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유령이 배회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모든 산업군에서 기대와 낙관, 우려와 불안이 뒤섞인 전망이 쏟아지고 있다. ‘향후 10~20년 안에 노동(일자리)은 선택사항이 될 것이며 화폐는 무의미해질 것’이라는 일론 머스크의 최신 발언부터 우리나라 교육계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 대학가 발(發) AI 커닝 사태에 이르기까지 이슈를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힘에 부칠 정도다.
뉴스생태계도 예외는 아니다. ‘읽는 인간’이 ‘클릭하는 소비자’로 바뀐 지 오래고, 독점적인 정보제공자로 군림하던 레거시 미디어가 안정적인 수익처를 잃은 지도 오래다. 근래에는 구글이나 네이버 같은 검색 업체가 내놓는 뉴스 요약 서비스로 인해 ‘제로클릭’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공포마저 감돌고 있다.
돌이켜볼 때 산업적인 위기는 저널리즘의 후퇴를 동반했다. 예를 들어 학계에서는 포털에 뉴스 유통권을 빼앗긴 미디어업계가 클릭을 유도하는 기사에 몰두하는 타블로이드화 경향을 보인다는 비판을 지속해 왔다. 문제는 포털이 지배하는 뉴스생태계에 대한 적응도 채 마무리되지 않았는데 이제는 뉴스 편집권마저 인공지능에 빼앗길지 모른다는 우려가 확산한다는 사실이다. 미디어업계가 AI 기술이 제공하는 뉴스 요약 서비스에 기사 원문을 제공하는 기업으로 전락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이쯤 되니 현장에서는 저널리즘 축소의 문제가 아니라 업계의 생존을 걱정해야 할 상황이라는 두려움도 감지된다.
그러나 악몽은 이런 것이다. 우리는 예외일 것이라는 순진한 기대에 빠지거나 암울한 공포에 질려 현실을 외면해 버리는 이분법적 사고로 귀결하는 것. 그것이 진짜 악몽이다. 챗GPT가 웬만한 기자보다 기사를 더 잘 쓸 것이며 그 결과 언론기업이 사라질 수 있다는 식의 전망도 그중 하나다. 그래서 이런 때일수록 오히려 근원적인 질문에 집중해야 한다.
이를테면 AI가 뉴스를 요약하는 시대 ‘좋은 뉴스’란 무엇인가?
좋은 저널리즘, 양질의 기사를 생산하는 것은 기술혁신과 공진화해 온 저널리즘의 생존전략이자 존립 근거였다. 사실 좋은 저널리즘을 정의하고 실천하는 방법은 한두 가지가 아니겠지만, 이 시점에 한 번 더 강조하고 싶은 평가 기준은 다양성이다. 특히 지역 언론에 관한 한 다양성은 가장 중요한 핵심 지표라고 본다. 그것이 포털이 뉴스생태계를 지배한 이후 지역 언론에서 강화돼 온 과도한 타블로이드화 현상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라고 보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관찰해 온 바에 따르면 포털 이후 지역 언론에서 생산하는 뉴스는 지나치게 정치와 사건·사고 중심이다. 중앙집권적인 한국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지역뉴스의 상당수가 중앙의 정치사회 현안에 매몰된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지역성이라는 허울을 썼지만 사실은 중앙정치 뉴스들, 요컨대 지역 출신 국회의원의 입을 빌려 중앙의 정치 이슈를 다룬 기사들이기 때문이다. 반면 지역에 기반을 둔 소식들은 주로 자극적인 사건·사고 뉴스들이다. 이로 인해 포털의 뉴스생태계에 재현되는 지역 이미지는 획일적인 모노컬처 지역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이러니한 것은 지역성 강화를 위해 도입한 ‘포털 뉴스제휴평가위원회 특별 입점’ 정책에 따라 기사를 제공하는 언론사에서 이런 현상이 더 두드러진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한번 상상해 보자. AI 뉴스 요약 서비스가 대중화된 이후 수용자들에게 전달될 지역 소식은 어떤 것들이 될까?
아직은 널리 활용되지 않고 있지만 AI 뉴스 요약 서비스는 머지않아 포털의 뉴스 검색을 대체할 기술 대항마가 될 것으로 보인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의 ‘디지털뉴스리포트 2025’에 따르면 AI 챗봇의 뉴스 요약을 통해 뉴스를 접하는 이용자가 전년보다 늘어났다는 것이 이를 시사한다. 특히 25세 이하 젊은층의 경우 다른 연령층보다 이 서비스를 두 배 이상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나 향후 서비스 이용자가 더 많아질 것임을 보여준다. 미디어기업이 활용하는 AI 기술 중 비중이 가장 큰 분야도 뉴스 요약이었다(27%).
한마디로 더 늦기 전에 미디어기업은 AI 뉴스 요약 시대를 대비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지역 언론에 지금 필요한 것은 AI 기술을 저널리즘의 본질로 되돌아가는 작업에 활용하는 일이다. 포털의 뉴스생태계에서 나타났던 획일적인 지역뉴스에서 탈피해 다양성을 토대로 좋은 기사를 제공하기 위해 AI 기술을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책도 제도도, 무엇보다 지역언론 스스로 그에 맞게 혁신하고 재설계해야 한다.
그런데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이는 단지 지역 언론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디어기업 모두에게 해당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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