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울고, 화도 내며 쓴 기사였다. 유명 베이커리 런던베이글뮤지엄에서 일하던 스물여섯 청년이 숨진 사건을 발굴·조명한 <런베뮤 과로사 의혹>(10월27일자) 보도로 이달의 기자상을 받은 정소희<사진> 매일노동뉴스 기자는 20일 시상식 수상소감에서 이 말을 가장 먼저 꺼냈다. “고인과 유족들께 위로와 연대의 말씀을 드린다.”
제보로 시작된 취재였다. 정 기자는 유족 측이 제공한 고인의 건강검진 기록, 부검 감정서, 카카오톡 대화 등 수십 개의 자료를 받았다. 그 방대한 자료 중 정작 회사 측이 내놓아야 할 실제 근로시간 자료는 없었다. 그동안 노동 현장에서 봐온 과로로 쓰러진 사람의 대부분은 50대 이상 노동자였다. 그에 비해 고인은 너무 젊었고, 건강한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 더 눈길이 갔다. 이 곳에서 빵을 샀던 기억도 있어 충격은 컸다. ‘이렇게까지 일을 시킨다고?’
정 기자는 고인의 카톡 대화, 교통카드 내역 등을 일일이 분석해 노동 강도, 출퇴근 시간, 업무량 등을 재구성했다. 그 결과 고인이 사망 전 1주일 동안 80시간에 이르는 초장시간 근무를 했다는 결론이 나왔다. “과로사의 경우 실제 근로 시간을 입증해야 하는만큼 회사에서 협조해야 할 부분이 많은데도 흔히 활용하는 지문인식기, CCTV 자료를 제공하지 않아 유족 측은 답답해하는 상황이었죠. 카톡 대화를 통해 회사가 숨기려 했던 부분들을 파악할 수 있었어요.”
누구보다 성실했던 고인의 생전 모습을 기록한 기사이기도 하다. 고인은 원치 않는 요구와 업무 지시를 감내하면서도 책임감 있게 일을 해낸 청년이었다. 카톡 대화 내용을 보며 왠지 모를 미안함이 몰려올 정도로 심적으로도 힘든 취재였다. 그럴수록 고인의 명예를 지킬 수 있는 기사를 쓰고 싶었다. “‘그래도 내 꿈이니까 행복해’라는 얘기를 많이 하셨어요. 어머님이 하신 말씀도 기억에 남아요. ‘너무나 할 일이 많았던 내 아들은 하고 싶은 것도 많았고, 할 수 있는 것도 많았던 아이였다고, 그래서 너무 아깝다’고.”
취재를 시작하고 보도하기까지 한 달 가까운 시간이 걸린 건 사측에도 반론 기회를 충분히 주자는 생각 때문이었다. ‘왜 근무 기록을 제공하지 않는지’부터 ‘근로계약서상 제대로 책정되지 않은 수당 문제’, ‘산재 은폐 정황’ 등 10가지가 넘는 질문을 보냈지만, 구체적인 사실을 입증하거나 주장을 뒷받침할 자료는 전혀 제공하지 않은 채 ‘그런 사실이 없다’는 식의 입장만 내놓을 뿐이었다.
보도는 사회적 공분을 일으켰다. 첫 보도 이후 정 기자는 내부 제보를 통해 해당 브랜드 법인의 97%가 기간제로 고용된 노동자라는 점, 1·2·3개월 단위의 이른바 ‘쪼개기 계약’이 강요돼 온 실태도 밝혀냈다. 문제의 사업장에 대한 근로감독이 이어졌고, 운영사 측의 사과와 대책 발표도 나왔다. “고용 불안을 조장하며 노동자에게 정신적 긴장감을 높게 요구하는 구조였어요. 늘 120%, 150%의 고강도로 일을 해야 다음 달 계약이 연장되는 식이죠. 통제적인 방식으로 노동 강도를 올려 일에 몰입시키고 착취하는 방식으로 노무 전략을 짰다는 건 아주 반성해야 한다고 봐요.”
정 기자는 다만 사측이 장시간 과로에 대해선 여전히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며 계속 감시가 필요하다고 했다. 오랜 기간 지적돼온 노동자에게만 산재 입증 책임을 지우는 제도적 문제, 장시간 야간 노동의 주범인 포괄임금제 문제에도 계속 집중하려 한다.
노동 문제에 관심이 많던 PD 지망생은 2020년 매일노동뉴스에 입사해 기자가 됐다. 취재 기자 9명인 조직에서 주 5일 지면을 내는 노동 전문지. 정 기자는 “전 세계 유일 노동 일간지라고 자부한다”며 매체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단순 사건사고 기사를 넘어 구조적인 문제를 짚을 수 있었던 건 저희 매체라 가능했다고 봐요. ‘노동 전문지의 존재 이유를 보여준 기사’라는 심사평이 있는데 제가 아닌 회사에 주는 상찬이라 생각했어요. 생존을 고민하지만 깊이 있는 기사를 쓰기 위해 기자 모두 최선을 다하는 매체예요. 관심과 애정, 후원도 아끼지 않아 주셨으면 합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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