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된 '투박한 자동차 일러스트', 27년차 미술기자 작품?

[인터뷰] 김상민 경향신문 미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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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끝내 일러스트레이터를 못 구한 기자’라는 제목의 글이 화제가 됐다. 기사에 투박한 자동차 일러스트가 실렸는데, 전문가의 손길이 아닌 취재기자가 직접 그린 그림처럼 보여서다. 누리꾼들은 ‘기자는 최선을 다했다’, ‘인간미가 느껴진다’, ‘AI가 판치는 시대에 오히려 눈에 띈다’며 그림에 열광했다. 그런데 반전이 있었다. 그림의 주인공이 바로 약 27년간 경향신문에서 일한 베테랑 일러스트레이터, 김상민 미술기자였기 때문이다. 6일 경향신문 인근 카페에서 만난 김 기자는 “처음엔 온라인에서 화제가 된 줄도 몰랐다”며 “커뮤니티 댓글을 보니 재밌더라. 지겨울까봐 신문에선 다양한 그림체를 시도하는데 자동차 일러스트도 그 중 하나였다”고 웃으며 말했다.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김상민 경향신문 미술기자의 일러스트가 화제가 됐다. /강아영 기자

김 기자는 홍익대 디자인과를 졸업하고 광고 제작사에서 조감독으로 일하다 우연찮은 기회에 1999년부터 경향신문에서 미술기자 일을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신문사에서 일러스트레이터를 전문적으로 채용하는 곳은 종합일간지 몇 군데뿐. 면접에서 ‘그림 빨리 그리냐’는 질문이 인상 깊었다는 그는 미술기자로 채용된 후 하루에 많게는 12개씩 그림을 그려냈다. “기사가 오후 2시부터 나오고 6시에는 마감을 해야 하니 4시간 안에 다 그려야 했거든요. 처음엔 연필로 스케치하고 펜으로 그렸는데, 몇 년 지나니 스케치 없이 쭉쭉 그렸어요. 빨리 작업해야 하니까요.”


그땐 모든 게 수작업이었다. 손으로 그림을 그리고 종이를 스캔해 신문에 그림을 실었다. 반면 요즘은 태블릿이나 컴퓨터에 바로 그림을 그리는 경우가 많아졌다. 작업량도 예전과 사뭇 달라져 하루에 2~3개 정도 그리는 게 일반적이라고 했다. 그래서일까, 경향신문에서 김 기자는 유일한 전업 일러스트레이터다. 함께 작업하던 김용민 화백은 만평으로 전향했고 다른 미술팀 후배들은 대부분 그래픽 디자이너들이다. “요즘은 그림 대신 사진이나 그래픽을 쓰는 경우가 많아서 저는 주로 칼럼에 들어가는 그림을 많이 그려요. 사실 신문을 딱 펼치면 글보다는 그림이 눈에 들어오잖아요. 신문 삽화라는 게 기사를 돋보이게도 하고 궁금하게 만들기도 하는데 그런 게 참 재밌고, 제 직업에도 만족하고 있습니다.”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김상민 경향신문 미술기자의 일러스트가 화제가 됐다. 사진은 경향신문 화백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김 기자. /강아영 기자

그는 2017년 1월부터 지면에 ‘생각그림’이란 코너를 연재하고 있다. 매주 한 차례 그림과 짧은 글로 독자들과 교감을 나누는데, 반응이 재미있다고 했다. ‘마음에 와닿는다’며 감옥에서 편지를 보낸 독자도 있고 ‘왜 그림을 이따위로 그리냐’며 항의 전화가 오기도 한다. 김 기자는 그림이 쌓이면 1년에 한 번씩 전시회도 연다. 생각그림 1년 치를 모아 전시를 열거나 별도 작업한 작품을 추가해 전시를 한 적도 있다. 올해 6월에도 버려진 나무 재료와 나뭇조각에 아크릴과 펜 등을 덧칠해 만든 작품 50여점으로 여덟 번째 개인전을 열었다. “회사가 작업실이 됐어요. 주로 조용한 아침 7시쯤 나와 그림을 그려요.”


그는 정년퇴직 후에도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했다. 앞으로의 목표나 꿈은 “딱히 없”지만 “계속 그림을 그리고 싶고, 더 잘 그리고 싶다”고 했다. 그림으로 시작해 그림으로 끝나는 그의 하루. 비록 인공지능(AI)이 그의 업을 점점 침범하더라도 그는 계속 그림을 그릴 것이다. 아이디어와 감성,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은 AI로 대체할 수 없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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