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혹평, 실소 잇따른 여당 '정보통신망법' 개정안

14일 한국언론법학회 특별 세미나
"이런 법안 논의하는 것 시간낭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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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문 하나하나의 내용도 문제지만 법률안으로서 기본 양식, 정합성 면에서 갖춰지지 않은 안이 너무 급하게 졸속으로 나온 법안이 아닐까 하는 합리적인 의심이 든다.”


김선량 서울시립대 법학연구소 전문연구원(박사)은 14일 한국언론법학회가 주최하고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가 후원한 <인터넷 허위정보 규제와 정보통신망법 개정> 특별 세미나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추진 중인 정보통신망법(망법) 개정안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망법 조항들이 위헌성을 지녔거나 민주주의 작동원리의 핵심인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소지가 다분하고, 법률안에 요구되는 최소한의 수준에 미달한다는 평가다.


헌법 전공자인 김 박사는 이날 토론에서 “현재 망법에서도 ‘불법정보’는 규제를 하고 있기 때문에 (이 법안의) 규제 목적은 ‘허위조작정보’인데 불법정보와 허위조작정보를 일반적으로 같은 수준에서 규제하고 있다. 표현의 자유는 (헌법 일부 조항에 따라) 제한이 가능하다고 해도, 그 외의 경우 비례성의 원칙을 준수해야 한다. 피해 최소성 원칙 측면에서 같은 수준에서 규정하는 것은 위헌성이 있을 수 있다. 구체적 상황을 설정해 차등적으로 규제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14일 서울 중구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교육권에서 한국언론법학회가 주최하고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가 후원한 '인터넷 허위정보 규제와 정보통신망법 개정' 특별 세미나가 개최됐다.

법원의 문서 제출 명령에 따르지 않는 등의 경우 “타인을 해할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입증책임을 전환하는 제44조의 11은 “가장 의아했던 조문”으로 꼽기도 했다. 김 박사는 “문구의 범위가 너무 넓거나 명확하지 않고 각호를 보면 행위의 주체를 규정하고 있지 않아 행위자 자신의 과거 사례를 의미하는 것인지 타인이 과거 사례를 포함하는 것인지 해석의 문제가 있다. 입증책임전환의 경우에도 표현의 자유 보장 측면에서 명분이 부족해 보인다”고 덧붙였다.

◇언론·법학계 “기본 정합성마저 갖추지 못해”
이날 세미나는 민주당이 허위조작정보 규제를 명분으로 추진해 온 상황에서 최민희 민주당 의원(언론개혁특별위원장)이 10월23일 대표 발의한 망법을 중심으로 언론·법 관련 학계 전문가들이 논의를 진행한 자리였다. 전문가들은 앞서 언론현업단체들이 언론 본연 역할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에 대동소이한 입장을 드러내는 한편 법안에 요구되는 기본 정합성마저 갖추지 못했다며 혹평을 했다.


현안 발표를 통해 현 허위정보 규제 체제 전반과 이번 법안의 형식, 내용의 함의를 종합적으로 살핀 심영섭 경희사이버대 미디어영상홍보학과 겸임교수는 법안이 규정한 허위정보와 허위조작정보 구분의 불명확성을 지적했다. 심 교수는 “허위정보를 유통하면 허위조작정보란 얘기 같은데 사실 허위정보 자체가 (타인에게) 해를 끼칠 수 있다. 저도 잘 이해가 안 된다”며 “허위 또는 부분 허위라면 처벌이 가능한 조항이 생긴 건데 오보나 사실을 적시하는 비판적 보도과정에서 (보도된) 당사자가 문제를 제기할 경우 허위조작정보로 분류될 가능성이 커진다. 범주가 포괄적이어서 권력자 의지에 따라 처벌대상이 광범위해질 수도 있다”고 했다.


이번 법안은 현 망법상 불법정보가 아니어도 “내용의 전부 또는 일부가 허위이거나 사실로 오인하도록 변형된 정보”를 ‘허위정보’로, 이 가운데 “유통될 경우 타인을 해하게 될 것이 분명한 정보”를 ‘허위조작정보’로 정의했다. 이에 따른 손해배상 규정으로 피해액의 최대 5배 배상금을 물게 한다. 그간 허위정보 관련 연구와 논의 등에 비춰 개념정의가 퇴보했거나 잘못됐고, 모호성이 너무 크다는 비판 등이 이어진 바 있다.

◇‘타인을 해할 의도’ 조항…언론 취재 위축, 공익제보자 보호 막아
이 같은 불명확성은 자의적 판단 소지를 키워 필연적으로 과잉규제 우려를 낳는다. 이영희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겸임교수는 “저 역시도 일부 허위나 사실로 오인되도록 변형된 정보가 유통이 되면 갑자기 중간에 ‘조작’이 들어간 정보로 해석된다는 게 제가 공부를 해온 사람인데도 의문이 계속 든다”며 “초기 취재, 탐사보도에 엄청난 위축보도가 발생할 수 있는 조항”이라고 했다.


