
이벤트를 기획한 한지은 TV조선 기자는 “입사 첫해 연말에 동료들과 밥을 먹다가 ‘고마운 사람에게 보답할 수 있는 이벤트를 해보자’는 이야기가 나왔다”며 “다 함께 투표해서 재치 있는 격려와 덕담을 해줬던 사람을 뽑으면 재밌을 것 같았다. 작은 음료수 하나라도 있으면 한 해를 기분 좋게 마무리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이벤트를 시작한 것”이라고 했다.
이벤트 공지가 올라가자, ‘상품을 후원하겠다’는 기자들의 연락이 이어졌다. 이후 매년 연말마다 이벤트가 진행되며 ‘2020 입사자 방’의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한 기자는 “올해도 연말을 앞두고 이벤트를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출입처가 달라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경우도 있지만, 기자들은 단체 채팅방을 통해 끈끈한 동기애를 발휘하고 있다. 김민호 비즈한국 기자는 “서로 일하는 모습을 보면 짠하기도 하고, 그 모습에 ‘나도 열심히 해야겠다’는 의지를 다지기도 한다”며 “비슷한 상황에 놓인 동기들에게서 위로를 얻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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