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파인더 너머] (227) 느리지만 분명히

‘뷰파인더 너머’는 사진기자 박윤슬(문화일보), 이솔(한국경제신문), 고운호(조선일보), 박형기(동아일보), 이현덕(영남일보), 김정호(강원도민일보)가 카메라의 뷰파인더로 만난 사람과 세상을 담은 에세이 코너입니다.

절기상 첫눈이 내린다는 소설(小雪)이 이미 지났지만, 아직 늦가을 공기가 머문다. 햇빛이 내리는 붉은 벽을 따라 놓인 초록색 재배주머니에는 눈을 기다리는 메시지가 적혀 있다. 어린이집 아이들이 보리 씨앗을 심으며 겨울이 오면, 첫눈이 오면 새싹이 돋을 거라 들었나 보다. 아이들은 오가며 주머니를 바라보고 혹시 싹이 나지 않았을까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날은 아직 따뜻하고 첫눈 소식도 없다. 기다림의 시간만 조용히 쌓여간다.


지난해 서울의 첫눈은 11월27일, 117년만의 폭설이었다. 온 세상이 하얗게 덮이는 순간의 경이로움도 좋지만, 조용히 떨어지는 첫눈을 바라보며 각자의 소원을 빌 수 있는 겨울이 오기를 바란다. 한 해를 돌아보며 작은 숨을 고르는 순간이 될지도 모른다. 아이들이 남긴 작은 칠판의 약속처럼 느리지만 분명한 변화가 이곳에도 찾아오기를. 그리고 그 기다림이 언젠가 웃음으로 돌아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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