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드라마의 강자인 KBS가 연달아 미니시리즈까지 블록 편성하면 2023년 말 <고려 거란 전쟁> 편성 때처럼 주말 저녁 시간대 2TV 채널 경쟁력이 더욱 제고될 것으로 기대한다. 주말드라마의 가족 단위 시청자뿐만 아니라 2049 시청자까지 유입시키도록 노력하겠다.”
KBS의 ‘토일 미니시리즈 전격 편성’ 소식을 전한 사보(7월14일)에서 최성민 KBS 콘텐츠전략본부장이 한 말이다. KBS는 8월부터 2TV에서 방영되던 수목 미니시리즈를 주말인 토일 시간대로 옮기며 마동석 주연의 <트웰브>를 선보였다. 이어 이영애가 26년 만에 KBS 드라마에 출연한다고 해서 화제를 모은 <은수 좋은 날>이 전파를 탔다.
주말 미니시리즈라는 파격 편성에 ‘삼천만 배우’, ‘국민 배우’를 내세워 관심을 끌었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트웰브>는 첫 회 시청률 7.2%(닐슨코리아, 수도권 기준)로 산뜻하게 출발했으나 회를 거듭하면서 시청률이 2~3%대까지 내려앉으며 조용히 막을 내렸다. <은수 좋은 날>은 최고 시청률이 5%대에 그쳤다. 후속작으로 현재 방영 중인 <마지막 썸머>는 2%대 시청률로 시작해 3회 만에 1%대로 내려갔다.
시청률만 저조했던 게 아니다. 미디어오늘 최근 보도에 따르면 KBS는 <트웰브>와 <은수 좋은 날> 두 작품으로만 100억원 넘는 손실을 기록했다고 한다. 특히 <트웰브>는 방영권만 사서 ‘그나마’ 손실이 적었지만, KBS가 직접 투자를 한 <은수 좋은 날>은 전체 손실이 90억원에 육박한다고 한다.
올해 1000억원 적자가 예상되는 KBS에서 드라마 두 편으로 100억원 넘는 손실이 났다면 보통 일이 아니다. 박장범 사장 퇴진을 요구해 온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는 10일 성명을 내고 “합쳐 107억원이라는 적자를 KBS에 안긴 드라마 두 편은 모두 콘텐츠투자심의위원회의 심의를 통과한 작품들이다. 파우치 박장범 체제 경영진이 모두 제작을 결정했던 것”이라며 “이런 결정 능력과 판단력을 가진 이들에게 과연 KBS의 향후 콘텐츠를 결정할 권한을 쥐여줘도 되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박장범 사장은 광고주 대상 프레젠테이션까지 직접 할 정도로 드라마를 챙겼다. 6월엔 한 달에 한 번 있는 KBS 정기 이사회에 불참하고 광고 판매 행사에 참석했다. 당시 여권 측 몇몇 이사가 의문을 제기하자 김우성 부사장은 “공사 대표인 사장이 직접 하면 광고를 유치하는 데 더 유리하겠다는 그런 판단”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당시 박 사장이 소개했을 하반기 드라마 라인업에 주말 미니시리즈도 포함돼 있었을 테니 이번 손실이 더 뼈아플 수밖에 없다.
물론 KBS는 여전히 드라마 강자다. 주말드라마는 물론이고 1TV와 2TV에서 방송되는 일일드라마 모두 주간 시청률 상위권을 장악하고 있다. KBS 주말드라마 <화려한 날들>은 한국갤럽의 ‘좋아하는 방송영상 프로그램’ 10월 조사에서 1위에 올랐다. 50대 이상, 그중에서도 60대 이상 여성에게서 전폭적인 지지를 얻은 결과다.
반면 광고주의 주요 타깃층인 2049가 선호하는 장르, 특히 미니시리즈에선 KBS가 이렇다 할 흥행작을 못 낸 지 오래다. KBS 미니시리즈가 흥행 공식에서 멀어졌다는 인식이 퍼진 탓일까. ‘좋은 대본’을 갖고도 드라마를 만들지 못하는 일도 있었다.
지난 5~6월 tvN에서 방영돼 국내는 물론 넷플릭스에서도 성공을 거둔 <미지의 서울>. 이 드라마를 쓴 이강 작가는 KBS에서 몇 편의 단막극을 집필하고 장편 데뷔작인 <오월의 청춘>으로 호평을 받은 작가였다. 자연스레 <미지의 서울> 극본도 KBS가 확보하고 있었으나, 캐스팅이 쉽지 않아 제작에 난항을 겪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6월 뉴시스 <[초점]tvN은 되네…KBS가 내준 ‘미지의 서울’ 씁쓸> 기사에 따르면 배우 박보영이 출연 의사는 밝혔으나 ‘KBS에서 방송하면 출연하기 힘들다’고 했다고 한다. ‘KBS가 키운’ 작가의 극본이 CJ ENM 스튜디오드래곤 등과의 공동 제작으로 tvN에서 방영될 수밖에 없었던 배경이다.
한번 떨어진 경쟁력을 끌어올리기는 쉽지 않다. 드라마만의 문제가 아니다. 채널과 브랜드 전반의 경쟁력을 높이고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채널에 매력이 없으면 시청자도, 광고주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
최근 KBS가 보이는 지표는 그런 면에서 더 우려스럽다. KBS 미래성장위원회가 최근 만든 보고서에 따르면 수신료 분리징수 여파로 KBS의 올해 수신료 수입액은 전년 대비 298억원이 감소하고, 콘텐츠 판매와 광고 수입은 합산 365억원이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수신료 수입보다 채널 경쟁력을 보여주는 부문의 수입이 더 많이 줄어들 것이란 전망이다.
물론 지상파 광고 시장이 얼어붙은 건 사실이다. SBS는 올 3분기 기준 누적 광고 수익(연결 재무제표 기준)이 전년 동기 대비 약 370억원 줄었다. 지난해 지상파 3사 중 유일하게 흑자를 냈던 MBC도 올 8월까지 60억원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그렇다 해도 KBS의 드라마 한 편 손실액보다는 적다.
수신료 통합징수가 이달 고지분부터 적용됨에 따라 KBS의 수신료 수입은 다시 반등할 것이다. 안정적 재원을 바탕으로 콘텐츠 경쟁력이 살아나면서 KBS 광고 매출도 덩달아 늘어날 수 있을까. ‘수신료 리스크’는 끝났으니, 이제 KBS의 진짜 ‘실력’을 보여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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