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릴 ‘2026 CES(소비자가전박람회)’ 취재를 준비 중인 A 경제지 한 기자는 이달 초 시간을 쪼개 미국 대사관을 방문했다. 언론인 취재 비자(I 비자)를 취득하기 위해서였다.
2년 연속 CES를 취재할 예정이라는 이 기자는 “취재기자 선발 절차가 지난해보다 빨라졌다”면서 “비자 취득에 문제가 벌어질 것을 대비하자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들어 국내 언론의 미 현지 취재 환경이 변화하고 있다. 과거 기자들은 CES 등 행사 취재를 위한 단기 출장에는 전자여행허가(ESTA)만 받고 미국을 방문하더라도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 9월 미국 조지아주에서 ESTA로 입국해 일하던 한국인 근로자가 대거 구금되는 사태가 발생하며 경각심이 높아졌다. 이 사건 이후 일주일 이내의 짧은 취재를 위해서도 정식 취재 비자를 발급받는 것이 권장되는 분위기다.
B 경제지 관계자는 “9월 구금 사태 직후, 미국소비자기술협회(CTA)에서 CES를 앞두고 기자들에게 정식 비자를 발급받을 것을 권장했다”면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라 안전하게 준비하자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기자협회보가 취재한 18개 매체는 모두 CES를 위해 취재 비자 발급을 결정했다. 이 중 과거에도 비자를 받아온 한 곳을 제외한 17개 매체는 지난해까지 ESTA로 행사를 취재해왔다.
◇취재비자 발급, ESTA 대비 비용·시간 급증
정식 비자 발급 절차가 추가되면서 미국 출장 준비에 필요한 시간과 비용이 급격히 증가했다. ESTA의 경우 발급 비용은 약 21달러(약 3만원), 취득에 걸리는 시간은 3일 정도였다.
반면 취재 비자를 취득하는 데는 최소 한 달이 소요된다. 영문으로 작성된 업무 계획서 등 준비해야 할 서류도 까다롭고, 대사관 인터뷰에서 나올 수 있는 돌발 질문도 준비해야 한다. 업무와 동시에 비자 준비를 해야 하는 기자들은 사실상 대행사 이용이 필수다. 이 경우 비자 발급 수수료 160달러(약 23만원)를 포함해 약 45~55만원이 든다. 지난해보다 10배가 넘는 시간과 비용을 지출해야 하는 셈이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예년보다 빠르게 CES에 동행할 기자단을 모집했다. 한 기업 관계자는 “지난해까지는 11월 중순에 기자단을 모집했는데 올해는 10월 하순에 이미 선발 절차를 마쳤다”면서 “비자 발급에 시간이 걸리는 것을 고려해 일정을 앞당겼다”고 설명했다.
◇비자 인터뷰 탈락 우려, 대응책 마련 고심
일선 기자들의 부담 역시 커졌다. 대행사를 이용하더라도 서류를 발급받아 준비하는 것은 기자의 몫이다. 최근 비자 인터뷰를 마쳤다는 A 경제지 기자는 “비자 인터뷰에서 ‘보류’가 나오면 서류를 다시 구비해가야 한다”면서 “시간이 더 늦어지면 제때 나갈 수 없을까 봐 빠르게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비자 인터뷰를 앞두고 있다는 또 다른 기자 역시 “이미 비용은 다 냈는데, 못 가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 된다”며 “다른 기자를 보낸다고 하더라도 다시 비자 발급 절차를 거쳐야 해서 행사 전에 비자 취득이 가능할지 우려된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CES가 미국 현지에서 큰 행사 중 하나이므로 이를 취재하는 기자들에 대한 비자 발급은 수월할 거라고 보기도 한다. 그러나 현장 기자들은 “비자 인터뷰에서 탈락하는 경우도 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면서 “이 부분에 대한 고민이 가장 많다”고 말했다.
제때 비자를 받지 못할 경우 뚜렷한 대책은 없다. 대부분 매체가 12월에야 비자 인터뷰를 예약해 둔 상황이라, 대안을 마련할 물리적 시간이 부족한 탓이다. 이 경우 입국 거절 등 위험을 감수하고 ESTA로 취재를 가는 것이 사실상 유일한 대안으로 거론된다. B 경제지 관계자는 “항공권과 숙소 예약이 이미 끝난 상황”이라며 “ESTA로도 CES 참석은 가능하기 때문에, 기사를 못 쓰더라도 현장 파견은 할 생각”이라고 했다.
C 일간지의 경우 “향후 출장 일정 등이 급박한 경우 이미 취재 비자를 가진 기자들을 우선하여 파견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미국에 체류 중인 기자들을 적극 활용하는 경우도 있다. D 경제지 관계자는 “현지 실리콘밸리 특파원이나 뉴욕 특파원을 최대한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 일간지 역시 실리콘밸리 특파원을 CES 취재 기자단에 배치했다.
한편 CES에 참가하는 한국 기업들의 경우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 기업 관계자는 “단순한 전시 참가의 경우 ESTA로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점을 확인받았다”면서 “이 외에 개인의 업무에 맞추어 적절한 비자를 활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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