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원 0인' 혼돈의 방미통위, 속타는 방송사 구성원들
[출범 50일, 기관장도 위원도 없다]
새 방송법 후속조치 해야할 위원들
여야 모두 선임절차 시작조차 못해
방송사들 편성위원회 설치 등 난항
출범한지 50일이 지나도록 기관장 포함 정원 7명의 위원이 아무도 없는 행정기관이 있다.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 얘기다. 위원을 임명해야 할 대통령과 국회가 침묵을 지키는 사이, 방송사 구성원은 답답하고 무력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개정 방송법 부칙에 따르면 오는 26일까지 KBS 이사회를 새로 구성하고, 보도전문채널 대표자와 보도책임자도 새로 임명해야 하지만, 관련 절차는 시작도 하지 못했다.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와 EBS 이사회 구성 시한도 12월9일로 임박했지만 상황은 마찬가지다. 시행령과 세부 규칙 마련 등 ‘방송3법’ 시행의 물꼬를 터야 할 방미통위가 언제 정상화될지 알 수 없어서다. 길어지는 법적 공백에 방송사 안팎에선 조속한 위원회 구성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방미통위 위원을 추천해야 할 더불어민주당, 국민의힘에선 관련 절차 진행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다. 위원 공모 절차 등도 진행 중인 것이 없다. 방송통신위원회를 폐지하고 방미통위를 신설하는 ‘방미통위 설치법’이 10월1일 시행되며 방미통위 위원 수는 기존 5인에서 상임·비상임 7인으로 늘었다. 상임위원은 위원장, 부위원장 등 3인인데, 대통령과 국회 여야 정당이 각 1명씩 추천하고 나머지 비상임위원 4명은 여야가 2명씩 추천해 대통령이 임명한다.
방미통위 출범을 주도한 민주당에선 먼저 이재명 대통령의 위원장 후보자 지명을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여당 간사인 김현 민주당 의원은 “인사 검증과 관련된 건 특별히 드릴 말씀이 없다”고 말했다. 대통령실이 위원장 인선에 난항을 겪고 있다는 언론계 전언도 나온다. 새 정부 출범 후 초대 방미통위 위원장이라는 상징성과 함께 인사청문회를 거쳐야 하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적합한 인물을 찾기가 어려운 게 아니냐는 것이다.
대통령과 여당 몫 위원이 임명된다 해도 ‘7인 위원회’로 정상 출범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방미통위 설치법 통과 당시 공무원 승계에 ‘정무직은 제외’한다는 부칙에 대해 “처분적 입법”이라며 반대했던 국민의힘은 방미통위 기구 자체를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는 중이다. 해당 부칙에 따라 법 시행 당일 면직된 이진숙 전 방통위원장은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청구한 상태다.
과방위 야당 간사인 최형두 국민의힘 의원은 “민주당에서 자충수를 둔 거다. 우리도 통합적 미디어 거버넌스 기구를 만들자는 데엔 찬성했다. 다만 민주당 주도로 중요한 쟁점은 해결 못한 채 법을 누더기로 만들어 결과적으로 새 정부가 추진할 수 있는 일을 스스로 막은 꼴이 돼버린 것”이라며 “그렇다고 위원회를 공석으로 비워놓고 장기간 방치할 수는 없어 현실적인 검토와 함께 근본적인 검토도 다시 해야 된다고 본다”고 말했다.
방미통위 업무 마비 장기화로 방송사 내부 갈등도 심화하고 있다. 개정 방송법에 따라 내부 규정 정비를 서두르려는 구성원과 최대한 시간을 끌려는 사측이 대립하는 형국이다. 방송사마다 세부 사정은 다르지만, 공통된 문제는 편성위원회 설치다. 보도책임자 임명동의 절차를 진행하는 기구이기도 한데, 방미통위는 편성위원회에 들어가는 종사자 대표 5인의 범위와 자격을 규칙으로 정해야 한다.
이승철 KBS 기자협회장은 “이 법이 정한 방송의 독립성, 공정성 실현을 위한 절차들이 진행되지 못하는 게 문제”라며 “편성위원회 구성, 방송 편성 책임자 선임, 보도책임자 임명동의 절차가 방송 종사자들에게 가장 중요한데 방미통위 규칙이 정해지기 전까지 새 방송법에 대한 논의는 할 수 없다는 게 사측의 논리라 석 달째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방송법 부칙에 ‘3개월 이내’로 못박아둔 KBS 등 공영방송 새 이사회 구성, YTN·연합뉴스TV 대표자 및 보도책임자 선임이 기한 내 이뤄질 가능성은 희박해졌다. 방미통위는 방송법 후속조치로 공영방송 이사를 추천하는 미디어 관련 학회, 변호사 단체를 선정해야 했다.
전준형 전국언론노동조합 YTN지부장은 “사실상 (기존 대표자와 보도책임자) 권한을 3개월까지만 인정한 건데 그걸 넘긴다고 해서 어떠한 처벌도 없으니 회사는 그냥 버티는 것”이라며 “새 방송법엔 보도전문채널에 대해 노사 합의에 따라 사장추천위원회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돼 있는데 이를 관리·감독해야 할 방미통위는 빠져 있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방송법 시행 이후에도 실질적 변화가 생기지 않으면서 내부 동력이 사라진 게 가장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승철 협회장은 “방송법 통과와 함께 리더십이 사실상 약화됐는데, 후속조치가 미뤄지며 회사가 어떤 방향으로 나가기 위한 동력을 잃게 됐다”며 “어떤 결정이든 나와야 회복이 될 텐데 KBS라는 최대 공영방송은 현재 식물 상태나 마찬가지”라고 우려했다.
방송법 후속조치 외에도 방미통위가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현안은 산적해 있다. 전준형 지부장은 “윤석열 정권 방통위가 YTN 최대주주 변경 승인을 해주며 조건 10가지를 걸었는데 그중 7가지를 지키지 않고 있다”며 “방미통위가 YTN 민영화 관련 실태조사와 함께 승인 조건 평가 등 행정 절차를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기간 ‘0인 체제’를 겪고 있는 방미통위 내부도 답답한 건 마찬가지다. 지난달 기관장 없이 국정감사를 치른 방미통위는 내년도 예산안마저도 기관장 없이 처리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 방미통위 직원은 “정부조직개편으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직원 33명이 왔는데 사무분장 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게 제일 걱정이다. 새로운 기관장이 오면 중점적으로 챙겨야 되는 사안”이라며 “계속 밀린 방송사 재허가·재승인 건을 비롯해 연말엔 처리해야 하는 안건이 많은데 가뜩이나 힘든 시기 인사청문회도 챙겨야 해 그 점도 걱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연내 위원회가 정상적으로 구성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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