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학자이자 철학자인 지그문트 바우만은 <불안의 기원>에서 우리 대다수가 나 혼자만 고통받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나만 빠르게 달리는 차량에서 떨어져 나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뒤처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배제에 대한 두려움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한다. 더하여 이런 두려움이 단지 상상의 산물만은 아니라고, 실제로는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상황이 권위를 자랑하는 미디어를 통해 생생하게 실감할 수 있는 현실이 된다고 말한다.
그렇게 현실이 된 불안은 우리의 삶을 집어삼킨다. 우리는 불안 앞에 깊이 절망하거나 크게 분노한다. 심지어 우리는 불안을 토대로 삼은 절망과 분노를 소비한다. 그 중심에는 이를 부추기는 온갖 정보와 디지털 미디어가 있다. 불안·절망·분노를 부추기는 자극적인 정보일수록 더 적극적으로 찾아보고, 해당 정보를 클릭 한 번으로 소셜미디어를 통해 다시 무수한 사람에게 전파한다.
넘쳐나는 불안과 분노로 범벅이 된 정보 속에서, 철학자 해리 프랭크퍼드의 말을 빌자면 우리는 지금 거짓말의 시대가 아니라 개소리의 시대를 건너가고 있다. 때론 그 개소리에 섞인 정보가 사실인지 의견인지 구분하기조차 쉽지가 않다. 예를 들어, 관세전쟁 가운데 튀어나온 ‘중국보다 동맹이 미국을 더 착취했다’는 트럼프의 협박성 의견은 입장에 따라 사실로 둔갑하기에 십상이다.
이렇게 불안을 부추기는 정보가 우리 삶을 지배하는 가운데 곳곳에서 민주주의가 위험에 처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2023년 국회미래연구원이 발간한 보고서 <한국의 정치 양극화:유형론적 특징 13가지>는 기성 언론의 게이트키핑 기능의 약화가 정치 양극화를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더 우려스러운 대목은 언론이 게이트키핑을 하기는커녕 기사 작성과 편집이 독자의 반응에 영향을 받는 ‘게이트오프닝’ 현상이 나타나며 강성 지지층의 영향력이 여론시장 전반에 확산이 된다는 데 있다. 결과적으로 이를 통해 강성 지지층과 결합한 팬덤정치가 더 견고해진다.
이런 게이트오프닝 현상도 ‘좋아요’와 ‘공유’의 지배와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언론 역시 자신들이 생산한 정보가 ‘좋아요’를 받지 못할지도, ‘공유’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휩싸여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언론이 힘들여 정제하고 거른 정보보다 정제하지 않은 불확실한 정보가 더 많이 소비된다면, 언론은 당연히 힘을 들이지 않고 ‘좋아요’와 ‘공유’를 확보할 수 있는 길을 선택하고픈 유혹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어쩌면 불안이 부추기는 절망과 분노의 시대에 언론은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는 듯하다. 그 하나는 명백하게 불안이 부추기는 절망과 분노를 자극하는 정보를 추구하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이에 맞서 언론 본연의 기능을 더 강화하는 길이다. 정답은 후자로 정해져 있는 듯하지만, 현실에서 대다수 언론은 그 반대쪽 유혹에 시달리고 있다.
물론 정답의 길을 가서 성공한 명백한 사례가 있다. 뉴욕타임스는 저널리즘 본연의 기능에 더 많이 투자해 탐사보도를 늘리고 더 ‘질’이 좋은 뉴스를 바탕으로 유료 구독자를 늘리고 디지털 전환에 성공했다. 그 결과 구독 매출이 광고 매출을 넘어서는 결과를 낳았다. 하지만 개인들이 질 좋은 뉴스를 돈을 내고 소비하는 문화가 자리 잡지 않은 우리 사회에서 이런 모델이 성공할 수 있을지는 아직 확신할 수 없다.
불확실한 상황에서 분명한 현실이 있다면, 민주주의가 무너질 때 자유로운 언론의 시대도 끝난다는 점이다. 하지만 계엄 이후 우리 언론의 모습을 보면, 민주주의라는 체제와 가치를 지키는 게이트키핑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는지에 대해선 확신이 없다. ‘언론은 진정 민주주의의 방호벽일까?’
계엄으로 인해 기자협회보 ‘언론 다시보기’ 칼럼을 다른 필자들보다 1년이나 더 쓸 기회를 얻었다. ‘언론의 감시자’로서 3년간 칼럼을 게재하며 언론을 향해 많은 쓴소리를 남겼다. 매정하게도 마지막까지도 이런 쓴소리를 남긴다.
하지만 여전히 언론의 힘을 믿는다. 펜의 힘이 진정으로 발휘되는 시기는 평온의 시대가 아니라 불안의 시대, 위기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불안과 위기의 시대를 헤쳐 나가고 있는 우리 언론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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