특히 논란이 된 ‘타인을 해할 의도’ 관련 조항(제44조의 11)에 대해선 “탐사보도의 현장 관행과 충돌 우려가 있다”고 이 교수는 지적했다. 법안은 △법원 자료제출 명령에 따르지 않을 때 △허위조작정보 유통 1년 전 유사한 유통이 2회 이상 있을 때 △본문에 없는 내용을 제목이나 자막에 썼을 때 △사실확인을 위한 충분한 조치를 하지 않았을 때 등 요건을 해할 의도로 추정한다고 했다.


이 교수는 “취재원을 보호하는 법을 도입하자는 주장이 나오는데 문서제출명령 불응을 근거로 의도를 추정하는 구조는 취재원 비닉권이나 공익 제보자 보호를 할 수 없게끔 한다. 이렇게 되면 언론에 대한 압수수색은 당연하게 되는 거 아닐까”라며 “일률적 추정을 배제하는 안전판이 필요하다”고 했다. 아울러 최대 5배 가중배상을 허용할 때 구독자수, 조회수 등 지표가 될 경우 획일적 기준을 채택했을 때 적절성 논란이 불거질 수 있고 소규모 언론, 1인 미디어의 위축효과가 우려된다고도 했다.

◇방미심위 과도한 권한, “전 세계 이런 법 없어”
기존 인터넷망에 표현된 내용 규제를 담당하는 방송미디어통신심의위원회(방미심위) 체제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허위조작정보 감별 역할을 하고, 플랫폼 사업자들의 자의적인 정보 삭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심영섭 교수는 “플랫폼 사업자가 문제되는 콘텐츠를 처리하도록 명문화했는데 행정규제를 회피하기 위해 ‘선조치 후정정’하는 사례가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표현의 자유를 시장에서 활동하는 사업자가 임의로 제한할 수 있도록 법으로 권한을 부여한 만큼 임의적, 사적 제재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방미심위의 통신심의소위에서 허위정보나 허위정보조작 정보 유통 등으로 타인 명예를 훼손할 경우 등 심의규정을 집어넣고 일부는 맡기고 일부는 직접 확인하는 식으로 할 수도 있다. 상위법이 있기 때문에 규정을 바꾸는 데 문제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


상윤모 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도 “방미심위의 심의 범위가 지나치게 확장되는 결과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정치가 모든 것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국내 현실을 고려할 때 끊이지 않았던 정치적 논란을 격화할 소지가 있어 보인다”고 했다. 법안이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의 신고 및 조치대상으로 허위조작정보까지 포함했지만 언론 콘텐츠를 제외하지 않은 지점을 거론하며 상 교수는 “언론보도의 경우 언론중재위원회를 통한 구제 및 규제가 이뤄지고 있는데 개정안은 거대 플랫폼 사업자에게 불법정보인지 불분명한 경우에도 허위정보를 신속하게 삭제, 접근 차단하도록 유도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이어 “유럽연합의 DSA에선 언론사 콘텐츠에 대해 예외로 두자는 논의를 했고 최종 도입하진 않았지만 편집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규정을 마련하고 있다. 우리는 언론보도를 달리 취급할지 그렇다면 어떻게 할지 논의가 더 충분히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부연했다.


김보라미 법률사무소 디케 변호사는 “법안은 이미 독소조항으로 수년 간 평가된 임시조치제도, 명예훼손 처벌조항, 국가심의 조항이 존재하고 있는데 여기 징벌적 손해배상제, 과징금 제도까지 도입해 언론인 및 망을 이용하지 않는 이용자에게도 적용가능함을 전제로 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이런 법은 없다”고 했다.


이어 “망법은 언론사를 대상으로 하는 법이 아니었는데 윤석열 정부 때 언론사를 대상으로 하려고 해서 논란이 되 바도 있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빅테크나 맞춤형 광고 등 논의할 게 산더미인데 이런 법안을 논의하고 있다는 건 시간낭비이고, 입법자들의 죄라 생각한다”며 “법안을 철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불어민주당 언론개혁특별위원회 최민희 위원장이 10월20일 허위조작정보 근절안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여당 ‘사실적시 명예훼손 폐지’엔 다수 긍정 평가
다만 정부여당이 추진 중인 언론 관련 입법에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 움직임에 대해선 일제히 긍정적인 평가가 나왔다.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형법 제307조 1항,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사실을 드러내어 타인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망법 제70조 1항 등과 관련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검토를 지시한 사안은 현재 복수의 여당 의원들을 통해 개정 작업이 진행 중이고 일부는 발의도 된 상태다. 사실을 말해도 처벌을 받는 조항은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 폐지 권고가 2021년 있었고, 글로벌 스탠다드로 봐도 드문 사례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307조 1·2항을 다 없애는 게 맞다고 본다. 민법을 그만큼 강화하면서 망법, 방송법, 신문법에선 어떻게 해소할지를 같이 논의하는 게 맞다”(심영섭 교수), “허위사실조차도 처벌하는 나라가 OECD 국가 중에 많지 않다. 친고죄로 개정해서 남이 대신 고발해 형사처벌이 가능하게 하는 건 선진국으로 가야될 길에서 우리가 선택할 길은 아니다”(김보라미 변호사)란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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